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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Jun 08. 2021

후회: 온전한 나를 향해 흐른다

#청소년인문학클래스  #단어수집





지금 우리 앞에는 타임머신이 있어! 우리가 원하는 만큼 더 어려지거나 더 나이 들 수 있지. 너는 어떤 시간으로 가고 싶니? 시간. 지나간 시간은 빽빽하게 글자가 적힌 종이 묶음을 닮았어. 앞으로 올 시간을 생각하면 이정표 없는 숲을 걷는 기분이지. 그래서 시간에 대한 질문은 늘 어려워. 천천히 생각하렴. 그동안 내 얘기를 좀 들어볼래? 나는 이 질문을 수없이 던져서 바로 대답할 수 있거든.   

   

나는 과거로 갈 거야. 나의 의지와 선택이 분명히 기억나는 나이, 열넷으로!  

   

다시 열넷이 된다면, 나의 정체성에 집중할 거야. 숨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 않을 거야.  열다섯에 나를 따돌린 친구에게 잘못이 없는데도 용서를 빌지 않을 거야. 열여섯에 착하고 순한 단짝 친구에게 모진 말을 하지 않을 거야. 열여덟에는 유행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거야, 그리고 스물에는, 서른에는,

    


나는 지금 대단히 솔직한 고백을 했어. 과거의 실수나 잘못을 뒤지는 행동은 후회와 자책을 부르는 주문이기도 하지. 거의 반평생을 살아 놓고서 후회라니, 별로지? 후회하는 어른이 될 줄 나는 알았겠니. 최선을 다해 살아서 후회 하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최선은 늘 멀리 있거나 다른 길에 있더라. 그래서 나는 자꾸만 후회를 해.      


혹시 겨우 이런 어른이라고 나에게 실망을 했을까. 하지만 잠깐만, 실망은 아직 일러. 나는 단어를 수집하는 어른이거든. 여기에서 ‘단어’는 비유가 아니라 진짜 단어, 우리가 말하고 읽고 쓰는 단어들이야. 그동안 배운 단어들은 ‘기쁨’이나 ‘슬픔’처럼 감정을 가리키는 단어도 있었고 ‘결혼’처럼 제도를 가리키는 단어도 있었고 ‘엄마’나 ‘자식’처럼 존재를 가리키는 단어도 있었지. 그런데 이 단어가 나의 삶에 진정으로 들어오는 때가 있어. 분명 일상에서 아주 익숙하게 써왔던 단어인데, 문득 새롭게 보이는 거지. 단어를 수집하는 순간이야. 좋은 책을 읽거나 좋은 사람과(어른은 물론이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한) 대화를 나누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어. 그 생각은 기존에 쓰던 단어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나만의 의미를 담은 단어가 되는 거야. 한 사람의 삶은, 단어를 다시 쓰면서 풍요로워진다고 믿어. 선생님도 이만큼 살다 보니 수집한 단어가 제법 쌓였는데, ‘후회’도 그중에 하나야. 내가 ‘후회’를 어떻게 해석하고 또 쓰고 있는지 말해 줄게.        


얼마 전에 여든여섯 살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 로즈 와일리의 그림을 보러 갔어. 로즈 와일리는 대학에서 미술 공부를 하다가 스물한 살에 결혼을 했고 그 이후로 활동을 지속하지 못했어. 아이들을 다 키우고 마흔이 넘어 다시 미술을 공부하려고 학교에 들어갔지. 사실 나는 로즈 와일리의 스무 살에서 마흔 사이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 삶에는 바깥보다 안으로 걷는 시간이 반드시 오는데, 그 시간은 내면에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는 법이거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예술가의 정체성을 놓지 않았다고 말하더라.       


이후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칠십이 넘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어. 지금은 아주 유명해졌지. 나이보다 그림으로 기억해달라는 로즈 와일리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이와 그림 모두를 생각할 수 밖에 없어. 보통의 일상을 단순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그리는 로즈 와일리는 그림은 대단한 무언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했어. 그림 자체가 메시지, 그림은 그냥 그림이라고 했지. 힘이 센 말이지? 삶을 오래, 잘 살아낸 사람이 갖출 수 있는 생각이고 그 생각의 색과 형태들 앞에서 나는 자주 고개를 끄덕거렸어.

