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에 의미 부여하는 자신을 위한 변명
어떤 상황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면 내 마음을 달래기 편하다. 비슷하던 날이 특별한 날이 되고, 스쳐 지나던 장소가 뜻깊은 장소가 되고, 쓸데없다 느껴지던 일도 소중한 일이 될 수 있다.
삶은 의미의 연속이다. 나에게 가족의 생일은 꼭 챙겨야 하는 연중행사이고, 아이가 일곱 살이 되는 해에는 반드시 둘만의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 결혼기념일보다 중요한 날은 남편과 내가 사귀기 시작한 날이며, 크리스마스 홈파티는 꽤 중요한 연말 행사이고, 각종 징크스를 기억하며 스스로 꽤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나와 내 가족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가 붙인 의미들이다. 새로운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는 것은 가치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도 내가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나에게 더욱 특별해진다.
하지만 조금만 더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의미를 부여하는 건 현실의 모자람을 조금이나마 채우려는 의식 같은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조금 부족한 현실에서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말이다.
대한민국이 모두 다 힘들었던 그때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연하던 일상이 바뀌었고, 늘 하던 일 중에 할 수 없는 게 많아졌다. 불평하고 떼를 써봤자 달라지는 게 없을 거란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부족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모자람이 티 나지 않았으면 했다. 그냥 이전과 비슷해 보이기만을 바랐다. 나의 결핍이 나의 단점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
나는 작은 선택의 실패가 싫었다. 그래서 현재 나의 가장 최선을 찾고 그것에 만족하며 행복함을 느끼려 애썼다. 너무 멀리 있는 행복을 찾지 말고 지금 내 앞의 행복에 만족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다 보니 짧은 여행에도 의미가 있어야 했고, 그 의미가 스스로 이해되어야 했다. 수많은 의미 부여를 하며 살아온 셈이다. 두려움도 많고 걱정도 많은 쫄보의 인생은 그렇게 수많은 의미와 작은 행복이 가득해졌다.
얼마 전 큰아이가 슬쩍 다가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우리 초6 여행을 가는 건 어때요? 나는 엄마랑 갔던 일곱 살 여행이 너무 좋았거든요. 엄마가 동생 일곱 살 여행으로 제주 갔을 때도 얼마나 부러웠는데. 중학교 가기 전에 초6 여행 가면 안 돼요?”
그냥 떠나면 될 일을 꼭 이유를 만들고 그것에 대한 생각까지 정리하고야 마는 복잡한 엄마라서, 아이는 또 그런 엄마의 무수히 많은 생각을 닮아서 우리는 삶에 이렇게 또 의미를 부여하며 산다. 지난겨울 초6 맞이 제주 여행을 다녀오며 탔던 비행기가 마지막 비행기가 된 현실을 보면 아이의 작은 의미 덕분에 우리 모녀는 행복한 추억을 하나 더 얻은 셈이다. 이 얼마나 소중한 의미 부여인가!
“매일 똑같은 날인데 왜 굳이 명절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다들 모이는지 아느냐?”라고 물었던 김정운 교수의 한 문장이 생각난다. 명절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재밌게 살자는 선조들의 지혜라고 했던 유쾌한 그 말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건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나에게 셀프 토닥 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여성 독립매거진 2W 매거진 8호 <모자람의 쓸모>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