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매의 여름밤>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울음은 다른 종류의 울음과 조금 달랐다. 재채기를 하듯 터져 나오는 가려운 울음이었다. 마음이 간지러워서 참아야겠다는 생각이 미처 들기도 전에 터져 나오는, 갑자기 불쑥 손을 내미는 울음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적기가 쉽지가 않다. 누구도 쉽게 상대를 속단하지도 않고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 희미한 경계선을 치고 있는 이틀 테면 텃밭의 작은 울타리 같은 조심스러움이 그득하다. 그 울타리를 때론 바라보고 때론 한 발자국 넘어가 보며 만나고 애처로워한다.
남매의 여름밤은 어떤 가족들의 어떤 한순간을 그려낸다. 사정을 알 순 없지만 터전이었던 본인들의 집을 떠나야 하는 옥주와 동주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오래된 주택에 불쑥 나타난다. 옥주의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돌보아드린다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옥주는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알고 있고 그 때문에 부끄럽다. 고모 또한 급작스레 할아버지의 집으로 들어온다. 오랜만에 옥주와 동주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관객들은 알 수 없는 모종의 이유로) 고모부와 별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잠시 할아버지의 집에 할아버지, 아버지, 고모, 옥주, 동주 이렇게 5명이 모인다. 그리고 가족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아주 일시적인 동거를 시작한다. 영화 내내 이렇다 할 특별한 사건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쩌면 특별한 사건일 수도 있는 가족 개개인 각각의 속내들, 전사들을 일부러 감춘다. 그리곤 그들이 여태껏 맺어왔던 관계들, 그리고 조바심으로 슬쩍 내비치는 고백들로 영화는 할아버지의 아늑한 집을 그득 채운다.
영화는 그들의 ‘모여 있음’을 조용히 목격한다. 보이지 않는 희미한 울타리들이 겹치면서 우리는 겹쳐지는 그들과 온전히 그들 각각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남매의 여름밤>은 바로 그런 동시적인 관찰, 동시적인 감정을 관객들에게 아주 훌륭하게 보여준다. 이야기가 진행되어가면서 아버지와 고모의 관계가 옥주와 동주의 미래 같아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옥주와 동주의 유년시절이 아버지와 고모같이 보이기도 하면서 전자는 위로가 되고 후자는 서글퍼지는 동시적인 감정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이 영화의 정서가 된다. 그래서 가족이 집에 함께 모여 있는 지금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처럼 느껴진다. 할아버지를 여의고 고모는 집으로 돌아가고 어머니는 잠시 발만 담갔다가 떠나가 버렸다. 잠시 머물렀다가 스쳐갈 여름 방학 동안의 거처지만 한 순간을 목격하였을 뿐이지만 나는 그들의 여름밤은 어떻게든 돌아올 것이라 믿을 수 있다. 더 무더울지도 모르고 더 축축할지도 모르고 푸름으로 그득 찰지도 모르지만 여름은 다시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