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1
까미노에서 내가 짊어진 가방의 무게는 약 10kg-11kg. 수화물로 9.1kg 무게의 배낭을 붙였고, 슬링백에 산티아고 순례길 가이드북, e-book 리더기, 휴대폰, 휴대폰 충전기, 이어폰, 지갑, 여권, 노트 등을 넣어 비행기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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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20~30km 전후의 거리를 걷는 일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피로가 누적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무거운 '배낭'이 온몸에 고통을 더해주었다. 계속 걷다 보면 10kg의 무게에 적응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종이 한 장의 무게라도 더 덜어내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버릴 게 없었던 나는, 가지고 갔던 여행 책을 매일 조금씩 찢으며 아주 작은 무게라도 덜어내기 위해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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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8년 3월~4월 사이 길을 걸었고, 따라서 늦겨울의 매서운 추위와 이른 초봄의 따스한 날씨를 경험했었다. 그리고 그 계절에 맞춰 짐을 꾸렸다. 비행기 수화물로 붙였던 46L 크기의 배낭에는 대략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다.
장갑, 모자, 우비, 빨래망, 키링 인형, 스포츠 타월, 슬리퍼, 선글라스, 발가락 양말, 보조 배터리, 어댑터, 세면도구, 등산용 방석, 스패츠, 아이젠, 워머, 현금, 세면도구, 휴대폰 보조 배터리, 자물쇠, 등산스틱, 안대, 귀마개, 화장품, 상비약, 슬리퍼, 실, 옷핀, 빗, 필기구, 김치
이 목록을 보다 보면 모자나 선스틱 등 필수 아이템은 당연히 챙겨야지! 싶겠지만, ‘저런 건 왜?’하고 의문이 드는 아이템도 있을 것이다. 히지만 바로 그 챙겨도 안 챙겨도 될 아이템들 덕분에 내 여정은 보다 순탄할 수 있었다고 자신한다. 놓치기 쉽지만, 잘 챙긴다면 까미노 라이프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아이템 몇 가지를 소개한다.
등산스틱
스페인 북부를 가로로 가로지르는 ‘프랑스 길’을 걷다 보면 산악지대, 고원지대, 평야 등 다양한 지형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발바닥의 물집은 기본이고, 다리에 부상을 입는 분들도 종종 봤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이기에 아픈 발을 끌며 마지막까지 걸어야 하는 것도 나 자신뿐이다. 이때, 기장 큰 의지가 되는 것 중 하나가 등산 스틱이다. 등산 스틱을 가지고 오지 않아 현지에서 질이 낮은 제품을 비싼 가격에 사는 사람들이 종종 목격했다. 등산스틱은 한 번 사면 굉장히 오래 쓰는 물건이니, 한국에서 되도록 가볍고 휴대성이 좋은 것을 미리 구비해서 가져가면 좋다.
귀마개
나는 최대한 공립 알베르게 이용을 우선순위에 두고 숙소를 이용했다. 낡아서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이 거쳐간 의미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물론 지방자치단체나 지역 교구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값이 싸다는 것도 큰 이점이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호스텔에 비해 공립은 허술하게 관리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요즘은 까미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서인지 운영과 시설 관리가 잘 이뤄지는 곳도 많았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불편이 여전히 남아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코 고는 소리’였다. 나는 순례길을 걸으며 남녀공용의 커다란 도미토리를 처음 이용해 봤는데, 여러 가지 불편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단 한 가지의 불편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소음’이었다. 반나절 이상을 햇볕, 바람, 비, 우박과 싸우고 천근 같은 배낭의 무게를 견디며 걷는 순례자들이 깊이 곯아떨어진 뒤 내는 코골이 소리를 상상해보라. 그 드르렁 소리는 ‘오늘 하루도 잘 끝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슬그머니 찾아오던 잠을 단 번에 쫓아내기도 했다. 이때 조그마한 폴리우레탄 소재의 말캉한 귀마개가 구세주처럼 내 귀에 콕 박혀서 나의 지친 몸과 정신에 잠이 침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소리에 예민하다면 꼭 귀마개를 챙기기를.
넥워머
‘수족냉증’이라고 들어봤는지? 내 평생을 따라다니는 이 질환의 증상은 추위를 크게 느끼지 않을 만한 온도에서도 손과 발에 냉기를 느끼는 것이다. 평소에도 추위를 많이 타는데 까미노에서는 오죽했을까? 눈이 펑펑 쏟아지는 산지를 두 번이나 넘어야 했고, 비와 강풍이 피로를 상징하는 곰처럼 온몸에 쩍 들러붙는 메세타를 몇 차례나 만났으며, 먹구름과 안개, 지겹게 쏟아붓던 비 세례로 우중충의 끝판왕을 달리던 갈라시아 주를 지나야 했던 그 길에서 말이다. 이렇게 변화무쌍하며, 인상적인 추위를 경험할 수 있는 까미노에서 내가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건강을 유지하게 도운 아이템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넥워머’다. 특히 날씨가 맑은 날에도 산길을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체온 변화를 경험해야 했는데, 넥워머는 탈착이 용이해 걸으면서도 온도 변화에 섬세히 대응할 수 있었다. 겨울에는 목, 손목, 발목 등 ‘목’만 잘 챙겨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고도 하지 않는가. 나는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의 까미노를 걷는 이들에게 ‘넥워머’를 추천한다.
보조가방
까미노는 단거리 달리기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과 비슷하다.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매일 20~30km 정도의 거리를 걷고 나면 알베르게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보통은 이른 아침에 걷기 시작해서 이른 오후나 초저녁에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씻고, 빨래를 한 뒤 보통 개인 시간을 가지는데 나는 이 시간을 활용해 주로 마을 구경이나 식료품을 구매했다. 매일 찾아오는 이 자유시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보조가방이다. 하루 종일 어깨를 짓누르던 커다란 배낭을 내려놓고, 지갑과 휴대폰, 이어폰, 작은 노트와 펜 , 순례자 여권 등 필수품을 챙겨 마을을 돌아다니면 그렇게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걸어야 하는 순례자’의 의무를 내려놓고 조그마한 가방만 가지고 마실 가는 자유로운 시간 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처럼 매일 새롭게 방문하게 될 마을을 쏘다니며 구경을 할 생각이라면 가볍고 작은 보조가방을 챙겨가길 권한다. (이때의 핵심은 ‘가볍고 작은!’이다.)
책, <배움의 시간을 걷는다>의 일부입니다. 출간 전 사전 펀딩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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