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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레다 Dec 24. 2020

손대시면 안 돼요!

2020년 12월 24일


강박증 관련 장애인 피부 뜯기 장애(SPD)가 심했다.

상처가 아물기 전에 뜯기를 반복했는데,

뚜렷한 스트레스 상황일 때는 알아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을 때에도 증상이 나왔다.


하아... 저기요, 나님.

대체 어쩌란 말인 거요!


날이 추워지며 상처 부위가 가려웠다.

피부가 아무는 과정에서 가렵기도 했고,

몇 번의 충동을 참다가 긁으며 뜯기도 했다.


상처는 제때 아물지 못했다.

피가 나고 얇게 새살이 돋을 때쯤 다시 뜯길 반복 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피부는 피가 고이기 전에 진물을 냈다.


요 며칠 동안 새벽 2시 내외로 깨곤 했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과 뜯으려는 충동 사이에서

상처부위를 뜯는 대신 손바닥으로 쓸어내며 잠을 설쳤다.

차라리 잠이 들면 좋겠건만.


어제도 역시 비슷한 시간에 불현듯 잠에서 깼는데,

무심결에 이마에 얹은 손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피 냄새와 연고 냄새가 섞인 듯한 냄새가.

잠든 사이에 상처부위를 만진 것 같았다.


덜컥 겁이 났다.


이봐, 진짜 겁난 게 맞아? 아니, 진짜 그런 거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어?

고쳐보려고 더더더더 열심히 애써야 하잖아.

낫고 싶지 않은 거 아냐? 간절함이 있긴 한 거야?


이렇게 자신을 닦달하려 할 때 -

그런대로 무사히 살아왔던 내가

경험으로 체득한 문제 해결 방법이 전혀 먹히지 않는 상황 앞에서 (이미) 충분히 당황해하고 있는데도 스스로를 몰아세우려고 눈을 치켜뜨려 했음을 -

잽싸게 알아챘다.


온몸에 잔뜩 낀 긴장이 스르륵 풀렸다.

참,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조금 슬펐다.


겁이 났구나.

여전히 마음 어딘가 힘든가 보구나.

뚜렷한 이유를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조급해하지 말자.


어두운 방에 누워 스스로를 다독였다.

자다 깨어 눈 뜬 채 나와 내가

치고받고

울고안

그랬다.


오늘, 붕대와 밴드, 연고제를 잔뜩 샀다.

자해에 가까운 증상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고 싶어서.

스스로에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약을 바를 때마다 피부가 불에 그을리는 느낌이었다.

쓰읍- 쓰읍-

날카롭게 앓는 소리가 꽉 다문 이 사이로 새어 나왔다.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선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싸움은 밖에 있지 않고 나와 함께 있었단 걸 느꼈다.

이내 싸움이란 것도 불분명한 것임을 함께.

그렇다.

마음으로 느꼈다.

알고 있다고 했던 건 그저 생각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거울 앞에서 붕대를 감고 선 내 모습은 안다는 것을 느끼도록 했다.


주섬주섬 웃옷을 입으며 생각했다.

언젠가 이 날을 이야기할 때가 있겠지.

경험으로 알게 된 우울과 불안을 산뜻하게 이야기할 날이.

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가벼워질 시간이 아주 많이 다가오고 있는 거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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