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라디오를 진행하며 그날의 단어 하나를 듣는 이에게 정의해달라 청한다. 이 단어 하나를 계기로 내 인생의 어떤 구석을 잠깐만 들여다보자는 뜻이다. 매일 주제에 맞춰 도착하는 문자는 얼마나 같고도 다른지. 또 얼마나 영화 같고 시 같은 글들이 많은지. 누구에겐 어떤 단어가 사랑인데, 누구에겐 듣기만 해도 슬픔이다. 누군지 알 수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생각을 더해 우리만의 정의를 새로 내리는 일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이 글들은 국어사전으론 담아낼 수 없는, 인생이 반영된 진짜 사전일지도 모른다.
12월 마지막주, 늦어도 1월 초
초·중·고등학교는 겨울방학입니다.
우린 가질 수 없기에
더더더더더 부러운 방학.
방학 때의 기억은 뭐예요?
방학이 생긴다면 할 일은요?
여러분에게 방학은 무엇일까요?
내게 방학은 ________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일정 기간 동안 수업을 쉬는 일. 또는 그 기간.
주로 학교에서 학기나 학년이 끝난 뒤
또는 더위, 추위가 심할 때 실시한다.
가게 열고, 회사 다니고, 일하다보면 방학이 어딨어요? 그렇죠?
길어야 휴가 며칠 쓰는 건데-
한 달, 두 달- 이렇게 쭉 쉬는거 참 좋겠어요.
(하루 이틀 쉬는 거 아니고요 길게요)
그나저나
추울때 더울 때 쉬어주고 집에 있어라, 하는거
이런 건 누가 정했을까요? 참 좋은 제도네요.
우리 '으'른들에게도 한 달 정도,
"진하씨 방학입니다. 노세요~ 숙제 이것만 해오세요~"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웃음)
"방학이란 단어 듣자마자 입꼬리가 올라가네요~
방학 있고싶드아~~^^"
"방학 한달만 했으면 좋겠어요 회사에서"
그렇죠. '진하씨, 쉬세요~ 대신 월급은 드릴게요' 하고요.
"세 딸들이 방학을 하면 전쟁이 시작됩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두 딸이 집에 오면
화장실, 옷, 음식 그야말로 큰 전쟁이..."
치울거 많고, 밥도 해서 바쳐야 하고
빨래도 많고, 친구까지 놀러오고
하... 엄마는 개학인거.
"하, 저에게 방학이 있다면...
대학교 방학 때 다양한 경험과 스펙을 쌓지 못한게 아쉽지만
그래도 저는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갑니다 ㅎㅎ"
근데 아마..
다시 우리가 그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아마 하던대로 똑같이 할 거예요.
"전방학때면할머니집에가는게너무싫었어요~
시골이라화장실때문에싫었었는데~
지금은돌아가신할머니도보고싶고
저를위해서간식챙기시느라고생하신
울할머니한테죄송하네요~ㅠㅠ"
전 할머니네 가는 친구들 제일 부러웠는데
할머니댁에 한달씩 쭉 가고 그런걸요.
근데 또 이런 면도 있었겠네요.
"아이들 방학이면 엄마들은 반대로 젤 바쁘죠~
그땐 그리 힘들더니 그 시절이 그리워지네요
선곡에 주책스럽게 눈물나는 갱년기인가봐요"
할 땐 힘든데 다 지나니
아이고 그 때 좋았네 그런거죠?
"어릴적 방학때면
형이랑 둘이 시골에 있는 할머니집과 이모집에
2주정도 있다 보고 그랬던 기억이 있었는데 지
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참 편하셨겠다 싶네요 ㅋㅋㅋ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맞벌이 하다보니 방학때면 힘듭니다 ㅎ"
"방학 하면 작심3일이 생각납니다.
방학 첫날부터 남다른 포부와 계획표가...
왜 3일만 반짝거렸을까요?"
정말 남다른 아이었네요? (웃음)
전 이 짧은 기간동안 이걸 이룰거예요!, 하며
계획은 참 잘 세웠던 아이.
"방학이면 지키지도 못할 생활계획표 열심히 쓰고 그려놨는데...
지금은 울딸, 아들이 방학대비 생활계획표를 저에게 보여주네요^^
이번 겨울방학 아빠랑 좋은추억 만들어보자^^ 울가족 사랑해요"
동그란 하루 계획표(왜 동그랗게 하라고 했을까요?)
굉장히 야심차게 매일 아침 7시 기상하여
씻고, 한시간 밥먹고, 탐구생활을 좀 해주고,
눈높이를 좀 하다가, 점심 또 1시간.
