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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영 Mar 08. 2024

한국 손님맞이와 이민자의 고민  

어쩌다 홍콩

홍콩은 한국이랑 가깝다. 비행기로 3시간 30분에서 최대 4시간이면 홍콩과 한국을 오갈 수 있어 많은 한국인들이 홍콩을 찾는다. 홍콩으로 이주한 지 이제 딱 1년 7개월. 지난해 3-4월쯤부터 홍콩 국경이 완전히 열리면서 나와 남편을 만나러 온 친구와 가족들을 세어보니 총 6팀이다.이중 5팀이 나의 인맥이었다.


이중 한 팀만 우리 집이 아닌 근처 호텔에서 묵었고, 나머지 5팀들은 우리 집에서 짧게는 3박 길게는 일주일 가량을 지내다 갔다. 홍콩이 엄청 더웠던 여름 몇 달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달 우리집에 손님들이 묵어간 셈이다. (이 자리를 빌려 나의 손님을 자신의 손님처럼 대접한 우리 남편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우리 집에 지내다가 가는 분들은 어쩌다 한 번 오신 것이지만 사실 우리는 매달 손님을 치러내느라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다. 손님들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지만 실제로 호스트를 해보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어렵다. 손님이 오기 전 청소하고, 부족한 이불이나 베개를 구해와 세탁하고, 수건을 넉넉하게 준비하고, 아침에 간단히 먹을 것을 채워놓고, 외식할 식당을 예약하고, 손님이 떠난 뒤엔 또 청소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세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홍콩의 아파트가 한국 아파트에 비해 많이 좁기 때문에 손님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내 작은 서재에 그들을 재우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남편의 친구 한 명이 홍콩에 취업 준비를 한다며 홍콩으로 이사를 왔고, 묵을 곳이 없다고 해서 시댁에서 두 달간 무전취식, 숙식을 하며 우리가 없는 시댁에서 퇴직한 시부모님과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기도 했다. 두 달을 살면서 취업을 한 뒤에도 "돈을 조금 더 모으고 싶다"며 시부모님께 한 달 더 '렌트 프리'로 살겠다고 선포해 우리 가족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이미 온라인에는 해외 주요 거점 도시에 사는 한국인 이민자들의 한국 손님맞이글이 차고 넘치지만, 오늘은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친구나 지인을 방문할 예정이 있는 한국인들에게 몇 가지 에티켓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스스로 자신을 초대(self-invite) 하지 말자


해외에 사는 지인이나 친구가 초대하지 않았는데 당연히 그 도시를 놀러 가면 그들의 집에서 숙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 말자. 그들이 "우리 집에 와서 지내도 된다"라고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친한 친구와 가족은 사정이 다르다. 이들은 자꾸 호텔을 잡으려고 하지만 내가 사정사정해야 우리 집에서 겨우 묵어준다^^ (나는 이들의 얼굴을 더 오랫동안 보고싶다!!) 사실, 여행자 입장에서는 단 한 번이지만, 특히 한국과 가까운 도시에 사는 한국 이민자들에게는 매달 반복되는 일일 수도 있다. 만약 그들이 집에서 머물러도 된다고 해도 최대 3박 4일 정도가 적절한 것 같다. 여행자는 휴가를 내고 여행을 하러 온 것이지만, 이민자들은 그 도시에서 일상을 살아야 한다. 회사를 가고, 학교를 가고, 운동을 하고, 일상의 루틴이 있는데 여행자가 장기 투숙을 하면 이런 일상의 균형을 다시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집에 사람이 있으면 온전한 휴식을 누리기 어렵고, 호스트의 피로가 누적돼 일상을 평온하게 이어가기가 어렵다. 뉴욕, 홍콩 등등 대도시의 숙박비가 비싼 것은 알지만, 그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서 친구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라면 (호스트가 바라지는 않겠지만) 최소한의 성의 표시는 하자. 자신의 경제 상황에 따라 저녁 식사 한 끼를 대접하거나 손편지를 쓰든지 적절한 성의 표시를 하면 된다. 만약 여행이 3박 4일 이상으로 길어진다면 그 이후에는 호텔에 묵으면서 낮에는 여행을 하고 저녁에는 호스트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떨까.


