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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Oct 12. 2022

거대한 자아를 내려두고

유준재 쓰고 그린 <시저의 규칙>

오늘 아침, 혼자 산에 다녀왔어요.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모자를 눌러쓰고 따뜻한 차를 보온병에 담아 집을 나섰습니다. 첫발을 내딛는데, 발끝에서부터 차르르, 신데렐라의 누더기가 푸른빛 드레스로 바뀌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갈아입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 나는 왜 고민을 했을까 질문을 던져 봅니다.


그 이유는 산을 오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더 많이 알고 싶어서 고른 책들을 읽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해요. 어린이들과의 수업 준비는 아무리 해도 어딘가 불안한 구석이 있으니 틈틈이 곱씹어 봐야 하고요. 부족함을 들키면 안 되고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 모두에게 나의 능력 전부를 보여줘야 해요. 제 삶의 규칙입니다. 그리고 저는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에요. 시저처럼요.

      

시저는 거칠고 강한 악어입니다. 숲 속의 왕이지요. 시저에게는 자기만의 규칙이 있어요. 자기만의 규칙은 곧 숲 속의 규칙이기도 하고요.


국어사전에서 ‘규칙’의 뜻을 찾아볼까요? 규칙은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이나 질서입니다. 우리 이 문장을 꼼꼼하게 살펴보기로 해요. ‘여러 사람’과 ‘다 같이’를 놓치면 안 되거든요. 규칙의 전제는 ‘여러 사람’과 ‘다 같이’에 있어요. 하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에 눈이 멀어 ‘작정’에만 집중하는 사람도 있지요. 우리는 그런 사람을 독재자라고 불러요. 아마 국가 권력을 자기 손에 쥐고 마음대로 쓰는 사람이 떠오를 거예요. 그렇지만 나와 다른 목소리에 귀를 막고 혼자서 결정하는 사람은 친구들 사이에도, 가족들 사이에도 있어요. 어디 그뿐인가요. 독재자는 ‘나’의 안에도 있어요!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터널을 통과해야 살 수 있어요. 어쩌면 인생 전체가 이 터널 속일지도 몰라요. 민트 초코를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친구에게 사과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시험공부를 미루고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 그리고 내가 만든 규칙에 따라 정답을 선택하려고 하죠. 나는 인생에서 시험이 가장 중요하니까, 또는 나는 절대 먼저 고백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고백을 안 하는 선택을 하게 될 거예요. 스스로 세운 단단한 규칙을 가지고 복잡한 (어쩌면 위험한) 선택의 터널을 통과합니다. 얼마나 쉬워요.      


하지만 단 하나의 ‘나’가 거대해지고 맙니다. 내가 커지면 다른 걸 눈여겨볼 수 있는 틈이 없어요. 시저를 보세요. 모두 다 내 먹잇감이고 모두 숨소리조차 크게 내선 안 된다는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거대한 자기 몸뚱이를 끌고 숲을 걸어요. 아마 시저에게는 보이는 게 별로 없을 거예요. 시저의 그 커다란 몸 때문에 숲은 가장자리로 밀려났어요. 시선이 닿지 않아서 빛이 바랬고 고요하라는 요구에 아무도 살지 않아요. 시저의 거대한 자아는 텅 빈 숲에서 삽니다.      



저는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사랑을 ‘받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이 아주 중요했죠. 미움받지 않고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저만의 규칙이었어요. 분명 제 안에 다른 목소리도 있었을 텐데 듣지 않았고, 저는 독재자처럼 저를 다루었죠. 사랑을 받고 싶은 ‘나’는 시저처럼 거대하게 자라서 내 몸이 나의 시야를 가려 버렸어요. 커다란 나에 갇힌 내가 된 거예요. 사랑을 받으려면 필요한 행동들만 했어요.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고, 늘 활짝 웃는 얼굴로 좋은 인상을 주었고, 유행하는 모든 것을 따라 했어요. 그러는 동안 나의 숲에서는 무엇이 사라지고 있었을까요.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도, 무리하지 않아서 생생한 에너지도, 오롯한 취미와 취향도 없는 텅 빈 숲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다행이죠, 시저도 저도 규칙을 어기는 순간이 생겼으니까요. 시저는 모두가 나의 먹잇감이라는 자기만의 규칙을 어기고 새끼 새들을 돌보기 시작합니다. 어떤 소리도 용납하지 않았던 시저는 새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어요. 제가 이 그림책을 아끼는 이유는 바로 이 부분 때문일지도 몰라요. 저도 시저처럼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개와 고양이를 보살피면서, 사랑을 주는 기쁨에 문득 놀라다가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거든요. 사랑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규칙이 생겨 한결 편해졌어요.       



시저가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며 낯설다고 말해요. 놓치지 말아요. 우리에게는 바로 이 순간이 필요해요. 익숙한 단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낯선 목소리를 알아보고 들어야만 해요. 물에 비친 시저 얼굴에 예쁜 초승달이 떴네요. 시저는 얼굴에 상처가 있는 거칠고 강한 악어이기도 하고 노란 초승달을 뺨에 새겨둔 예쁘고 따뜻한 악어이기도 해요. 시저 안에는 시저가 여럿이 있고, 내 안에는 내가 여럿이 있어요.  

 


계절이 몇 번 바뀌었고 숲은 여전히 고요합니다. 시저는 여느 때와 같이 규칙을 지키며 걷고 있고요. 하지만 여느 때와 다르기도 해요. 시저는 작아지고 숲의 자리는 넓어졌어요. 조금씩 다른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요.     


규칙은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정하는 거예요. 그러니 내 안에 여러 ‘나’들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요. 서로 다른 ‘나’를 이해하고 또 어제와 다른 ‘나’를 시도해요. 숲은 채워지고 넓어집니다. 숲이 크면 클수록 어디든 갈 수 있겠죠. 어디든 갈 수 있음. 우리는 그것을 자유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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