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lnoc Sep 03. 2018

"만약에"라는 삶의 숙제, 영화 <체실 비치에서>

어떤 일은 운명이고 어떤 일은 선택이었던

체실 비치에서 (On the Chesil Beach, 2018)

브런치 무비패스 #9

감독 도미닉 쿡

주연 시얼샤 로넌, 빌리 하울

영화 <체실 비치에서> 스틸 컷



'지금 이곳의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바라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현재 나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후회 한 점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영화 <체실 비치에서는>은 각자의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두 젊은 남녀가 첫 눈에 사랑에 빠지는 과정, 서로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필연적인 듯 헤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포스터와 영화 소개에서 이미 두 사람이 헤어질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 사실을 알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중후반까지 어떤 이유로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될 것인지를 궁금해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조금이라도 다른 상황에 놓여 있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둘은 참 사소하고 사랑스러운 이유로 사랑에 빠진다. "새와 나무의 이름을 알고 있어서 그 남자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주인공 플로렌스는 사랑에 빠진 모습 그 자체이다. 차가운 현실을 등에 엎고도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건 존재한다.


두 사람이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들이 헤어지는 이유를 알게 되면 오히려 허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가 흘러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면서 결국 이 영화는 "만약에"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에드워드가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더라면, 만약 플로렌스가 에드워드의 가족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만약 에드워드가 플로렌스를 찾아 바닷가로 나가지 않았더라면, 만약 에드워드가 플로렌스를 다독이고 그녀를 따라갔더라면 하는 것 말이다. 어떤 일은 운명이고 어떤 일은 선택이었던 그들의 매 순간이 삶의 방향을 결정지었고 세월의 흐름과 함께 후회와 그리움은 사그라들지 않고 깊어지기만 한다.


어쩌면 후회란 아무 의미 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 순간 내가 한 선택은 나의 상황과 사고방식의 결과물이다. 어느 선택은 후회할만한 상황으로부터 운좋게 빗겨가게 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나'라는 인격이 만들어 낸 삶의 결과물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가 체실비치의 갈등 상황을 어쩌다 잘 넘겼더라도 그들이 한 평생을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웹상의 나와 실제 나는 얼마나 같을까, 영화<서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