2. 비행기표를 사기 전에 호스트와 상의하라


만약 해외 사는 지인이나 친구가 당신을 호스트 하기로 했다면 자신의 일정에 맞춰서 비행기표를 사고 호스트에게 통보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호텔을 예약할 때도 호텔에 숙박 가능 여부를 먼저 확인하고 결제를 한다. 자신의 휴가 일정에 맞춰서 호스트에게 그 집에 묵을 날짜를 통보하면 호스트는 굉장히 당황스럽다. 이 정도 날짜가 어떻겠냐고 먼저 호스트와 상의를 한 뒤 만약에 호스트도 동의한다면 그 날짜에 비행기 스케줄을 찾아보고 예약하는 것이 맞다. 만약 자신의 휴가 일정을 호스트의 일정 외에 맞추기 어렵다면, 깔끔하게 숙박 시설에 머무르는 것을 추천!


3. 외식은 더치페이 (단, 가족이나 아주 친한 친구는 제외)


제대로된 홍콩 음식은 맛있지만 비싸다

집에 손님이 오면 자연스럽게 외식을 많이 하게 된다. 한국 기준으로 홍콩 물가를 생각하면 안 된다. 홍콩 외식 물가는 서울 기준으로 거의 두 배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저녁이 비싸다. 4인 기준으로 맥주를 조금 곁들여 엄청 고급스럽지 않은 저녁 식사 한 끼를 하면 2000 홍콩 달러가 (한화 기준 34만 원) 훌쩍 나간다. 하지만, 이 식사 비용을 호스트가 계산하기를 원한다면 상황은 조금 어려워진다. 게다가 매일 외식을 하면 호스트 입장에서는 원치 않은 외식비를 계속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가계 경제에 부담이 된다. 가족이나 아주 친한 친구는 그들이 방문하기 전부터 호스트가 식당을 예약하고, 우리가 대접하는 마음으로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미리 다 계산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맛있게 먹어주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하지만 호스트와의 관계가 지인 또는 애매하게 친한 사람일 경우 '그냥 밥 한 끼'라며 호스트가 대접하길 기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4. 현금 안 필요한 나라 없다. 환전은 꼭!


환전 안 하고 여행 오는 사람이 있을까 했지만, 있다. 우리 집에 묵었던 남편의 비한국인 친구 A는 홍콩으로 여행 오면서 한화만 가지고 온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한국 돈을 받고 내가 홍콩 돈으로 대신 환전을 대신해줬다. 신용카드도 없는 친구였는데 환전도 환화로 딱 10만 원 정도.. 그 돈으로는 홍콩 물가를 생각하면 3박 4일을 여행하기 어렵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행의 기본은 환전이다. 가끔씩 홍콩에 현금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는 손님들이 있는데, 세상에 현금이 필요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요즘 세계 각국 대도시에 현금 안 받는 식당들이 (cashless stores) 생겼다고 이야기는 들었으나 홍콩은 아니다. 택시도 현금, 작은 로컬 식당들도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금이 없으면 여행이 어려워진다. 호스트를 만나서 현금 교환할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5. 여행 정보는 스스로 찾아보기, 여행 일정도 스스로 짜기


숙박을 무료로 제공하는 호스트에게 감사하며 기본적인 여행 정보는 스스로 찾자. 가끔 옥토퍼스 카드 (홍콩 교통카드)를 어떻게 사냐, 충전을 어떻게 하냐고 묻는 손님들이 있는데, 이러한 기본 정보는 구글 또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네이버 선배님들이 친절하게 스텝 바이 스텝으로 알려주신다. 나에게 물어보면 나도 검색을 해서 알려줄 수는 있지만, 이런 기본 정보까지 물어보면 기운이 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나한테 물어보는 것보다 네이버에 검색하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


여행 정보는 손님들이 직접 검색해서 대략적인 일정을 짜서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서 호스트에게 빈틈을 채워달라고 하거나 로컬 정보를 물어봤으면 좋겠다. 호스트가 몇 가지를 추천할 수는 있지만 여행 일정을 대신 짜줄 수는 없다. 우리 손님 중에 그런 사람은 없었지만, 홍콩에 사는 나의 한국인 친구는 호텔 애프터눈 티, 힙한 바를 찾아서 전화로 예약해 달라고 하는 눈치 없는 한국 손님들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다. 나는 안다. 똑똑한 한국인들은 못하는 것이 없음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해외로 여행 갈 때 이메일을 보내고, 국제 전화를 해서라도 맛집을 예약하는 한국인의 저력과 정보력을 나는 믿는다. 또 이러한 정보는 네이버 선배님들이 완벽하게 정리해 후기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그냥 무턱대고 맡기기보다 스스로 먼저 정보를 적극적으로 검색하고 예약을 시도해 본 뒤, 그래도 안될 땐 호스트에게 부탁을 해보자.  


