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봄을 느끼는 순간이 있지
십 대가 막 되자마자 지방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동네 언니들과 놀러 가는데 나를 데려가 주었다. 도심에 살았던 나는 그때 처음 냉이를 보았다. 식탁이 아닌 땅에서 말이다.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참을 걸어가 도착한 곳에는 파릇파릇 초록색 어린 풀들이 넓고 기다란 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언니들에게 호미 사용법을 배우고 냉이의 생김새를 익힌 다음 허리를 숙여 몇 시간 냉이를 캤다. 내 기억에는 요즘 친환경 기사에 나올법한 빈티지한 소쿠리에 흙이 자연스레 묻혀있는 냉이와 호미가 담긴 이미지로 남아있지만, 현실은 냉이 반 잡풀 반이었다. 친구는 깔깔 웃으며 이건 냉이처럼 생겼는데 먹으면 큰일 난다고 다 빼버렸더랬다.
결국 그날 언니들이 좀 더 챙겨준 냉이와 쑥을 봉투에 담아 집으로 갔고, 엄마에겐 내가 캤노라 당당하게 건넨 찬란한 봄날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봄이 되면 호미를 찾아 들에 나가보곤 했지만, 그날 같은 즐거움과 수확의 기쁨은 맛보질 못했다. 관심사가 다양해진 십 대를 보내며 내 봄의 전령사 냉이는 어느샌가 그 힘을 잃어버렸다.
누구나 봄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개나리나 목련의 꽃봉오리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사람도 있고 멀리 보이는 산이 연초록으로 변하는 것에서 봄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다. 길거리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봄을 느끼기도 하고 살랑 부는 바람에 봄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 봄은, 향기다. 코에 닿는 봄바람에 감도는 은은한 꽃향기도 좋지만, 거친 땅을 비집고 올라온 작은 풀의 향기에서 진짜 봄을 느낀다. 특히 냉이 향. 흙냄새를 닮기도 한 냉이 향은 겨우내 마르고 거칠어진 땅을 비집고 올라온 냉이만이 가질 수 있다. 요즘처럼 하우스에서 재배한 냉이는 그 향이 없다.
여전히 냉이를 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지만, 막상 냉이를 캐러 갈 수 있는 곳이 이제 내 주변엔 없다. 아쉬운 마음에 하우스 냉이라도 살 수밖에. 주방에 그나마 남아있는 봄 향기 맡으며 요리하고 그렇게 봄을 반긴다.
지난해 겨울부터 초여름까지 매주 아이들과 산에 다녀왔다.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야트막한 산 위주로 가벼운 트레킹을 다녀온 것인데, 코로나로 학교도 학원도 못 가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봄의 언저리에서 산을 다니다 보니 산 초입에 냉이를 비롯한 봄나물들을 심심찮게 발견했다. 혼자서 반가워하는 엄마를 봐도 아이들은 별 관심이 없다. 초록색 반찬은 별로라는 아이들에게 냉이는 환영받지 못한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그 향과 맛을 아이들이 좋아할 리 없다.
“이게 먹는 거라고요?”
한참을 들여다본 아이가 의아한 목소리로 묻는다. 손사래 안치면 다행이다.
아는 풀 혹은 꽃을 만나면 엄마는 꽃 검색 앱을 열고 사진을 찍어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냉이는 단골 검색어다. 냉이는 만날 때마다 엄마가 그 이름을 알려준다. 땅에 코를 대고 향을 맡기도 한다. 그리고 빙봉을 따라 긴 계곡 아래로 떨어져 버린 오래된 추억을 읊듯 엄마의 어린 시절 냉이 캐던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이들은 고리타분한 엄마의 추억 이야기겠지만 이야기하는 엄마는 할 때마다 즐거우니 그것으로 되었다 싶다.
냉이와 함께 비슷비슷한 봄 식물들이 산 바닥을 조금씩 채워나가며 그렇게 천천히 봄은 온다. 한 발 한 발 걸으며 산의 바닥부터 차오르는 봄기운을 느꼈던 지난해의 추억은 냉이만큼이나 나에게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산에서 냉이를 만나고 바닥에 코를 대고 향기를 맡고 온 날은 어김없이 냉이 반찬이 나오는 날이다. 아이들은 된장찌개에 향이 진하다며 두부만 건져 먹고, 냉이무침은 손도 안 대겠지만 그럼에도 우리 집 식탁에 봄은 냉이와 함께 온다.
올해도 하우스 냉이 반찬이 벌써 식탁에 올라왔으니, 우리 집과 나에게 봄은 성큼 다가왔다.
여성 독립매거진 2W 매거진 10호 <봄의 이야기들>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