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롱지다 Jan 06. 2024

세상의 테두리가 딱 요만큼

2401061503

혹시나 해서 창밖을 내다보니 노르스름한 가로등 빛을 품은 눈이 세상에 내려앉고 있었다. 소복이 쌓인 눈을 머리에 이고 주차된 하얀 차들은 장난감 자동차 모양의 몽실몽실 솜사탕 같다. 근사한 하루가 시작될 조짐이다. 핀조명을 받은 것처럼 유난히 아늑해 보이는 가로등 아래 서있는 앙상한 가로수에 눈이 머물자 어릴 적 각인된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그날, 엄마의 하루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7살쯤 되었을 나와 3살 어린 여동생 그리고 엄마는 막 공중목욕탕을 나와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우리 집은 대구 두류공원과 대명시장 사이에 있었고 목욕탕은 시장 안에 있었다. 목욕 후 바나나우유를 먹는 것이 국룰이던 시절 바나나우유에 가는 빨대를 꽂아 아주 조금씩 빨아먹으며 시장을 벗어나 집 근처 모퉁이를 돌았을 때 가로등 하나가 우리 세 모녀를 비추고 있었다.


웬일인지 엄마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나도 동생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엔 짙푸른 배경에 총총히 반짝이는 별들이 콕콕 박혀있었다. 늘 보던 거라 별 감흥이 없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별자리를 하나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어떻게 별들이 이어져 별자리가 되고 어떤 영웅의 흥미로운 서사가 담겨있는지 엄마는 손가락을 까만 하늘에 대고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동생과 나는 그 손가락 끝이 움직이는 대로 눈과 고개를 돌려가며 귀를 기울였다. 어느새 우리는 바나나우유를 문 채 쪼그려 앉아 한참 동안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 솔직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각인된 장면이라 함은 시각적 찰나에 느낀 감정과 그 후 한 겹 씩 덧대여진 생각의 산물일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우리에게만 집중하며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엄마의 표정. 그로 인해 우리는 사랑받고 있다는 충만한 느낌. 그래서 세상의 테두리가 딱 요만큼, 가로등 불빛이 미치는 딱 거기까지면 좋겠다는 생각.


살다 보니 세상의 테두리는 손 닿을 수 없을 만큼을 벗어나 가늠할 수 없이 멀어져 갔다. 그 크기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 불안함이 삶을 휘몰아칠 때 나는 가로등 밑에 쪼그려 앉은 그때처럼 온 세상이 내 눈밖에 벗어나지 않아 아늑하기만 한 그때를 그리워한다.


궁금해서 지도를 찾아보았다. 2학년까지 다녔던 성명초등학교, 주말이면 아빠 자전거 뒤에 타고 놀러 간 두류공원이 집 근처에 있었다. 아마도 저쯤이 우리 집이 아니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잘 지내고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