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작업방식-읽는 사람보다 쓰이는 글이 많은 이상한 주제
소설가의 작업방식에 관한 책이 많다. 읽는 사람보다 쓰이는 글이 많은 이상한 주제이다.
작가 스스로가 어떤 생각과 고민을 가지고 글은 쓰는지, 루틴은 어떤지, 글이 쓰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등 쓰는 사람들의 일상에 관한 글이 대부분이다.
왜 그런 글을 쓰게 되었을까? 회사원은 자기의 작업방식에 대해, 직업소명에 대해 글을 남기는 경우는 드문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글 쓰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졌다.
오늘은 글이 쓰고 싶으니까. 그간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했으니까. 일상과 쓰기의 배분에 관해서 그리고 매일매일 글 감을 찾는 방법을 지금이라면 기록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본질은 회사원이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좋고 이 작은 세계에서 칭찬을 받으면 도파민이 뿜어져 나온다. 일을 잘하고 싶다. 그래서 직업으로써의 작가의 삶은 잘 모른다.
직장인으로서의 글쓰기는 바로 이런 것이다. 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든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시간만 허락한다면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두는 것.
야근은 절대 요소이지만 여남은 시간은 내가 잡고 있으니까, 스터디 카페로 향한다. 몇 개월 전 스터디 카페에 100시간을 결재해 뒀다. 여력이 될 때마다 가서 글도 쓰고 공부도 하다 보니 어느새 절반의 시간이 남게 되었다. 그동안 자잘하게 소설도 써 보고 에세이도 쓰고 또 유튜브도 열심히 봤다. 스카에 가면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치열하게 공부하는 모습이 눈에 익게 된다. 그에 비하면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재밌는 공부를 하고 있으니 절로 숙연해진다. 퇴근하자마자 의지가 넘쳐서 스카로 가진 못한다.
맛있는 저녁을 한 시간쯤 느긋하게 먹고, 카페에서 읽을 재밌는 책을 챙겨서 나를 유혹한다. 가야지, 가서 놀아야지. 그리고 유혹에 성공하여 내 자리에 앉으면 그때는 비로소 워드를 켤 수 있게 된다.
내 글쓰기의 처음은 달리기였다. 정말 쓰고 싶은 글, 써야만 하는 글, 마침내 씀으로써 살 것 같은 글이었다.
쓰지 않으면 시시때때로 달리기 예찬이 입으로 흘러나오고 에너지로 뿜어져 나왔다. 잘 정리해서 발설하지 않으면 누구를 만나도 달리기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할 것 같아서 글이 되었다.
쓰고, 쓰고 또 쓰다 보니 다행스럽게도 돈을 받아야만 입을 열 수 있을 만큼 절제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써야만 살 것 같은 글이 없는 요즘은 어떨까? 빈 창을 두고 글 감을 찾을 때는 다른 사람들의 글 틈을 먼저 본다. 목차를 보는 것도 좋고 단락을 통째로 다 읽어도 좋고 머리말만 봐도 좋다. 작가가 펼쳐 둔 폭넓은 생각을 보다 보면 나는 이랬지 하는 글 감이 절로 나온다.
만일 그 글들이 글감으로써 역할을 못한다면? 덮어도 좋고, 재미나게 읽기만 해도 좋다.
책을 읽을 때, 여기서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뭐가 있을까? 하며 읽다 보면 별처럼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긴 나는 친구와 얘기를 해도 내 얘기를 하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할지도.
의외로 읽은 주제와 다른 글 감이 나올 때도 많다. 사람의 생각이 그렇다.
오늘의 이 글은, 안자이 미즈마루의 사후작,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을 보다가 쓰고 싶어진 글이다. 미즈마루는 자기의 작품을 top30까지 꼽았는데, 작가란 왜 다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재생산하려 할까? 하다가 여기까지 글이 흐르게 되었다.
최근에 쓴 토마토 이야기도 이 책에서 나왔다. 레몬 일러스트를 볼 때였나, 아니면 히라가나 한 글자마다 하나의 주제로 글을 썼다는 하루키의 일러스트 설명을 볼 때였나.
뭐가 중요할까, 내 글이 또 이렇게 하나 나왔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