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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Apr 10. 2022

30대 중반의 다이어트는 달라야 한다

굶어서는 빠지지 않는 살 굶어서 빼도 안 되는 살

작년 이맘때부터 정신과에서 우울증 불안증 약을 지어다 먹었다. 갑자기 죽은 엄마에 대한 애도 이런 것을 할 새도 없이 남은 가족에 대한 집착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일요일에 만났던 엄마가 이틀 뒤 화요일엔 아파트 창문 실족사로 죽었을 땐 누구라도 정신을 가다듬고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족들 중 누군가가 집 밖에 나가면 미쳐버릴 것 같은 불안함에 시달렸다. <아이 쉐어링>이라는 위치 추적 어플을 깔아놓고 움직임을 수도 없이 확인하며 그 틈틈이 전화'질'을 해댔다.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기타 특이사항은 없는지. 가족들이 자고 있을 때 숨 쉬고 있는 게 맞는지 코에 손을 대보기도 했다. 나만 정상으로 돌아오면 좀 낫겠다며 아빠는 나를 정신건강의학과에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격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실어 날랐다.


가족들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어느 정도 형성되며 약을 조금씩 줄여나갔다. 8개월 정도 걸렸다. 불안증 우울증 약은 단약 하고 기분조절제만 남겼다. 정신과 약을 먹는 내 모습이 혐오스럽다고 느꼈는데 의사 선생님이 약을 줄여주었을 때 좋았다. 이 즈음 나는 불안함과 우울함 같은 내면의 고통보다도 엄청나게 불어버린 내 몸이 더 걱정될 만큼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제야 물어봤다.


"특별히 과식하는 것도 없는데 왜 살이 찌지요? 혹시 약이랑 관계가 있나요?"


의사 선생님은 먹고 있었던 약이 효과가 좋은 대신 여성의 경우 비만이 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무의식 속에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먹부림도 있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두 눈을 의심할 만큼 심각한 체중계의 숫자에 기가 막혔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40킬로 대를 보통인 줄 알고 살다가 50킬로대가 되면 큰일 난 줄 알고 관리를 했는데 체중계가 너는 63킬로다 하고 알려주니 어찌나 황당하던지. 내 몸이 쪘다고 느끼기 이전에 체중계가 고장이 났나 배터리를 뺐다 꼈다.


아빠는 단지 내 헬스장에서 일단 걷기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실제로 아빠는 매일 아침 한 시간씩 러닝머신만 하고 십 개월 만에 십 킬로를 감량했다. 건강검진 결과가 젊은 사람들보다 더 좋아졌다. 반면 나는 엉망징창으로 나왔다. 추적 검사하라는 둥 약을 먹어야 한다는  난임 병원에서도 다이어트해야 할 것 같다고 할 정도의 콜레스테롤 수치 때문에 내과 협진으로 약을 받아왔다. 한 달에 한 번씩 피를 뽑으며 좋아졌나 확인 중이다. 담석증이 생겨 수술도 했고 자궁근종과 췌장도 추적관리 대상이다. 관리가 필요한 모든 질병들에 대해 식단을 강조하는 처방을 받았다. 심지어 몸에서 나온 담석은 '노란색'으로 콜레스테롤이 응집되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에게 다이어트를 포기하면 안 된다는 몸의 신호들 때문에 뭐든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


러닝머신. 거진 반년을 집에서 칩거하다며 불어난 몸으로는 도저히 못해먹겠다 싶었다. 나는 경찰관이고 매년 체력검정이 다가올 때마다 좋은 싫든 운동을 조금씩 해왔다. 러닝머신 같은 경우 10분 뛰고 10분 걷기를 두 번 반복하면 개운하다는 나름의 운동 공식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시작했을 때는 설렁설렁 걷기에도 러닝머신 벨트가 너무너무 빠르게 느껴져서 계속 속도를 낮췄다. 옆에서 같이 걷던 남편은 너 뭐하냐, 고 했다. 무릎에서 뚝뚝 소리도 나고 팔을 휘젓는 조차도 힘들어서 그냥 내려왔다. 짜증이 났다.


헬스장은 못 다니겠으니 이제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으로 살을 뺄 판국이었다. 굶기. 그런데 굶기를 결심한 후부터 이것도 해먹을 짓은 못 되는구나. 당이 떨어져 식은땀 나고 속 쓰리고 도저히 못하겠다 싶었다. 이십 대 때는 카페모카 잔을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며 먹어도 배고픔을 몰랐었다. 신진대사가 달라졌는지 무작정 굶기로는 안되는구나. 일주일 후 아침 공복에 몸무게를 쟀는데 딱 1킬로 줄어든 것을 보고 미련 없이 때려치웠다. 그냥 잘 먹고 돼지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단식은 끔찍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약을 끊으니 몸무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디지만 몇백 그램씩. 건강문제도 그렇고 체력 학원을 가야 하는데 종목이 모두 체중이 적어야 유리한 종목들이라 가만히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되었다. 굶기도 안되고 헬스장도 안되니 들고뛰는 류가 아닌 뭔가가 필요했다. 그게 필라테스였다. 파출소 근무할 때 야근하고 나서 필라테스 하면 잠도 잘 오고 몸도 좀 탄탄해져서 좋았던 기억이 났다. 찾아보니 집에서 도보 2분 거리에 무려 회당 6600원으로 등록할 수 있는 필라테스 스튜디오가 있었다.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이 100회를 결제했다. 필라테스는 살 빠지는 운동이 아니라지만 어차피 살 빠진다는 운동들은 힘들어서 못할 몸뚱이를 가졌으니 기초체력 기르는데 의의를 두었다.


