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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파트와 오래된 나_
한 동네에 40년째 살고 있다고 하면 지겹지 않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내 의지로 이곳에 머물렀다면 좋았으련만 결혼 전에는 부모님과 살았고 결혼 후에는 시부모님이 정해놓은 곳에 살고 있으니 남편과 헤어지지 않는 한 떠나지 못하리라.
우리 동네는 대치동 학원가와 가깝다. 걸어서도 갈 수 있고 자동차는 10분 내외, 버스도 세 정거장이면 충분하다. 이런 접근성 덕분에 타 지역에서 대치동 입성을 망설일 때 중간 정거장처럼 거쳐갈 수 있는 곳으로 취학 전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추천된다고 한다. 그렇게 충분히 간을 본 사람들은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대치동으로 건너간다. 여자아이들의 경우는 좀 예외다. 운이 좋으면 이사를 가지 않아도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이름 있는 '13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사립여고'에 입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나의 모교이자 내 아이가 다니고 있는 곳이다. 학군으로 본다면 대치동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대치동 학원에서 초중등을 보낸 아이들이라면 쉽게 등급을 딸 수 있다는 소문이 나서 학생부 전형, 교과전형 등 내신성적이 중요한 아이들에게 충분히 메리트가 있다고 한다.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학교로 배정받기 위해 대치동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부모들은 주소를 미리 옮기거나 이사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시절 전학 온 아이들은 본의 아니게 동네 사정에 통달한 내게 호감을 보였다. 나를 통해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친해지고 나면 여지없이 나를 떠나갔다. 학부모가 된 후에도 나의 쓰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곳으로 전학 온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공부였다. 나 또는 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순간, 더 이상 유용한 정보 - 이를테면 단계별로 촘촘히 구성된 국영수 학원 목록이나 상위 1% 엄마들의 모임 또는 연락처 같은 - 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안 순간 그들은 그 살갑던 눈빛을 더 이상 내게 보내지 않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그 의도를 번번이 그들이 떠날 때쯤에야 알아차렸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거쳐 40대를 지나는 동안 나는 잠시 들렀다 사라질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파트 초입에 들어서면 깜짝 놀랄 만큼 오래된 아파트 풍경이 펼쳐진다. 재건축이 임박한 아파트는 2년 전 중단된 외벽보수 공사의 땜질자국으로 온 벽이 얼룩져 있다. 해 질 녘이 되면 그 형상은 온몸에 멍자국이 든 것처럼 훨씬 더 기괴하고 을씨년스럽다. 스위트홈(네플릭스 드라마)에 등장하는 건물 풍경을 생각하면 된다. 세상의 트렌드가 바뀌었는지… 최근에는 학군을 고려해 큰 맘을 먹고 와도 매물로 나온 집들을 둘러보면 십중팔구는 손절한다고 한다. 아파트도 내 마음처럼 외부인들에게 미리 철벽을 치는 걸까? 우스개 소리로 오늘의 마음을 툭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