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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suk Joseph Oh Jan 07. 2019

에필로그

사람이 무엇이관데 이처럼 생각해주시고 인간이 무엇이관데 보살펴주십니까

사도 법관이라 칭송받던 고 김홍섭 판사에게는 아드님이 한분 계셨다. 고 김정훈 부제. 대학시절 은사님께서 학부 입학하자 주신 책이 '사도법관 김홍섭'과 '한국의 법학자들'이었는데, 김 판사님은 성인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얘기할 정도로 재판에 임하는 그분의 인품이 남달랐다는 칭송이 자자한 어르신이었다. 

아버지의 신앙과 인품을 빼어 닮았는지 김정훈 부제는 서울 혜화동 대신학교(가톨릭에서는 학부과정 신학대학을 줄여 대신학교, 학부에 입학하기 전의 중, 고교과정의 신학교를 소신학교라고 한다. 이는 천주교 전통에서 Major Seminary, Minor Seminary를 우리말 식으로 번역한 것이다. )를 졸업하자마자 오스트리아로 유학길에 올랐는데 어느 날, 등산길에 조난을 당해 쓸쓸한 주검으로 하산하였다. 당시 출장차 유럽에 머물고 계시던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애통해하시며 장례식 미사를 직접 집전하실 정도로 신망과 총애가 두터운 분이었다. 

필자의 주변에도 대신학교 시절 묵상을 통해 자작한 시가 600여 편에 이르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다재다능한 신부님도 계신데 이 부제님도 문학적 소양이 다분하신 지 그분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유작 일기와 메모 등을 묶어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바오로딸출판사)라는 이름으로 출판이 되었다. 그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 시편 8장 4절의 위 구절, 사람이 무엇이관데 이처럼 생각해주시고 인간이 무엇이관데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하는 내용이었다. 


5박 6일 혹은 6박 7일의 여정으로 바티칸에서 제3회 국제 성가대 세미나를 참석하리라고 다짐할 때, 교황님을 뵙고, 그분의 손을 잡고, 보잘것없는 내 소개를 하고, 선물을 드리고 하는 몇 초간의 시간이 주어지리라고는 단 일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저 성베드로성당에서 집전되는 미사에 평신도로서 성가대원으로서 그 전례의 작은 한 부분을 기여할 수 있다면 가톨릭 신자로 평생 그 감동을 가슴에 담고 그 감동의 순간을 떠올리며 봉사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기에는 개인이 아닌 성가대 단체를 설득하고 모시고 가야 할 여러 가지 난관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연의 우연들이 겹쳐지며 인간의 노력이 1이라면 신의 도움은 100, 아니 1000 인 것 같은 천운으로 나를 포함해 7명의 성가대원들(막판에 6명으로 줄었음)이 무사히 장도에 올랐고, 영광된 시간을 맛보았다. 

나의 성가대 생활은 평생을 성가대 봉사에 바치신 분들에 비하면 정말 일천하기 짝이 없다. 이제 갓 불혹의 나이를 넘긴 내가 처음 아름다운 화음을 넣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서울대교구가 커지면서 서울대교구를 작은 '지구'로 나누어 지구별로 여러 가지 행사들을 조직한다. 미사가 봉헌되는 제대에서 봉사하는 아이들을 복사라고 하는데, 복사단 체육대회도 지구별로 열린다. 그날은 청담동 성당에서 12 지구 초등부 성가 경연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내가 다니던 성당은 당시 신설 성당이었다. 지금은 2호선 전철역을 도보거리에 두고 있으며 100여 대 이상의 주차장 수용능력이 있는 데다가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연예인 신자들을 포함한 결혼식 미사(천주교에서는 혼배미사, 혹은 혼배성사라 함)로 유명한 방배동성당이지만, 88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까지 테헤란로 곳곳이 나대지였던 것처럼 초창기에는 경제적으로도 힘겹게 성당을 지었고 막 성전을 짓는 과정에서 지금의 소강당만 일부 완공시켜 미사가 열렸다. '안젤로 상'이라고 모든 참여 성당이 다 받는 상들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 상을 받고 돌아와 주임신부님인 현 김운회 주교(천주교 춘천교구장님) 한분 앞에서 경연대회 입상곡 두곡을 다시 불렀고, 너무나 기뻐하시던 주교님의 그날의 얼굴만큼의 환희는 다른 날 봤던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2004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꿈에 그리던 학부에 3학년 학사편입으로 들어갔다. 당시에는 여의도 아래 대방동 성당을 다닐 때였는데, 마침 11시 미사를 맡을 중장년층 중심의 혼성 성가대가 새로 조직되고 있었다. 주임신부님께 합격 인사를 했는데, 성가대 입단을 권유하셨다. 꿈에 그리던 학부에 들어가는데 그 은총이 너무 커서 남은 인생은 성가대 봉사를 하리라고 내심 다짐했던 게 그때였다. 