6. 빅토리아 피크는 혼자 가기


빅토리아 피크는 이제 그만 가고싶다ㅋㅋ

나는 이제 선포한다. 빅토리아 피크는 그만 가고 싶다. 관광 명소인 빅토리아 피크는 내가 매주 트레일 러닝을 하는 산 꼭대기에 있다. 거짓말하지 않고 홍콩에 살면서 빅토리아 피크를 한 50번은 가본 것 같다. 운동하면서 간 것 포함해서 말이다. 손님들은 처음 가보는 관광 명소가 그 도시에서 일상을 사는 호스트에게는 여러 번 가본 큰 감흥이 없는 장소일 가능성이 크다.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도 마찬가지. 반대로 생각해 보라. 만약 서울 시민이 남산타워,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 50번 넘게 가봤는데 손님이 왔을 때 매번 같이 가야 한다면 어떨까? 그러므로 만약 호스트가 나서서 주요 관광지에 데려다주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주요 관광지는 여행자가 혼자서 즐기고, 숨겨진 로컬 명소를 호스트와 함께 같이 가보는 것은 어떨까.


7. 이민자가 사는 도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말자


이민자가 정착한 도시를 존중하는 것은 여행의 기본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불평,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다르다. 홍콩은 한국과 공통점도 있고, 다른 점도 많다. 바쁜 로컬 식당에 가면 한 테이블에 모르는 사람과 합석을 해야 하는 점이 한국과 다르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빛의 속도로 빠른 것이 한국과 다르다. 한국과 다른 점 중에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영유아가 버스에 타면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벌떡 일어나서 아이와 함께 탄 엄마 아빠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점이 한국보다 낫고, 주요 교통수단인 미니버스, 택시 운전기사들이 불친절하고 로컬 음식점에서 돈과 계산서를 던지듯이 무례하게 주는 문화가 한국보다 별로다. 내가 홍콩으로 처음 이주할 때 몇몇 사람들이 홍콩의 정치적 상황을 언급하며 쇠퇴하는 도시에 왜 가느냐고 걱정하듯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쇠퇴하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 7백만 명이 넘고, 그중 일부가 나의 가족이고, 나다. 한국 뉴스에 비친 홍콩의 모습, 한국식 민주주의를 잣대로 홍콩을 분석하고, 그곳에서의 삶과 미래가 힘들 거라고 단언하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에서 홍콩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이민자인 나도 여기에 섞여서 잘 살아가고 있다.


8. 박사생은 백수가 아니다


박사생은 바쁘다. 1년 차에는 핵심 전공 수업과 연구 방법론 수업을 듣고 에세이를 써야 하며, 연구 주제를 설정하고 프로포절을 다시 써야 하고, 또 박사 자격시험까지 준비해야 해서 바쁘고, 2년 차부터는 학부생 수업 보조에, 학회 참석 준비, 논문을 본격적으로 쓰기 위한 문헌 분석, 데이터 수집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방학이라고 마냥 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모든 업무가 지도 교수의 지도 스타일, 박사생의 자율성에 달려 있다. 나는 평일에는 매일 공부 시간을 따로 정해 놓고 하루에 무조건 5시간 이상은 도서관이나 집에서 집중해서 목표한 공부 분량을 채우는 식으로 루틴을 세웠고, 박사 1년 차부터 지금까지 재택 근무하는 직장인처럼 공부하고 있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박사 자격시험과 박사 논문 프로포절, 학회 제출 논문을 제때 써내지 못했을 것이고, 공부 분량도 계속 밀렸을 것이다.


나는 손님들이 박사생이 시간이 자유로우니 언제든지 그들과 어울려서 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박사생도 직장인과 동일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평일에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퇴근이 끝나야 여행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 직장인처럼 박사생도 매일 할당된 공부 분량을 끝내야 마음 편하게 여행자들과 저녁 또는 주말에 어울릴 수 있다.


구구절절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홍콩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국 이민자들이 한국 손님을 맞이하며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관계에는 '선'이 있다. 자신의 집을 손님에게 내주는 호스트의 호의를 당연히 생각하지 말고, 이 선을 지키면서 여행한다면 양쪽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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