이제 친구 만나서 교우관계를 돈독히 하는 사회생활.
사회생활은 중요하니까 길게 3시간 넣어주고
동생돌보기 1시간, 저녁식사 1시간,
음악감상 1시간, 티비보기 2시간,
취침 쿨쿨 달 파자마입고 모자쓴 나 그리기.
우리 비슷하죠?
"나에게 방학은 추억의 눈사람이다
예전 방학 때만 되면 부산에서 전라도 광주로
방학 보내려고 할머니 댁에 갔었는데요
부산에서 보지 못하던 눈을 할머니 댁에만 가면 볼 수 있었어요
언니와 함께 은 사람을 만들고 혹여나 눈사람이 추울까 봐
할머니 부엌에 갖다 두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하나도 없더라고요
다 녹았었는데 어린 마음에 그것도 모르고
눈사람 누가 가져갔다고 펑펑 울던 기억이 나네요"
순수했네요?
할머니댁 간다고 짐싸구 했을
이 소녀의 마음이 상상이 돼요.
"방송듣는 이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책상앞에 차 한잔 올려놓고 향기와 함께 음미하면
이래도 되나 생각도 합니다.
학교가서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방학이 싫었던 학창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잘못보내신줄 알고 다시 봤네요?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방학이 싫었다니
"아마도 방학 때 외갓집에가 있었든 방학...
외갓집과 엄마가 보고싶어지는 단어입니다
그시절 엄마는 저희 방학을 많이기다리셨을듯 합니다
저희 데려다 주고 오래도 못 머무르고 딱 하루 주무시고 서울 집으로 돌아가고.
며칠이고 놀다보면 저희를 다시 데리러
밝은 얼굴로 오시던 엄마가 저에게는 방학이었습니다.."
놀았던거 좋았던거 보다
엄마가 나 데리러 올 때 좋았던 얼굴
그걸 제일 크게 기억하고 계신거군요
우리도 가장 인상깊었던 어떤 순간
그걸 한번 떠올려볼까요?
와, 이번에는 방학있는 분 등장!
"학교급식업체 운영중인데요 곧 방학입니다
곧 40중반이지만 아직도 방학이 좋아요
먹고자고 놀아야죠 ㅎㅎ"
농사짓는 경우도 방학이 있네요
"남들 봄나들이, 단풍 구경다닐 때 농사일로 갇혀 살다
무더~~~운 여름 한달정도 방학한답니다"
워낙 고되게 일하시니까- 방학, 인정인정
"방학을 준다고요? 생각만해도 광대승천..
시베리아횡단열차타고 유럽가서 산티아고 순례길 돌고싶네요..ㅎㅎㅎ"
"내일 유치원졸업하는 막내아들 등원시키고
각막염 생긴 둘째 내원했다 등교시키고 조금 늦게 나가요.
모든 직장인의 바람인 방학..
방학까진 아니어도 상대적인 비수기라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기이네요.
한번 웃고 가시라고 첫 빠.마. 한 막내사진 보내봅니다.."
귀여워
똘망똘망 잘생겼어,
눈썹 할 올까지 잘생겼어!
"놀기도 바쁜데 방학 숙제하라고 하고... 휴
글쓰기 숙제는 볼펜 3줄로 엮어 한번에 3줄씩 채우기"
(아니 단단히 묶는 시간이 더 들겠어요)
"방학은 체력전이다
손주들 방학이면 온다는데 걱정이네요
에너지 넘치는 손주들 돌보면서 체력고갈 될것 같아요"
"방학 계획표는 전교 1등보다 화려하게,
실천은 전교 최하위 수준으로"
원래 계획은 화!려!하!게!
"방학은 그리운 추억이 샘솟는 시절이다
겨울방학때 친구들과 눈이오면 산에 올라가
토끼몰이 하던 추억 생각나네요
추운줄도 몰랐네요"
"벌써 50이라는 나이를 먹고보니 방학이 새삼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어릴적 국민학교때 친구들과 눈이오면
학교뒷산에서 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나무썰매를
하루종일 시간가는줄 모르고 타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가 참 좋았는데…"
"주방에서 듣다 글 올립니다.
벌써 몇십년전 대학시절 동아리 시절이 생각나서요.
그때 함께했던 분들 지금 잘 지내고 계시는지.
참, 이제 다음주면 저희 애 방학시작이라
아침식사후 혼자 조용히 주방에서 일하는 거 당분간 끝입니다;;^^"
아, 엄마 개학...
