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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Nov 19. 2022

봄 춘, 아름다울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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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춘, 아름다울 미봄 춘, 아름다울 미

남편은 나를 ‘춘미’라 부른다. 내가 세상에 나온 지 두 달 만에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5대 종손인 아빠는 소중한 첫딸의 이름으로 춘미는 거들떠도 안 보셨다. 단 한 번도 불린 적 없는 이름인데 남편은 춘미의 존재를 알고부터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춘미가 좋다. 한겨울에 태어난 나를 보며 그해 겨울을 지나 다음 해 봄에도 살고 싶으셨던 할아버지의 바람이 春美에 담겨있으니까.


 이름을 쓰지 않아서 그랬을까? 사계절  유독 겨울이 힘들었다. 찬바람이 불면 그대 생각이 나는  아니라 동상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빨갛게 통통 부풀어 오른 발가락을 남몰래 꼼지락거리며 교실에 앉아 있으면 눈물이 차올랐다.  발가락 모두 모기에 물린 것처럼 소름 끼치는 통증도 참기 어려웠지만  힘든  따로 있었다. 아픈  때문에 책상에 묶여 자유로이 오가는 친구들을 바라만 보는 일이다. 하얀 눈이라도 내리면 운동장으로 뛰쳐나간 아이들이 신나게 떠드는 소리에 더 외로워졌다. 학창 시절 내내 겨울은 동상과 동의어였고 외로움의 언어였다. 이름이 춘미였다면 동상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실은 겨울, 동상, 외로움을 말하려고 시작한 글은 아니다. 그냥 지금의 내 이름보다 춘미가 더 좋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면 뭔가가 잘못되었거나 요청이 있을 때다. 늘 지적받고 수정하고 도와주는 일만 하는 생에서 내 이름은 그 쓰임을 다할 것이다. 애잔해서 불리고 싶지 않은 이름이다. 그래서 춘미라 불러주는 남편이 때로는 힐링이 된다. 물론 남편은 이 오래된 이야기와 심오한 내 마음을 알리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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