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ager is so emotional
미국 삶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람들과 어떤 주제에 얘기를 나눌 때 한 가지 정답이 있다기보다, 얼마나 아는 지를 떠나 내가 느낀 바를 표현할 수 있고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준다.
한국에서 어린시절 뭐든 잘 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은 내게 미국 사회는 내 오감이 편안하게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곳. 이런 환경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하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사회 안에서도 금융회사는 다른 산업보다 더 건조하고 치열한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C-level의 말 한마디는 무게가 크다. 그래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리더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의 말수는 줄어든다. 대부분 사실에 기반한 발언을 하려고 하고, 자신의 말이 어떤 파급력을 가지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암묵적인 룰이 있는데 감정적인 사람은 리더로서 존중받기 어렵다.
새 팀에서 일을 시작한 지 이제 8개월쯤 되어 간다. 그런데 지금 내 매니저의 감정은 마치 오 분마다 바뀌는 것 같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감정선이 하루에도 몇 번씩 크게 흔들린다.
이전 미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음 미팅에 들어가는 팀원들이 그 여파를 고스란히 받는다.
미팅 내내 툴툴거리다가 매니저의 최종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도 “읽어보면 모르겠어? 좀 읽어.” 같은 선을 넘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회사 내에서 이런 발언을 하는 리더를 직속 상사로는 처음 만나본다.
오늘 아침도 다르지 않았다.
팀 미팅 전에 자료 두 개를 준비해 대기하라는 메신저가 왔다. 팀원들의 의무 교육 진도표와 지난주 프로젝트 이슈 리스트였다. 회의는 큰 문제없이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주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주 프로젝트 건에 대한 일은 다 끝났나요?”
나는 내가 맡은 일은 모두 마쳤다고 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이메일이 저장되지 않았다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이메일에는 내가 참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진행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매니저와 체크인하려고 하던 참이었다고 설명했다. 팀 안의 특히 매니저 개인 프로젝트까지 모든 일정을 관리하는 나로서, 말대답이 아니라 내 진행 상황을 사실대로 말한 것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상대 팀에서 답장이 오지 않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추적했어야 한다는 것이 매니저의 생각이었다.
매니저의 목소리가 한층 더 올라갔다.
나는 지난주 프로젝트 마지막 날인 금요일 밤 10시까지 매니저와 함께 줌 미팅으로 프로젝트 상황을 함께 검토했고 매니저의 OK 사인을 받은 뒤 그날 일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이 되자 무언가 잘못되었고 그 책임이 내게 돌아왔다.
그 이메일 건은 사실 지난주 수요일부터 내가 계속 이야기해 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메일 승인 요청은 매니저만 할 수 있는 일이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매니저에게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고 상기시키는 것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기시키면 상기시킨다고 신경질을 내고, 상기시키지 않으면 왜 말하지 않았냐고 한다. 매니저 성향을 알고, 읽지 않겠지만 나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승인 요청을 해야 한다고 이메일로도 보내두었다.
한 편의 연극을 보듯 매니저의 제스처와 감정선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나는 차분히 듣고 있었다.
단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서.
내 말투에 감정이 묻어나지 않도록.
내 감정이 태도에 드러나지 않도록.
지난 8개월간 본인이 하지 않은 일을 팀원들에게 습관적으로 떠넘기는 리더의 모습을 목격하며 골치 아픈 매니저를 만난 것 같다는 생각에 한동안 잠잠했던 안구건조증이 돌아오는 듯 했다. 조금 더 레퍼런스 체크를 했어야 했는데.....
또 한 가지 생각도 들었다.
완벽한 매니저는 없다.
그래서 팀이 존재한다.
자신이 놓친 부분을 항상 팀원의 탓으로 돌리는 매니저가 이끄는 팀을 보면, 어렵게 뽑은 High-performing 팀원들이 결국 떠나게 된다. 매니저인 나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