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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춘, 아름다울 미봄 춘, 아름다울 미
남편은 나를 ‘춘미’라 부른다. 내가 세상에 나온 지 두 달 만에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5대 종손인 아빠는 소중한 첫딸의 이름으로 춘미는 거들떠도 안 보셨다. 단 한 번도 불린 적 없는 이름인데 남편은 춘미의 존재를 알고부터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춘미가 좋다. 한겨울에 태어난 나를 보며 그해 겨울을 지나 다음 해 봄에도 살고 싶으셨던 할아버지의 바람이 春美에 담겨있으니까.
그 이름을 쓰지 않아서 그랬을까? 사계절 중 유독 겨울이 힘들었다. 찬바람이 불면 그대 생각이 나는 게 아니라 동상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빨갛게 통통 부풀어 오른 발가락을 남몰래 꼼지락거리며 교실에 앉아 있으면 눈물이 차올랐다. 열 발가락 모두 모기에 물린 것처럼 소름 끼치는 통증도 참기 어려웠지만 더 힘든 건 따로 있었다. 아픈 발 때문에 책상에 묶여 자유로이 오가는 친구들을 바라만 보는 일이다. 하얀 눈이라도 내리면 운동장으로 뛰쳐나간 아이들이 신나게 떠드는 소리에 더 외로워졌다. 학창 시절 내내 겨울은 동상과 동의어였고 외로움의 언어였다. 이름이 춘미였다면 동상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실은 겨울, 동상, 외로움을 말하려고 시작한 글은 아니다. 그냥 지금의 내 이름보다 춘미가 더 좋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면 뭔가가 잘못되었거나 요청이 있을 때다. 늘 지적받고 수정하고 도와주는 일만 하는 생에서 내 이름은 그 쓰임을 다할 것이다. 애잔해서 불리고 싶지 않은 이름이다. 그래서 춘미라 불러주는 남편이 때로는 힐링이 된다. 물론 남편은 이 오래된 이야기와 심오한 내 마음을 알리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