인생을 바꾼 피카츄 돈가스

달리기에서 뒤쳐지다

by 사생활치매

컵 떡볶이는 아이들에게는 입안의 행복, 어른들에게는 주머니의 행복을 실현해주는 작지만 완벽한 상품이다. 종이컵에 옹기종기 담겨있는 매콤 달콤한 떡볶이를 보고 있으면 누구나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때에는 학교 근처 동네 상가에는 꼭 분식집이 있어서 컵 떡볶이와 슬러시 모르고 자라난 아이는 있을 수 없었다. 삼총사에게 분식집은 참새와 방앗간이었다.

“야 미뇽! 너 진짜 놀라지 마라.”

중민이 자기만 아는 무언가에 대해 거드름을 피우며 연신 즐거워했다. 중민은 아침에 민영이 교실에 도착했을 때부터 줄곧 엄청난 것을 분식집에서 팔고 있다고 들떠 있었다. 중민은 그동안에도 사소한 것도 크게 놀랐기 때문에 민영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중민을 필두로 삼총사는 부리나케 교실을 빠져나왔다. 정문으로 나가면 무서운 경비 아저씨에게 혼이 날게 분명하기 때문에 바로 옆에 붙어있는 중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중학교 정문으로 몰래 빠져나왔다. 십분 안에 ‘교실-중학교 정문-분식집- 중학교 정문-교실’의 거리를 지나야 했기 때문에 삼총사는 너나 할 것 없이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이들이 뛰면 순서는 늘 영준-민영 그리고 가장 들떠있던 중민이 가장 느렸다. 삼총사 중 영준이 가장 빨랐는데 심지어 27회 전국체전에서 12세 이하 서울시 대표선수 중 하나였다. 늘 달리는 걸 좋아하는 영준의 피부는 언제나 검고 윤기가 흘렀다. 민영은 영준처럼 단거리가 빠르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달리는 편이었고 장거리는 더욱 자신이 있었다. 삼총사는 줄줄이 달려서 불과 몇 분 만에 초등학교 정문에 도달했다. 정문 앞에는 작은 2차로와 횡단보도가 있었는데 사람도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건널목이다. 그 횡단보도는 걸맞지 않게 신호등의 적신호가 상당히 길어 학생들과 동네 주민들에게 늘 잔소리를 듣고는 한다. 먼저 도착한 민영과 영준은 횡단보도에 잠깐 멈춰 숨을 고르고 있었고 뒤늦게 도착한 중민은 차오르는 숨을 헐떡거리며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헉.. 헉.. 말한.. 헉.. 거.. 저거야..."




건너가지 않아도 분식집 앞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희한한 것을 팔고 있었다. 민영의 좋은 시력 덕분인지 분식집에 진열되어 있는 상당히 큰 크기에 빨간 소스가 묻어있는 무언가에 적잔이 놀란 기색이었다. 녹색불이 켜지자 마자 곧장 그것을 향해 다가갔고 이윽고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우와! 이거 피카츄야?"


민영의 휘둥그런 눈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크고 초롱초롱했다.


"내가 말했지? 진짜 짱이라고!"

"아줌마! 피카츄 돈가스 주세요!"


돈가스에 피카츄라니 도대체 누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말인가? 민영에게 이것은 그야말로 세기의 발명품이자 선물 같았다. 이미 한번 초벌이 되어 있는 피카츄는 주문과 동시에 아주머니에 의해 고열로 달궈진 기름 냄비에 퐁당 담겼다. 압도적인 비주얼로 인한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냄비로부터 고소한 튀김 향과 함께 귓속 고막까지 튀겨낼 것 같은 기름의 자글자글한 소리들이 삼총사를 매 초마다 흔들어 놓았다. 아주머니는 30초가량을 기름 안에서 살랑살랑 튀겨내다가 재빨리 꺼내어 트레이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3개를 연달아 튀겨내는 동안 동동 구르는 발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피카츄가 트레이에서 유혹하는데도 마지막 양념이 발리기 전까지는 먹을 수가 없다. 아주머니는 플라스틱 양념통에 붓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가 꺼내어 세 마리 피카츄를 좌우로 쓰다듬었다. 피카츄들의 고소한 향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금세 새빨간 색으로 물든 빨간 향이 콧속을 마구 헤집었다. 그리고는 휴지를 뜯어 나무젓가락에 하나씩 정성스레 말아 삼총사에게 건네었다. 건네받은 중민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고 영준과 민영은 빙글빙글 돌리며 차마 바로 먹지 못했다. 이윽고 민영이 한입 베어 물자 바삭한 식감 안으로 소금 후추로 살살 간을 맞추고 적은 양의 돼지고기와 두부로 만들어진 패티가 느껴졌다. 그리고는 튀김옷에 있는 양념은 안에 있는 패티를 빨갛게 물들였다. 그 피카츄 돈가스의 양념은 시끄러운 삼총사마저도 다 먹을 때까지 말하는 법을 잊게 만드는 약이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피카츄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발만 빼죽 보일 때쯤 학교에서 수업종이 울렸다.

"야 빨리 먹어. 늦었어!"

홀로 다 먹고 기다리는 중민은 다급하게 두 친구를 보채더니 빨간불인 횡단보도를 먼저 무단 횡단해 건너갔고 바로 그 뒤로 영준이 따라갔다. 민영은 남아있는 발을 작은 입에 전부 넣어버리고는 나무젓가락을 분식집 선반에 올려두고 곧장 친구들을 따라 뛰었다.


"쾅~! 끼이이이익..."


달려가던 중민과 영준은 갑작스러운 굉음에 깜짝 놀라 뒤돌았을 때 프레지오 봉고차 앞 수미터에 날아 구르는 민영의 모습을 보았다. 아직 채 삼키지 못해 도로로 뱉어진 형체를 알 수 없는 피카츄 돈가스가 머리에서 스며 나오는 피에 더욱 붉게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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