     

내가 한참을 서서 바라본 그림은 작은 그림 조각들이 모여 만든 그림이야. 고치고 싶은 부분 위에 아무렇게나 찢은 종이를 붙이고 그 위에 다시 새 그림을 그렸지. 눈에 띄는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캔버스도 아니었는데 난 이 그림이 그렇게 좋더라고. 로즈 와일리의 모든 그림에는 캔버스와 캔버스의 연결 지점, 물감이나 종이로 덮은 실수, 스케치 자국을 볼 수 있어. 물감으로 덮고 덮다가 그만 아주 커다랗게 변한 동물 그림도 있었지. 로즈 와일리는 실수를, 잘못을, 그러니까 후회를 지워 버리지 않아. 종이를 붙이고 물감을 덮지만 지난 실수와 잘못은 여전히 그 아래에 존재하지. 혹시 로즈 와일리의 그림은 과거를 후회하는 사람들에게 힌트를 주고 있는 것 아닐까?    

  

“어느 누구도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야. 강물에 발을 담그는 사람도, 강물도 모든 것은 변한다는 뜻이지. 하지만 우리는 이 변화를 ‘달라진다’의 관점에서만 생각하면 안 돼. 변화는 곧 움직임이고 모든 존재는 존재하기 위해 움직이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져야 하거든. 강이 강이 되려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려는 힘이 있어야 하지. 강과 완전히 다른 존재인 호수를 생각해 볼까? 호수가 호수가 되려면 흐르지 않고 계속 머무르려는 힘이 있어야 해.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존재가 되려면, 존재하지 않음에 대항하여 움직이는 힘이 필요해.     


내가 나답게 살려면 나답지 않음에 대항하여 움직이는 힘이 있어야겠지. 그렇다면 ‘나답지 않음’에 대해 알아야 하고. 문제는, 어떤 사람도 나다움과 나답지 않음을 알고 태어나지 못한다는 거야. 게다가 ‘나’는 지금 여기 유일한데, ‘나답지 않음’은 무한하지. 나답지 않음을 알려면 직접 살아봐야 하는데, 그 경험은 수없이 많은 나답지 않음 - 실수와 잘못이 되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후회는 내가 나답게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일지도 몰라.   

  

운이 나빠서 실수와 잘못만 반복하다가 완전히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어떻게 하냐고? 괜찮아, 이 세계의 근본은 변화, 움직이는 힘이라고 했지? 잘못된 길 또한 통로라는 걸 잊지 마. 길의 정체성은 연결이고, 어딘가로 이어지기 위해 움직이고 있어. 그래서 막다른 길은 없단다, 막다른 길 같은 느낌만 있을 뿐이야.      


로즈 와일리의 그림으로 다시 돌아가 볼까. 로즈 와일리는 후회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않아. 덧붙이고 또 덧붙여서 그 변화의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내지. 자, 이제 나는 후회를 지우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필요가 없게 되었어. 나에게는 변화라는 단어도 생겼거든. 덧붙이고 덧붙여서 ‘나’를 향해 계속 흐르는 거지. 후회가 두려워 움직이지 않는다면 나다운 나는 끝내 만날 수 없을 테니까. 나는 실수나 잘못을 했고, 하고 있으며, 하겠지. 하지만 덕분에 나답지 않은 길을 하나 알았고 오늘은 다른 길 위를 걸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 같이 마음 놓고 실수를 하자. 그리고 실컷 후회를 하는 거지. 지울 수도 없지만 지울 필요도 없지. 종이를 조금 잘라서 덮어 버리자. 그리고 그 위에 다시 그리면 돼.      


혹시 지금 후회를 하고 있니? 후회스러운 행동과 선택을 한 과거의 너를 미워하고 있을까? 미울 수도 있겠지. 뭐, 잠시 미워해도 괜찮아. 하지만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걷자. 걷기만 한다면 너 다운 길은 계속 이어질 테니까. 길은 잃지 않을 거야. 실수와 후회라는 나침반이 있거든.


너도 나도, 우리는 후회를 하며 온전한 존재가 되어 가는 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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