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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에달리 Jul 05. 2023

선단공포증

젓가락을 흔들지 마세요. 팔꿈치를 너무 빼지 마세요. 

눈알이 지근거린다.

점심시간 마주 앉은 동료의 현란한 젓가락 끝은 달구어진 창이 되어 눈을 찌른다. 

검은 눈동자 바로 위의 흰자가 아릿하다. 한 마디 건 낼 때마다 휘둘러지는 쇠막대기는 마치 볼록렌즈를 비춘 듯 내 눈 가득 꽂혀버린다. 

눈꺼풀은 무력하게도 감기지 않는다. 감는 순간 얇고 투명한 막이 되어버린다. 


하긴, 눈을 감을 수 있다 해도 그게 뭐 어쩔 수 있겠어?

손바닥 끝으로 눈두덩이를 눌러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사실 젓가락은 닿지 않았고 두툼한 손이 눈알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만 한다.


흘깃 나를 보며 말을 멈추는 동료가 혹여나 찰나의 찡그림을 알아차렸을까 싶어 금세 표정을 푼다. 우리는 어제와 같은 이야기를 오늘도 평범하게 나누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들이 견디기 힘들어지는 때가 있다.

으레 그 기간이 오면 책 읽기란 사치스러운 행동이 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책 끝의 모서리가 눈알을 긁는다. 누런 갱지가 되어버린 오래된 책은 아릿한 통증과 더불어 모서리가 눈을 찌를 때마다 세균이 증식할 것 만 같다.

책 귀퉁이를 접어가며 애써 책 끝을 무시해 보지만 애석하게도 끄트머리는 위에도 있다. 다시 눈을 매만져 준다. 꾹꾹 눌러준다.

내 눈은 어떤 것에도 공격받고 있지 않다. 뭉툭한 손가락이 그 사실을 보증해 준다.

한 장 넘길 때마다 후벼지는 눈이 뜨거워서 귀퉁이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책 한 장에 손톱만 한 종이 쪼가리도 한 개. 

뜯겨나간 종이는 삼켜버렸다. 



눈을 감아도 자꾸만 칼이 날아들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정갈하게 벼려진 연필들이 연필꽂이에 빽뺵하게 채워져서 날아오기 시작한다. 손속을 두지 않고 마구 날아온다. 꿈도 아닌데, 상상 속의 어둠일 뿐인데도 날아오는 연필을 막을 수 없다. 간신히 연필의 공격을 다 막아냈다 싶으면 다음 스텝으로 향한다. 이제는 부엌칼이다. (가끔은 커터칼이다. 칼 날이 한 칸씩 늘어나는 커터칼) 영원히 돌을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와 같이, 눈을 감으면 언제까지고 날아드는 날잡이들을 피해야만 한다. 



칼을 없애는 상상은 불가능하지만 눈으로 날아드는 칼을 손으로 잡는 상상은 가능하다. 푹 꽂히기 전에 손뼉 치듯 날 양 편을 잡아 던져 버린다. 가끔은 던져 버린 칼이 되돌아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야구 배팅장에서의 공처럼 근거리에서 언제까지고 계속 쏘아지고 있다.

눈꺼풀을 쿡 찌르고 몽고주름을 할퀴고 결국엔 흰 자를 후벼 판다. 어두웠던 눈꺼풀 속은 빨갛게 변해버린다. 



잠은 들지 못하고 감은 눈을 다시 뜬다. 아무것도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지분거려진 눈 알을 꾹 눌러준다.

눈동자 바로 위의 흰자를 꾹꾹 눌러본다.    

괜찮다. 실재하는 것은 내 손뿐이다.



열심히 일하는 자의 펜촉, 지시하는 손가락, 날이 위로 보관 된 가위, 실 꿰인 바늘… 

눈금자를 흔들지 마세요. 

팔꿈치를 너무 빼지 마세요. 

파일철을 세워서 주지 마세요. 

펜 뒤쪽에 뾰족한 뚜껑을 꽂지 마세요. 


아니다. 밥상머리의 모서리도 아릿거린다. 손으로 눈을 감싸 쥐자. 다시 안전을 꾹 눌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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