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기혼자의<결혼 탈출>리뷰
제목부터 부담스러웠다. 거실 서재에 꽂아두기 민망한 제목이랄까.
근데 읽고 나니 어쩜, 스릴러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초반 그녀의 고민은 기혼자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 같아 보였고, 선택의 순간에 망설이는 그녀가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알아가는 모습에 나를 보듯 그녀의 흐름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익숙하면 생각이 멀리 그리고 깊게 가지 못한다. 그것의 방향이 나와 멀어지고 있어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기도 한다.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지, 하고 다짐하던 우리는 막상 자신의 일이 되었을 때 제대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나 안다. 어쩌면 나 같아도 그런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는 공감을 하며 책에 더 빠져들었던 것 같다.
페미니스트 책을 이제야 읽기 시작한 나는 정확한 명칭도 의미도 아직 잘 모르지만 책들이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은 하나라는 점은 확실히 알 수 있다.
나는 나라는 것. 그것만으로 존재의 이유가 있으며 나로서 인정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다.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나조차도 몰랐던 여러 일을 함께라는 이유로 버티고 이어올 이유는 없다. 내가 나 일 때만이 제대로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
여전히 어렵지만 하나씩 배워가며, 내 딸들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해야지, 이런 대답을 해야지, 연습해본다.
어제저녁, 별일 없이 엄마 미안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물었다.
"뭐 잘못했어? 엄마도 모르게 미안한 일을 한 거야?"
수시로 이야기해도 아이는 아직 잘 모른다. 습관적 사과 또한 스스로 지켜내야 할 자존감이라는 사실을.
장미 씨가 말해줬다.
"지금의 내 안에는,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고개 숙이던 예전 행동을 그만하겠다는 결심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거기에는 지나친 친절이나 습관적 감사 또한 경계하겠다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세상의 손가락질이 두려워 스스로를 질책하고 위축되고 고개 숙이던 자신으로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p. 141)."
어제 집으로 가는 차에서 생각했다.
이런 느슨한 연대가 너무 좋다고.
p. 125
이를 '인생 닭다리론'으로 명명한 지금의 나는 타인을 위한다며 넘겨짚어 무언가를 참지 않는다. 그게 꼭 타인을 위한 선택도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싫으면 싫다고 하고 좋으면 좋다고 한다. 혼자 철학 책 뒤적이며 끙끙 앓지 않고 두려움을 후려쳐 용기를 가장하지 않는다.
...
그토록 달라붙어 지키고자 했던 것을 꿈처럼 떠나보낸 뒤 비로소 나는 주변과 연결될 수 있었다. 그때의 막막한 고독이 사라진 지금 나는 내 곁의 사람 그리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도 공감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보이지 않는 연대감이 나를 가장 나답게 한다.
보이면 보이는 대로, 보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대로, 나와 연결된 수많은 사람이 내게 응원을 전하고 있다는 믿음이 나를 살게 한다. 그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준다면 좋겠다.
p. 142
하지만 나를 방어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며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내가 내 자존감을 붙잡고 스스로 서 있으려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든 어떤 관습이, 통념이, 걱정을 가장한 무례함들이 내 일상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 너무나도 쉽게 내 삶의 틀을 무너뜨릴 수 있다.
얼마 전부터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그녀들과 만나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이 느슨한 관계가 너무나 행복하여 독서모임을 위해 쓴 독서록을 남겨두고자 한다. 오래도록 손으로 써온 나의 독서록 습관을 브런치로 옮겨오려니 시원섭섭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설레기도 하다. 나의 독서 기록이 누군가의 독서 리스트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