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나서야 알게 될 때도 있어요
“요즘 어때요?”
“인생 노잼시기라고 아세요? 제가 딱 그 상태에요. ”
“요즘 운동을 못 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여기서, 평소의 나라면, 나의 직장 상사인 이 사람에게 “그런가봐요. 하하.” 하고 넘어갔겠지만, 나는 답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방황 중이었기에 좀 더 진실하게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운동을 하면, 잠깐이라도 뭔가에 몰입하는 거니까 스트레스도 풀리고 다른 걸 잊을 수 있겠지만, 그게 일시적이라는 걸 알아요. 운동을 멈추면 언제라도 또 이런 상태가 찾아올 거예요. 그보다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말하고서 아차. 내가 퇴사하겠다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건 아닌데. 해명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상사가 말했다.
“거북 씨는 아티스트라서 그래요, 아티스트. 그래서 재미없고 따분한 일을 하면 죽고 싶고. 내가 왜 살지? 싶잖아요.”
저...죽고 싶진 않아요...
이어서 직장 상사가 물었다.
“바다 여우에 관한 그림책은 어떻게 됐어요?”
전에 밥을 먹으면서 그에게 바다 여우 그림책에 대한 구성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어요. 그렇잖아도 요즘 자꾸 그게 생각나네요. 빨리 시작해야 할까봐요.”
“저도 곡 작업 하는 걸 미루고 미뤄두다가 어느 날은 진짜 따분하고 도저히 할 게 없어서 곡 작업이나 하자, 하고 곡 작업을 했어요. 작업을 끝내고 나니까 ‘아, 이걸 했어야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하고 나서야 깨닫는 경우도 있어요. 했어야 하는 일. 그림책을 만드세요. 바다에 사는 여우. 그거 제목이 뭐였죠? ‘여우는 왜 바다로 갔을까?’ ‘바다에 왜 여우가 있을까?’였나요?”
“..다 틀렸어요.. 그냥 ‘바다여우’에요.”
그런 대회를 나누고 카페에서 나왔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의 짧은 대화였고, 해가 지고 있는 하늘엔 어스름한 푸른빛이 조금 남아 있었다.
비가 왔다. 우산을 펴들었다. 저녁을 먹으러 나오던 때보다 빗줄기가 약해져 있었다.
“다행이네요, 비가 덜 와요.”
“그러네요.”
약해진 빗줄기만큼,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끄적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