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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영 Oct 09. 2023

운동의 즐거움

어쩌다 홍콩

나의 20대를 되돌아보면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 하루하루 회사에 출근하느라 바쁘게 지냈고, 저녁에는 회식에 가거나 일이 없을 땐 집에 돌아와 침대와 한 몸이 된 채 지냈다. 수영장도 잠깐 다녔고, 필라테스 학원도 다녔었다. 하지만 운동하는 흉내만 냈을 뿐 진짜 건강에 효과가 있는 운동을 했다고 하기엔 너무 귀여운 강도의 비정기적인 운동이었다. 그래서 20대 나의 몸은 삐쩍 말라서 볼품없었고, 항상 피곤에 절어 살았다.


30대 후반을 달리고 있는 지금의 내 몸은 20대 어떤 시절보다 건강하다. 내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매년 갱신하고 있지만, 나잇살이 아니라 근육량이 늘어서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30대가 되면서 유행한다는 운동은 이것저것 다해봤다. 요가, 필라테스, 헬스장을 시작으로 서핑, 스쿠버다이빙, 스케이트보드, 스포츠 클라이밍, 크로스핏 등 '생활 체육인'으로 할 수 있는 웬만한 스포츠에 발을 담갔다가 뺐다. 하지만 어떤 운동은 너무 재밌지만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예: 서핑), 어떤 운동은 커뮤니티 분위기가 나와 잘 안 맞지 않았다 (예: 크로스핏). 서핑에 빠지면서 함께 샀던 스케이트보드는 홍콩으로 이사 오면서 당근에 깔끔하게 팔고 왔다. 초보 주제에 비싼 스케이트보드를 사려고 했던 나에게 "일단 저렴한 것을 사서 먼저 연습해 보라"라고 멈춰준 양심적인 홍대 스케이트보드 가게 사장님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홍콩에 와서 생긴 가장 놀라운 변화는 달리기를 죽어라 싫어했던 내가 일주일에 3-4번씩 우리 집 앞에 있는 산을 달린다는 것이다. 이게 다 한국인에게 최적화된 러닝 어플 '런데이' 덕분이다! 런데이는 잔소리와 격려를 적절히 섞어서 달리기를 꾸준히 하도록 도와준다. 집 앞 산을 끝까지 걸어서 올라가면 1시간이 걸리는데 그 끝이 바로 관광객으로 항상 붐비는 빅토리아 피크다. 아직은 체력이 모자라서 정상까지 뛰어올라가지는 못하지만 지금은 그 반쯤 30-40분쯤 10분 뛰기, 3분 걷기를 반복하며 뛰어서 올라갈 수 있게 됐다! 오늘은 운동의 즐거움에 대해서 기록해 본다.


1. 트레일 러닝


트레일 러닝이라고 써놓고 보니 너무 거창한데, 내가 사는 동네엔 앞산 말고 마땅히 뛸 곳이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산을 뛴다. 처음에는 산 초입에 있는 오르막길을 걷기만 해도 숨이 턱턱 찼지만, 지금은 평균 심장박동수 150을 유지하며 뛸 수 있게 됐다. 누가 들으면 아주 오랫동안 트레일 러닝을 한 줄 알겠지만 런데이와 함께 산 달리기를 시작한 지 딱 한 달 반이 됐다. 9월에 매일 아침 40분씩 총 15회를 달렸다. 달리기를 하면서 신기한 것은 할 때마다 여전히 힘들다는 것이다. 뛰면 뛸수록 더 쉽게 느껴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는 두 번째 마주하는 오르막길에서 항상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싸우는 편인데, 아직 한 번도 그 마음에게 진 적이 없다. 두 번째 오르막길에선 심장 박동수가 170-180까지 올라가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다. 하지만 그 순간을 넘어가면 그다음엔 평지가 나오기 때문에 평지에 도착할 때까지만 뛰자는 마음으로 버티고, 또 평지가 나오면 뛸 만해서 버티고, 3분 걷기 타임이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40분 달리기가 끝난다.


트레일 러닝을 시작하면서는 공부 능률이 올랐다. 매일 자던 낮잠을 끊었다. 아침부터 더 자고 싶은 마음과 이겨낸 뒤 산을 4km 뛴 뒤 집에 돌아오면 쓰기 싫은 논문에도 속도가 붙는다. 오늘은 딱 300자만 쓰자, 오늘은 관련 논문을 딱 몇 개만 읽자, 오늘은 딱 5시간만 공부하자, 이렇게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면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된다. 두 번째 오르막길을 뛸 때 느꼈던 고통이 나중에 성취감으로 바뀌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자세로 공부를 하니 순간의 하기 싫음과 귀찮음을 견딜 수 있게 됐다. 박사 공부와 달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두 과정 모두 혼자와의 싸움이다. 남이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서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다. 아침에 달리기를 통해 육체적 싸움에서 이기고 나면, 그 이후 정신적 싸움인 공부가 더 수월해졌다. 달리기와 박사 공부에 이런 연관성이 있는지 몰랐다!  