2008년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고3 올라가는 겨울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나와 연년생 남동생을 키우시면서 성당 봉사만 여생을 바치셨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병명을 알게 되기 직전까지 성당에서 여성총구역장 직함을 맡고 계셨다. 어머니는 손이 크셔서 반장 모임 같은 걸 하면, 봉사하는 사람들 빈손으로 보내면 안 된다면서 국수 한 그릇, 김치에 밥 한 공기라도 300인분씩 이렇게 성당 주방에서 앞치마 두르고 음식 장만하고 베풀던 분이었다. 어머니를 전적으로 지원해주시던 주임신부님께서 교구청으로 전근 가셨다가, 석촌동 성당 주임신부님으로 발령 나서 가신지 6개월이 되던 날, 신부님을 찾아갔다. 전임 여성 총구역장 집인데, 어머니가 안 계시니, 이런저런 일로 신부님을 보필할 수 없는 상황인데, 나라도 그 성당에 가서 '목소리'로 품을 팔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실까 싶어 11시 미사 성가대에 서도 되는지 허락을 받으러 사제관으로 갔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성가대원들 사이에 주고받는 정과 푸근함이 그리웠던 게 더 컸다. 그렇게 해서 주일 아침이면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타면 편도 50분 거리를 아침 8시 10분에 나와 9시까지 성가 연습을 나가고 봉사 후에 이런저런 뒷정리나 성가대원 형님 누님들과 식사하고 집에 오면 3시 반쯤 된다. 그땐 서른다섯 되어서 입학한 로스쿨에 다닐 때라 변호사시험 앞둔 때가 아니면 그렇게 만 6년, 햇수로 7년을 다녔다. 주일이면 잠이 부족해서 늦잠 자고 싶은데, 가까운 성당을 나가면 10분이라도 더자고 성당을 갈 텐데... 집이 멀어 부단장님께서 지각하는 내게 언제 오냐고 문자도 보내주시던 그런 시절이었다. 


2009년 9월에 주임신부님의 제안으로 동생과 단둘이 성지순례를 갔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시작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지금은 헤르체고비나도 분리독립)의 크로아티아인 거주지인 메주고리예(Medjugorje)에서 성모님 발현지를 찾고, 스플릿에서 배를 타고 이탈리아 안코나에 도착해 란치아노-수비아코-로마(바티칸)-산 지오반니 로똔도-오르비에토-포르치운쿨라-아씨시-피렌체로 9일 동안 운전하며 다녔다. 여정의 한가운데에 교황님의 일반 알현 일인 수요일을 중심으로 화요일에 로마에 도착했다가 목요일에 다시 이탈리아 북부로 나가는 일정이었다. 바티칸에서는 거의 매시간마다 미사가 있는데, 성베드로성당의 중앙 제대가 아니라, 다른 제대나 성당에서도 미사가 있어 일정을 보고 가야 한다. 한국에서 받아 온 일반 알현 소개장을 초대장으로 바꾸기 위해 일반 알현 전날 도착한 것인데 화요일 오후 2시 미사를 성베드로성당에서 드렸다. 미국 억양의 목소리가 들리는 성가대가 부르고 있었는데 미사 해설자가 "미국 미시간 주에서 순례 온 성당의 성가대"라고 소개했다. 

성지순례의 일환으로 순례 중인 성가대가 바티칸에서 열리는 전례에 참석할 수 있다는 얘기는 예전에도 들은 바가 있다. 남동생과 내가 종종 주일미사를 드리기 위해 함께 가던 집 근처 반포4동성당에서 어느 날 주임신부님께서 초등부 성가대를 조직하셨다는 소식을 미사 시간에 광고하셨다. 2-3년 정도 전에 미리 신청해서 바티칸에 데려가 미사 성가를 부르게 할 것이라는 제안에 신자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그 성가대에 자녀를 보내려고 너도 나도 문전성시였다는 얘기가 오간 적이 있다. 

성지순례에서 돌아와 석촌동 11시 미사 성가대 단장님께, 우리 성가대도 기도하고 준비해서 바티칸에서 다 같이 성가부를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하고 제안을 했다. 그게 7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사진설명: 첫 성가대 때 주임신부님이시던 김운회 춘천교구장 주교님. 미국 석사 유학길에 오를 때 인사드리러 갔다가 '신부'들한테만 주는 혁대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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