우리 당분간 아침에 못 만날지도 모르겠네요.
듣고 계시다고는 생각하고 있을게요.
"방학이면 항상 둘째 큰엄마댁으로...
절 너무예뻐해주시고 울아가덜, 하면서반겨주시고
과일,곶감먹을것한가득 만들어주셨던게
새록새록생각나네요
아~ 그때가 너무그립고 돌아가신 울큰엄마도생각나고하네요.."
"탐구생활, 방학일기 생각나요.
엄마한테 등짝 맞으며 몰아서 하느라 힘들었던 추억이~"
"방학이 주어진다면...
그리운 사람을,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움 투어를 하고싶은거죠."
인생방학, 그리고 그리움의 투어라.
"탐구생활 일기장 몰아서쓰기 고추잠자리 시골 독후감 그런 단어들."
"맞벌이 부부에게 아이들의 방학은 큰 고민이 되요ㅠ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학에
일하느라 바쁜 저희는 미안한 마음이 커요"
"집안사정 어려워서 방학하면
더 못 먹어 싫었던 기억이 있죠."
"방학 얘기하니까
학교 한시간 씩 걸어다녔던 때 생각나요.
오늘같이 추운날도 어김없이 늦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으로 무조건 앞만보고 걸었던 생각납니다.
그와중에도 절대 발은 시렵지않았어요
아버지께서 발 시렵지않게 아궁이앞에
막내아들 운동화를 따듯하게 데워주셨거든요.
아버지가 뒷모습 지켜보시곤했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수 있습니다.
지금은 마음으로만 볼수있지만 늘 그립습니다."
귀한 막내아들, 고생스런 등하굣길 걱정하셨을텐데
방학되면 또 다행이다 싶으셨을 거 같아요
"저는 직장인입니다. 회사 복지중에 2주휴가 주는게 있는데
이번에 제가 해당돼 2주 쉬었더니 방학같은 기분이었네요ㅎ"
아니, 2주 뭐야. 배신감 느껴.
"저는~ 방학은 상상도 안됩니다.
열흘 보름~ 일상이 어긋나면 못살것 같아요?"
"방학이면 형이랑 포천고모네 놀러갔습니다~
자연과 함께 1~2주 생활하는건데
처마 밑 거미줄에 제비가 걸려서 못날아가는거예요.
그래서 저희 형이 제비 거미줄 제거하고 날려준적이 어요.
그러나...박씨는 안 물어 다 주더군요~ ㅋㅋㅋ
박씨는 안줬지만... 추억은 줬네요?
"딸이 중학교농구선수 엄마라 방학없어요^^
방학이 더 바쁜 아이들이거든요.
큰딸도 운동해서 ~이런지 오래됐는데 오히려 엄마들이 절부러워한답니다 ㅎㅎ
동계훈련도 가는데 다치지말기를 기도해주셔요~?
사진 너무 멋있어
" 방학하면 직접만든 썰매타다가 얼음이깨져
모닥불에 옷을 말리다
새로사준 옷 태워먹어서 혼난 생각이 나네요 ㅎㅎ"
"진정한 방학은
고민과 걱정없는 휴식시간을 갖는것일텐데
정말 그런 방학이 간절하네요.
지친 몸과 마음까지 모두 쉴 수 있는 방학..
언제쯤에나 가질수 있을까요..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자유로운 방학.."
어릴 적 방학은 남아도는 에너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더욱 개인적으로 소진하는 날이었잖아요. 지금의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에너지란걸 다 소진해서 남아있는게 없어요. 그런 우리에게 방학은 못 되어도 휴가 정도가 주어지면 그 시간은 온전히 에너지 생성에 쓰게 됩니다. 과거엔 써도써도 남다가 이젠 도무지 남은 게 없어서 뭐라도 채워야 되는 거죠.
오늘부터 전 국민에게 "이제 방학입니다. 아무것도 하지말고 노시고요, 대신 숙제만 조금 해오세요?" 이런다면 우린 뭘 할까요? 근데 뭐하지, 하고 고민할 때 그 순간 바로 떠오르는! '어? 이거 해야한다' 하고 생각나는 그거! 바로 그거요. 그게 어쩌면 우리가 '시간 나면 해야지'하고 마음 속에 미뤄두고 있는 가장 큰 숙제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하면 좋겠어요. 우리에게 방학이라는 찬스는 없지만, 시간을 쥐어짜서라도 꼭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12월이 얼마나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과 오늘의 빈칸은 이렇게 채워봅니다. 방학은 시간을 쥐어짜서라도 내게 줘야 할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