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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형 딴짓마스터 Apr 23. 2017

빨강의 흑백이 좋아

사진가의 도시 #2

Strangers, 청계천. 2016

사진을 찍는다면 누구나 마음에 품은 카메라가 있습니다. 한때는 메이저 브랜드의 DSLR 최고급 기종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한 여배우가 롤라이플렉스를 유행시켰을 때 중형 카메라가 궁금해진 적도 있죠.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본 분들은 체 게바라의 카메라로 알려진 코닥 레티나를 꿈꾼 적이 있을 겁니다. 사진가들의 사진 스타일만큼이나 각자의 드림 카메라도 각양각색입니다.


Strangers, 청계천. 2016

그런데 사진 찍는 모두가 마음에 품은 카메라가 있습니다. ‘모두’라는 표현을 함부로 쓰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쓸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호기심 정도는 느꼈을 테니 말이죠. 네, 라이카(LEICA)입니다.


Strangers, 청계천. 2016
Strangers, 청계천. 2016
Strangers, 청계천. 2016

잘 익은 사과처럼 박힌 ‘빨간 로고’로 상징되는 카메라. 라이카에 붙은 찬사를 나열하기는 너무 상투적입니다. 그만큼 널리 알려졌죠. 장르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았으며,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멋진 결과물을 보여줬던 어떤 카메라에게 ‘가난한 자의 라이카’라는 별명을 붙여준 카메라. 더한 찬사가 많지만 이 정도로 줄이려 합니다.


Strangers, 청계천. 2016
Strangers, 청계천. 2016

마침 라이카를 써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친한 형이 가진 라이카 X(typ 113) 기종이었는데요. 환산 화각 35mm는 스냅사진을 좋아하는 제게 적격이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2주, 바로 청계천으로 떠납니다. 사야 될 책이 있어서 광화문에 가야 했고 청계천은 광화문 근처에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촬영 포인트니까요. 도착해보니 서울 여행을 온 외국인들이 많더군요. 모델도 정해졌습니다. 이제 생각해야 할 건 '어떻게' 찍느냐입니다.

 

Strangers, 청계천. 2016
Strangers, 청계천. 2016

라이카의 디지털 바디를 잡아보고 싶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사진을 보고 눈치채셨겠지만 라이카는 너무나 만족스러운 흑백 결과물을 뽑아주기로 유명합니다. 라이카의 '경조 흑백' 모드를 체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제 이 친구와 함께할 시간은 오로지 흑과 백으로 채워질 겁니다.


그리고 같은 장면에 한국인들을 함께 넣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순간들이니까요.


Strangers, 청계천. 2016
Strangers, 청계천. 2016

사실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전업 사진가가 아니다 보니 시간의 틈을 찾아내 투자해야 했죠. 2주일 중에 셔터를 누를 수 있는 기회는 딱 3일이었습니다. 평일 오후 한 번, 주말 두 번. 말도 안 되는 무더위였지만 늦게 지는 여름 해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청계천 초입에 눌러앉아 외국인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흥미롭게 바라봤습니다. 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고, 산책을 나서기도 했죠. 다만 멀리 가지 않고 다시 빠져나가는 이들이 많아 아쉬웠습니다.


Strangers, 청계천. 2016
Strangers, 청계천. 2016

이날의 주인공은 이 아이였습니다. 꼬불꼬불한 머리카락과 깊은 눈, 진한 쌍꺼풀이 참 대조적이죠? 꼬마 뒤에 보이는 우리나라 아이들 표정도 제법 재밌습니다. 처음 청계천에서 외국인들을 찍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사소한 걱정이 들었습니다. 중국인들만 가득해서 촬영하는 재미가 줄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기우였습니다. 청계천은 다인종 관광객들의 집합소였으니까요. 히잡(또는 그와 비슷한 국가별 옷차림)을 쓴 이슬람교도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죠.


최근 한국을 찾는 유커들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저는 잠시라고 생각해요. 서울은 이제 세계적 대도시가 됐고, 여행자들의 욕망은 줄어들 수 없거든요.


Strangers, 청계천. 2016

라이카와 함께한 세 번의 기다림은 확실히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빨강이 담아준 흑백은 매력적이었어요. 대단한 보정을 넣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소중한 카메라를 선뜻 빌려준 형(도 브런치 작가입니다)에게 고맙고, 기다림 속에서 멋진 표정으로 영감을 준 사진 속 그녀에게도 감사합니다.


언젠가 그녀에게 이 사진을 선물할 날이 올까요?




'사진가의 도시'는 제가 사는 매력적인 도시 서울의 순간과 여행하면서 만난, 만나게 될 세계의 도시를 담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사진가의 도시'는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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