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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영 Feb 12. 2024

얄팍한 이민 스토리 <Past Lives>

소심하게 비평합니다

요즘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의 영화 Past Lives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다. Past Lives는 오스카 작품상, 각본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며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킬러즈 오브 더 플라워 문: Killers of the Flower Moon>,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탄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법정 스릴러 <추락의 해부: Anatomy of a Fall>, <바비: Barbie>, <오펜하이머: Oppenheimer>, <바튼 아카데미: The Holdovers> 등과 맞붙는다. 이름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영화들 사이에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도 셀린 송 감독은 감격스러울 것 같다. 별점 짜기로 소문난 영국 언론 'The Guardian'의 영화 평론도 Past Lives에게 별을 다섯 개나 주면서 '잃어버린 사랑과 어린 시절 짝사랑, 변화하는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반드시 볼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면서 호평했다. 여기에 한국 언론은 셀린 송 감독이 한국인이라도 되는 냥 <기생충>, <미나리> 등과 엮으며 K-콘텐츠의 힘이라는 둥 낯간지러운 기사를 쏟아낸다.


출처: IMDB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호평하는 영화에서 난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간 나영이 잃어버린 어린 시절 첫사랑 해성을 페이스북으로 다시 찾아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고,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는 영화의 큰 줄기는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아시아 또는 한국 이민자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비슷한 결의 영화 또는 드라마 <페어웰: The Farewell>, <미나리>, <리턴투 서울>, <파칭코>에 비해 Past Lives 속 이민 이야기가 얄팍하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한국계 프랑스 입양아 프레디가 한국에 와 생부를 만나며 겪는 과정을 그린 영화 <리턴 투 서울>은 어쩌면 흔해 빠진 해외 입양아의 한국 뿌리 찾기 이야기다. 하지만, 캄보디아계 프랑스인 감독 데이비 추가 만든 한국계 프랑스인의 뿌리 찾기 여행은 주인공 프레디의 캐릭터를 예측 불가, 입체적으로 만들면서 새로워졌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프레디의 감정과 정체성이 영화에 잘 묘사돼 비호감인 캐릭터인 프레디를 영화가 끝날 때쯤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기상이 된 프레디가 프랑스 남자친구와 함께 한국에 돌아와 친아버지와 고모를 만나서 밥을 먹을 때다. 프레디 자신은 친아버지가 보낸 문자와 이메일을 다 씹으며 막대했지만, 프랑스 남자친구가 친아버지 바로 앞에서 프랑스어로 친아버지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욱'하며 택시에서 조용하게 폭발해 버린다 (이런 무례한 남친놈!) 나는 이 장면에서 친부모를 향한 복잡한 프레디의 감정과 국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프레디의 정체성이 한 번에 표현된 것 같다.


이런 영화들에 비해 Past Lives에서 주연인 나영과 해성의 캐릭터 묘사는 굉장히 단편적이다. 한국에 두고 온 어린 시절 나영의 정체성과 뉴욕에서 캐나다인 작가로 성장하는 현재의 노라가 겪는 정체성의 충돌이 영화에는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또 노라는 영화에서 해성에게 "So Korean"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나는 유태오가 연기한 해성이 검은 백팩을 메고 무신사 느낌의 패션을 재현한 것 외에 무엇이 아주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한국 남자인지 잘 모르겠다. 배우의 이미지 자체로도 유태오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를 묘사하기엔 거리가 많이 먼 한국 배우다. 개인적으로 유태오 배우를 좋아하지만, 유태오가 표현한 해성은 내가 주변에서 경험한 한국 남자들과 여러모로 겹쳐지지 않았다. 또한, 또박또박 대본을 외워서 뱉는 듯한 유태오의 연기체도 뭔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영화 서사를 이어가는데 핵심인 '인연'도 나에겐 진부하게 들렸다. 외국인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에게 '인연'이란 단어는 끝내 이어지지 않는 만남을 정당화시키는 식상한 이론이다. 이 영화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 말레이시아 친구도 '인연'에 대한 메시지가 조금 얄팍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고향과 고국을 떠난 이민자는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 정체성의 변화를 겪는다. 영화 속 나영처럼 유년기, 청소년기에 다른 나라로 떠난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처럼 청년기에 학업, 취업 또는 외국인과의 결혼 때문에 해외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 또한 각각 저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에 큰 감동을 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Past Lives가 세상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는 데는 이 영화가 이민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전세계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내가 살아온 과거가 내 정체성을 큰 부분을 형성했지만, 한국 밖에서 살아갈 나의 미래가 또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Past Lives를 소심하게 비평하며 앞으로 더 다양한 종류의 이민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Anatomy of a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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