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에세이
낮에 같은 구에 사는 친한 언니 부부가 꼬미가 더이상 사용하지 않은 자전거 유모차를 받으러 오셨다. 언니 부부네 아들은 우리 집 첫째 꼬미와 둘째 쏘옥이 사이에 끼인 나이라 종종 꼬미가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 중에 필요한 것들을 받아가고 또 옷 중에 우리 쏘옥이가 입을만한 것들을 물려주기도 하며 오고가고를 많이 하는 사이다.
나는 집에 있는 여분의 우유와 이유식 용 한우를 챙겨드렸고 언니는 이제 아들이 기저귀를 졸업했다며 남은 기저귀와 옷들을 주셨다. 서로 고맙다고 인사하고 작별했는데 갑자기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화장실이 급하단다. 내가 언니의 남편을 형부라 부르지 않고 오빠라 부르는 이유는 거의 20년전에 오빠와 먼저 낯이 익고 나서 두 분이 결혼했기 때문이다. 오죽 급했으면 싶어 얼른 올라오라고 문을 열어줬다. 허둥지둥 올라온 오빠에게 언니가 좀 참고 집에 가서 볼일 보지, 얼마나 민폐냐고 핀잔을 주었다. 나는 이게 왜 민폐냐고 머리를 갸우뚱했다. 당연히 노크 한 자와 문을 열어준 자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으니 언니가 한 말도 이해가 되긴 했다. 내가 어찌 생각할지 몰라 괜히 한번 해 본 말일수도 있고. 농담 반으로 내 입장을 말하자면 나도 앞으로 행여 언니네 집 근처에 갔다가 뒤가 급하면 편하게 언니네 집 문을 노크할 수 있게 됐으니 좋지 아니한가.
인복이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신혼시절에는 이 동네에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관악구에도 친한 친구가 걸어서 10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그땐 잘 몰랐는데 이사 온 지금 돌이켜보니 첫 출산과 육아로 힘들었던 그 시기 틈을 내 동네 커피숍에서 만나 수다 떨며 마신 커피 한잔이 큰 위로였고 눈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갑갑할땐 운동이라도 해야 한다며 무작정 말없이 함께 뛰기만 했던 동네 한바퀴가 힘이 되었다. 친구 어머님이 갓 구운 따끈따끈한 계란을 친구가 추운날 연락도 없이 문을 똑똑 두드리고 갔다 준 날은 하루 종일 온기 가득한 계란 몇 알에 어찌나 행복하던지. 반지하에 살았었기에 지상으로 이사 온다고 그 동네를 떠나면서 가장 미안하고 마음에 밟히는건 그 친구였다. 내가 없는 그 동네가 쓸쓸하다고 몇번이고 카톡으로 되뇌이던 친구도 얼마 뒤 다른 동네로 이사갔다. 우린 이제 차로 한시간 반 거리의 끝과 끝으로 헤어졌고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만난다고 하지만 서로 바쁜지라 이삼개월은 걸려야 한번 보는 중이다. 만날때마다 반가움에 이야기 한보따리를 늘여놓지만 여전히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남아있는건 어쩔 수 없다.
지상으로 이사왔지만 이제 4인 가족이 되고 보니 내 집 마련을 꿈 꾸게 됐다. 언제까지 전세살이로 마냥 옮겨 다닐수만은 없는 노릇이니 좋은 꿈이라 생각하면서도 가끔은 아는 지인 없이 낯선 어딘가에 덩그러니 떨어져 사는 삶이 과연 즐거울까 걱정될때가 있다. 하긴 요즘은 즐거워서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할 정도로 다들 삶의 무게를 버티고 견디는 중이겠지. 소확행이란 유행어가 생겼다는건 외부에 기대할 것이 없어 스스로 살아가는 낙을 만들어낸다는 말이기도 할테고 힐링이라는 말이 일상이 된다는건 매일 데미지를 입으며 살아간다는 얘기겠다.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서로 의지하지 않고 더 강해지는 법, 독립적이 되는 법을 맹렬하게 연습하고 있는 중인듯하다. 의지해 봤자 결국 고슴도치같은 인간들은 서로에게 생채기만 남기고 자본주의에선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 갑으로 군림할 수 있는거니까.
사회생활 가운데 이익관계가 얽힌 사람 앞에서는 어쩔수 없이 생존을 위해 내 잇속도 챙기고 계산을 잘해야겠지만 나는 갑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상생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람들에겐 이왕이면 을이 되어야겠다. 난 항상 당신이 아쉽고 당신이 필요하다며 슬며시 내 머리를 갸우뚱 무겁지 않게 당신 어깨에 기대고, 내 좁은 어깨도 혹시 필요할지 모르니 슬쩍 들이밀어 보려고 한다. 간혹 작은 상채기가 나기도 하지만 의도치 않은 생채기는 개의치 않겠다.
의지하기 위해 머리가 살짝 기울고, 기대게 하기 위해 어깨 한쪽을 빌려주는 그런 관계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는것이라고 한다. 한자로 사람 인(人)은 서로 기댄 모양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암만 생각해도 난 당신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맞다. 삶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삶의 순간순간 찾아오는 성찰과 중요한 선택들은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러니 홀로일수 밖에 없는 그 고비 다음 페이지에 당신이 있어줬으면 좋겠다. 오늘처럼 화장실이 급하다고 느닷없이 문을 노크해도 되고, 갓 구운 계란 몇알을 품에 안고 연락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도 좋다. 들락날락하는 당신들때문에 나도 머리와 어깨를 가볍게 당신들쪽으로 기울이며 홀로 똑바로 서서 보던 세상보다 약간 기운 각도에서 본 세상이 훨씬 따뜻하고 살만하다는걸 경험하며 자꾸, 더 사는 재미를 느껴갈테니까. 그렇게 혼자 감당해야 할 엔딩 페이지가 올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