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부터피가 비쳤다. 찝찝한 마음으로 잠을 잤다. 토요일 아침이 돼도 멎지 않았다. 운동하기에 불쾌할 수준이 되어 코치에겐 토요일 수업은 못 간다고 미리 말해두었다. 눈치가 좀 보였다. 남들은 매일 잘만 나오는데 이번 주에만 두 번을 빠진다고 말하려니까 말이다. 핑계처럼 들렸겠지만 가임기 여성으로서 내 몸의 이상 징후를 외면할 수 없었다.
차병원 난임센터는 늘 예약이 빡빡하다. 제일 빠른 예약이 월요일 오후였다. 상태를 지켜보며 기다릴 심산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나 보다. 토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대기를 몇 시간 하든 현장 접수하고 진료를 보자고 했다. 나는 허리가 아프고 두통이 있어 더 누워있고 싶었는데 남편이 저리 걱정을 하니 그래 그러자 따라나섰다.
북새통을 이루는 난임센터. 세상엔 난임부부가 이렇게 많구나. 나도 난임에 노산이기까지 하지만 새삼 대기실에 앉아있는 그들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진료를 보면 약 몇 알 처방받거나 배에 주사를 맞거나 하다가 결국 시험관 권유를 받을 그들의 운명. 평일에 올 때마다 나 혼자 대기실을 지키다가 남편 손 붙잡고 병원에 오니 (좋은 쪽으로) 기분이 이상했다.
늘 그렇듯 초음파를 보고 순번을 기다렸다. 예약자가 많아 한 시간은 걸릴 거라는 말에 남편과 나는 휴게실로 내려갔다. 몇몇 사람이 앉아있었다. 수술 진행상황이 뜨는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수술 당사자의 보호자 들일 것이다. 몇 달 전 남편과 아빠가 나를 기다리던 장소. 우리는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한잔 뽑아 반으로 나눠 마셨다.
"나 수술할 때 니 얼굴이 시커메졌었지."
"나 진짜 걱정돼서 얼굴에 바코드 생겼다고. 근데 아버님이 괜찮아 걘 기억도 못할 거야 하시길래 안심이 됐어."
"우리 아빠가 괜찮다고 하면 정말 괜찮을 것 같고 그렇지? 나도 그래. 그래서 내가 맨날 아빠 찾잖아"
속으로 '그래서, 괜찮을 거라는 말 듣기가 무섭게 아빠랑 순대국밥 먹으러 나갔냐. 나 수술 시작하자마자?' 하고 따지려다가 꾹 참았다. 어이가 없었던 그날의 이야기.
카카오톡에 진료 순번이 되었으니 대기하라는 연락이 왔다.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있었네. 미우나 고우나 사랑하는 남편하고 같이 있으니 시간은 참 빨리 간다.
"자궁 내 부정출혈을 일으킬만한 심각한 문제는 없어 보이네요. 자궁 내막이 좀 얇아져서 호르몬 주사 한 대 맞고 금요일에 다시 오세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계속 하혈을 하는 거예요?"
"최근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갑자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상황이 있었나요? 민감한 여성분들은 스트레스 좀 받으면 그럴 수 있거든요."
최근에 달라진 거? 운동 시작한 것 밖에 없는데. 일주일밖에 안 했는데. 하긴 운동이 좀 힘들긴 했지.
"저 최근에 운동을 시작하긴 했어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운동이 문제가 되려면 죽도록 하셨어야 하혈을 하는 정도가 될 텐데..."
"아.. 네...(매일 두 시간 동안 몸이 부서져라 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설명이 너무 길어지니까.)
배에 호르몬 조절을 돕는다는 주사를 한 대 맞았다. 남편은 진료 결과가 궁금해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기다리고 있었다.
"뭐래?"
"이유가 특별히 없대.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받으면 그럴 수 있대."
"너 운동했다고 지금 이러는 거야?"
남편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유, 가지가지한다. 하는 그의 표정. 나도 좀 창피해. 뭐하나 무탈하게 넘어가는 게 없네.
주사를 한대 맞고 왔지만 일요일인 오늘 아침에도 하혈은 계속되고 있다. 열두 시부터 두시까지 여지없이 뛰었고 굴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아무것도 안 먹어야 하는데 힘들어서 당이 당긴다. 오징어 땅콩이 눈에 보여 오분만에 먹어치웠다. 성에 차지 않지만 달달한 사탕 껌을 씹으며 더 먹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고 있다. 다음 주부터 필라테스 다시 나가야 하는데 걱정이다. 운동하고 와서 한숨 자고 다시 필라테스 가도 내 몸이 남아날까. 오늘도 맨소래담 온몸에 듬뿍 바르고 푹 자야겠다. 저녁엔 맛있는 김치찌개 끓여야지 돼지고기 팍팍 넣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