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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형 딴짓마스터 Mar 29. 2017

취업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바다일거라고 믿었는데..


3년간 돌봐주던 사육사가 말했어요. 오늘 넌 훨씬 좋은 곳으로 갈 거라고. 아, 나도 드디어 바다로 가는구나. 그렇게 믿었어요. 즐거웠어요. 전에는 좁은 수족관에서 빙글빙글 헤엄치는 게 하루의 전부였으니까. 넓은 바다로 가면 한번 신나게 앞만 보고 달려 봐도 되겠구나. 그렇게 믿었는데, 난 오늘도 일하러 가요.

- 돌고래쇼 4년차 윌리의 말


고등학교 3학년은 지옥 같았어요. 대입만 성공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다들 그랬죠. ‘집-학교-학원’을 반복하는 일상이었지만 다행히 노력은 헛되지 않았어요. 원하는 학교, 원하는 전공의 신입생이 됐으니까. 이제 내 꿈을 펼치겠구나. 그런데 그게 아니었네요.

- A대학 본관 뒤뜰에서 만난 학생의 말 각색


영화과를 지켜주세요


벌써 2년 전이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남은 3월 말, 모교를 찾았다. 추웠나보다. 학생회관 앞에서 플래카드를 든 학생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약속이 목전이라 그냥 지나갈까 했다. 몇 걸음 지나쳤지만 발걸음이 부쩍 무거워져 학생회관 1층 매점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커피 두 캔을 사서 다시 그 자리에 가보니 다행히 학생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커피를 전해주니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며 고마워하는 학생들. 영화과 2학년들이었다. 학과가 통폐합된단다. 심지어 신입생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입학했단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시작됐다. 학생들은 앞 다퉈 다윗을 자처했다. 꼬마 다윗들에게 명함을 나눠줬다. 학생회장에게 전해 달라고. 전해줄 목소리가 있다면 언제든 들려 달라고.


며칠 뒤 대학 본관 앞에 모인 학생들을 만났다. 8개 학과가 학교가 마련한 도마 위에 올라 있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학생들은 손에 손잡고 본관을 따라 원을 만들었다. 본관 어디서든 그네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갑자기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본관 서쪽 대열이 흐트러졌다.


학생들을 뚫고 이사장이 빠져나왔다. 카메라를 들고 뛰었지만 하필 반대편에 있었던 탓에 얼굴을 담지 못했다. 열심히 달려가는 모습이 안쓰러워서였을까? 간간히 터져 나오는 학생들의 박수 소리에 위안이 됐다.


우리는 아이의 미소를 지켜줘야해.
어설픈 동정은 아니었다


그보다 몇 년 전, 지도교수님은 “과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고 말하셨다. 일병 휴가 때였다. 이런, 학교에 괜히 들렀네. 휴가에서 복귀해야 한다는 암담함보다 훨씬 어두운 생각의 바람이 밀려왔다. 바람은 내 머릿속을 헝클어뜨렸다. 사실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로 분위기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를 아는 것과 교수님의 입으로 직접 듣는 기분은 비교 불가였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우리 과는 살아남았다. 나도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학과로 진학했던 같은 학부 친구들은 꿈의 공간을 잃었다. 소수 학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이 적다고 아직 졸업생도 배출 안한 곳을 없애버렸다. 비전도 차별성도 고려되지 않았다. 친구들은 잔인한 현실 앞에 놓였고, 골리앗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나는 내무실에서 뉴스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취업대학에 복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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