2년 만의 필라테스. 처음 몇 달간은 강사한테 화가 났다. 되지 않는 동작들을 하라고 하니 중간에 포기하고 그냥 누워있었다. 오십 분밖에 안 하는데 쉬는 게 반이라 운동을 하러 온 건지 끝나고 온찜질하러 오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그러는 새에도 횟수는 매일 차감되었고 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일주일치 수업을 예약했다. 이 정도 운동도 포기하면 체력 학원은 가나 마나 돈만 낭비라는 것을 알았기에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냥 매일 하다 보니 늘긴 늘더라

식단은 먹던 대로 먹었다. 밥 안 먹고 설치면 하루 종일 맥아리가 없었다. 성격이 나빠지는 게 느껴졌다. 대안으로 샐러드를 먹어봤는데 먹어봤자 밥알이 안 들어가면 먹은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소파에 앉아 초코파이를 우걱우걱 씹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어차피 점심과 저녁 아빠 끼니 밥을 차려야 했기 때문에 차리는 김에 잘 먹었다. 대신 밥은 그릇의 반만 채우고 반찬을 잘 먹었다. 고기로다가. 맛있게 잘 먹으면 0칼로리라던데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필라테스 실력은 아주 조금씩 늘었다. 내가 늘었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강사분들이 얘기해 줬다. 예전보다 잘하신다고 처음 왔을 때 하셨던 거 보면서 힘드시겠다 했는데 확실히 느셨다고. 쑥스러워 웃고 말았지만 무척 기분이 좋았다. 필라테스 하면서 땀이 날 수도 있구나 신기해하던 찰나였다. 이때가 처음 끊었던 100회 수업을 마치고 새로 100회를 끊을 즈음(올해 1월) 웬만한 동작이 익숙해지자 좀 더 강도 높은 자극을 찾기 시작했다. 힘들다는 이유로 회원들이 몇 번 듣다 기피하던 강사가 두 분 계셨다. 여덟 명 수업에 서너 명만 참석하니 관심을 더 많이 받아 좋았다. 수업이 끝나면 팔다리가 뻐근했다. 기분 좋은 근육통이었다.


"너 살 진짜 많이 빠졌다. 깜짝 놀랐어."


샤워하고 나온 나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눈이 똥그래진걸 보니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 거울을 봤다.

엥? 미어터질 것 같이 빵빵한데 반질반질거리기까지 했던 내 얼굴이 조금 작아진 것 같았다. 몸도 좀 얄상해진 것 같았다. 즐겨 입곤 하던 잠바를 입어봤다. 작년 9월에는 앞섶의 자크가 잠기지 않던 옷 안으로 내 몸이 쏙 들어갔다. 체중을 재봤다. 56킬로. 7킬로 정도가 감량되어있었다. 기쁘지만 기쁘지 않았다. 아직도 평생 살던 몸으로 돌아가려면 한 5킬로 더 빠져야 하는데.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예전에 입던 옷들이 다 맞는 것이었다. 이것도 입어보고 저것도 입어보며 옷태를 체크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며칠 뒤 인바디를 체크해봤다. 몸무게 집착녀인 나의 구식 발상을 깼던 것은 나의 체지방이었다. 작년에만 해도 체지방 수준이 비만으로 나와서 병원에서 조차 체중감량을 권했었는데 15.4킬로. 7킬로 감량된 체중 분에서 체지방만 7킬로가 빠졌다. 의사 선생님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체력면에서도 할 말이 많다. 집 밖에 나가 필라테스 센터까지 도보 2분인데 계단 고작 몇 개를 오르내리는 게 귀찮고 힘들었다. 지금은 활기차게 일어나서 센터에 가고 힘들게 필라테스를 한다. 곧바로 집에 와서 밥 차리고 빨래하고 해도 지치지 않는다. 생활체력은 확실히 회복한 것 같다.


물론 체력 학원에서 요구하는 탄탄한 몸은 아직이다. 윗몸일으켜기나 팔 굽혀 펴기 같은 것도 문제지만 단거리 주행을 하려면 정말 가벼워져야 한다. 8년 전 채용 체력시험 준비할 때도 악착같이 운동을 했었다. 원래 운동하던 애도 아니고 나이 먹고 또다시 훈련을 받게 될 줄은 몰랐지만 현실이다.

필라테스 열심히 했던 나의 흔적

감량은 계속해나갈 예정이다. 키다리 언니가 <센트 디랑 위클리 라이틀리>를 선물해 주었다. 다이어트 보조제인데 비타민이 베이스라 성분이 좋다. 열심히 먹으면서 건강하게 <체지방 감량>을 해나갈 것이다. 근육이 붙어 체지방이 줄면 건강하게 몸무게가 감소한다는 것을 알았다. 30대 중반으로 넘어가면 소화능력이 20대의 1/3 수준으로 감소한다고 한다. 20대 때처럼 굶어서 빼려 해도 빠지지 않을뿐더러 기운 없고 아픈 데가 더 생긴다. 성격도 나빠진다. 배고파서 짜증 나니까.


오늘은 날씨가 무척 따뜻하다. 여의도 윤중로엔 벚꽃이 만개했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다. 여의도 역에서 남편을 만나기로 했다. 꽃이 흐드러진 봄날 씩씩하게 한강을 걸으며 비타민 많이 쬐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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