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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Sep 18. 2022

누구나 평등한 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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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 씻으러 들어갈 때마다 수건을 휘감고 최대한 거울에 들키지 않으려 허리를 숙여 총총 걸음으로 샤워실로 들어간다. 그 불편함 때문에 씻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누가 더 드러운지 잘 씻지 않는 남편과 벌이는 경쟁에서 요즘은 내가 승기를 잡고 있다. 남편은 이유도 모른 채 의기양양한 모습이다. 살면서 외모나 몸매에 자신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한 해 한 해 나이 드는 내 모습이 좋았다. 늙음은 누구나 평등하게 하니까.


건강검진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종종 소화가 안되고 이제는 예상 가능한 시기에 찾아오는 이유 없는 두통에 만성 불면증으로 시도 때도 없이 다양한 약을 달고 살았다. 이를 지켜보던 남편과 아이들의 성화에 마지못해 받기로 한 것이다. 내 나이쯤 되면 당연히 유전질환이 발현된다. 솔직히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의 부재로 아이들이 얼마나 슬퍼할지 알지만 단 한 번만은 이기적으로 살다 죽고 싶다.  어떤 책에서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거라면 잘 해내지 못해도 어느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았다.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과 교감을 나누었다. 남편과 시부모님께도 최선을 다했다. 다만 엄마와 아빠께는 이제야 뭔가를 해드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 음...그래도 나 같은 딸을 키워내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셨을 것이다.


지금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수면내시경을 하고 나오니 위에 정체모를 혹이 있어 조직검사를 맡겼다고 했다. 자궁에도 뭔가가 보인다고 한다. 어쩌면 가슴에도 뭔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빠는 위암이었고 고모는 유방암이었으니까. 물론 두 분 다 잘 살고 계시다. 암이어도 상관없지만… 그것으로 인해 누구에게나 평등한 늚음이 더 빨리 찾아올까 봐 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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