해질 때 달리면 더 예쁜 저수지.
달리기가 시작되는 입구. 생각보다 가파름!!
예쁜 운동복을 입어야 운동이 잘되는 이상한 심리.. 달리기 시작하면서 운동복을 위아래로 두 벌 샀다 : )


2. 요가


요가를 일주일에 2회 정도 꾸준히 한지 약 5년 정도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운동한 맛이 나는 필라테스를 하다가 서서히 요가로 넘어왔는데, 요가가 여러모로 나와 더 잘 맞다. 몸이 잘 안 따라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되는 게 마음에 들고, 하타 요가를 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동작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완성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빈야사를 하면서 음악과 흐름에 맞춰 1시간 달려보는 것도 좋다. 홍콩에 있는 요가원은 작년 10월부터 다녔으니 이제 딱 1년이 됐다. 좋은 요가 선생님들을 만난 덕분에 겁나서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한 자세들, 이를테면 머리 서기, crow pose, wheel pose 수련할 수 있게 됐다. 머리 서기는 혼자서 연습할 땐 심리적 장벽 때문에 벽이 있는 곳에서 해야 하지만,  예전엔 시도조차 못했던 자세들이 하나둘씩 모양새를 갖추는 것을 볼 때마다 큰 성취감을 느낀다.


Crow pose. 이 자세를 1분 유지하는 것이 요즘 목표다. 사진 출처: Yoga Journal


Wheel pose. 처음에는 허리가 부러질까봐 무서워서 뒤로 넘어가지 못했다. 이제는 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jason_crandell  


Head stand. 여전히 혼자서 연습할 땐 벽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코어 힘이라는 것! 사진 출처: Yoga Journal.


3. 스포츠 클라이밍


2021년 1-2월쯤 스포츠 클라이밍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이제 3년 차 클라이머다. 처음에 클라이밍 (볼더링)을 시작했을 땐 내 나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의욕만 넘쳐서 안 풀리는 문제가 있으면 '존버'해서 끝까지 풀고야 말았다. 하지만, 2022년 5월 오른쪽 팔꿈치가 부러진 뒤로 다섯 번 시도해서 안 되는 문제는 집착하지 말고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으로 클라이밍 철학을 바꿨다. 국가대표할 것도 아니고, 생활 체육인으로 운동을 즐기려면 부상 없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운동하는 것이 최고다. 서울에 살 땐 암장에 일주일에 2-3번 정도 갔지만 홍콩에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간다. 암장 시설이 크고, 다양한 문제가 많은 서울과 달리 땅값 비싼 홍콩에서 널찍하고 문제가 다양한 암장을 만나기가 어렵다. 지금 다니는 암장도 크기가 작고 문제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 주로 지구력 훈련하러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고 있다. 클라이밍은 남들 하는 방식이 아닌 내 신체 조건에 맞는 나만의 베타 (beta: 문제 푸는 방식)를 찾아 문제를 풀었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클라이밍장은 친구를 사귀기가 쉬운 편이다. 서로의 베타를 공유하며 안 풀리는 문제를 같이 풀고, 오지랖 넓게 함께 풀었을 때 희열을 나누다 보면 금세 서로의 이름을 묻게 된다. 물론 클라이밍장 안에서만 이어지는 인스턴트 우정이지만 말이다.


지구력 벽. 1-40 번호를 찾아서 끝내는게 포인트.

클라이밍을 하며 느낀 것은 공부도 내게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학기 박사 수업 시간에 한 교수님 (60대. 퇴직 앞두고 계심)은 자기는 박사 공부를 하면서 5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다고 하셔서 나를 포함해 잠이 많은 많은 박사생들에게 압박감을 줬다. 하지만 나는 하루 8시간은 자야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고, 주말에는 적당히 쉬어야 한다. 하루 수면 5시간 공부법은 30년 전 박사 공부를 한 교수님의 방식이고, 30대 후반 박사생인 나에게 맞지 않는 공부법이므로 나는 '세상에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참고만 하되 나에게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도 이 운동 루틴을 계속 이어가며 건강한 박사 생활을 이어가야지. 그런 의미에서 비가 그치면 달리기를 하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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