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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형 딴짓마스터 Mar 13. 2017

꿈을 멈추게 만드는 사회

꿈꾸지 않는 아이들은 없다

나는 재수생이었다. 재수를 시작한 그해 3월은 수험생활을 통틀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던 때다. 애석하게도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점수는 한 계단, 한 계단 낮아져 수능이 되니 고3 때 받은 점수로 돌아와 있었다. 하필이면 고사장도 모교였다. 교문 앞에서 수험생들을 지도하던 옆 반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인사하는 내가 문득 죄인 같았다. 죄인처럼 입장해 죄인처럼 퇴장했다. 1년을 투자했지만 똑같은 자리였으니 명백한 실패였다. 그래서 난 스무 살을 가장 싫어한다.


배우고 싶었던 전공은 일찍이 정해져 있었다. 문제는 학교였다. 수능을 보기 전에는 고려조차 안 했던 선택지가 눈앞에 놓여 있었다. 실력에 비해 너무 높은 목표를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은 앞 다퉈 점수대에 맞는 ‘유망 학과’들을 추천했다. ‘유망하다’는 기준은 다들 알겠지만 ‘취업하기 좋다’였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A4 용지 몇 장을 건네셨다.


“아들, 언론계열 학과를 가고 싶다면 여기는 어떻겠니?” 


내가 졸업한 학과가 있는 학부 소개글이었다.


목표치를 채우지 못한 성적표는 휴지조각이다. 목표가 없는데 점수가 무슨 소용이람. 그런 내게 아버지의 제안은 빛줄기였다. 점수대를 고려해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꿈과 가장 가까운 곳을 선택하고 싶었다. 개꿈 같았던 스무 살이 찬란한 스물한 살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그 꿈이 거창하지 않은들 무슨 상관이랴. 문제는 꿈을 멈추게 하는 사회다.


“꿈이 없어요”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어”라고 한탄한다. 용기 내서 말한 꿈이 다른 이들의 성에 차지 않을 때 아이들은 비난받고, 무시당한다. 대신 살아주지도 않을 거면서.


부모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고민 상담을 해주는 한 예능프로그램을 봤다. 래퍼가 되고 싶은 갓 스무 살 된 아들의 사연이었다. 힙합을 모르는 부모는 랩 연습을 하면 노크로 방해하고 오디션도 참가하지 못하게 했다.


부모는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맞다. 누구라도 자식이 꽃길만 걷길 바랄 테다. 하지만 그 길이 꽃길인지 가시밭길인지는 걸어보면 알 일이다. 부모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아들의 미래를 재단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가 걸었던 길 역시 삶 앞에 놓이는 수없이 많은 갈림길의 한 조각일 뿐이다. ‘경험’을 근거로 삼기에는 표본이 영 부족하다는 말이다.


‘꿈이 없다’는 말은 ‘아직 말할 수 없다’는 의미일 때도 있다. 내 꿈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어떤 폭풍이 몰아칠지 아이들도 아는 거다.


“겨우 그 성적에?”
“문과 가면 고생한다?”
“집안 사정 알면서 그런 말이 나와?”
“불안정하잖아?”
“네가 무슨...”
“(다짜고짜) 안돼!”


너무나 현실적인 이유에 막연한 무게감을 느낀 아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그대로 주저앉는다. 그래서였을까. 광장에 나온 학생들은 박탈감을 느꼈다. 정유라의 특혜 인생이 공개되자 학생들은 “꿈이 좌절됐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뭐하나”라고 울부짖었다.


꿈이 없으면 찾으면 된다. 그 꿈이 거창하지 않은들 무슨 상관이랴. 문제는 꿈을 멈추게 하는 사회다.


지금 아이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3년 전 인천의 한 여고에서 진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며칠 후 한 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저 기자가 되고 싶어요. 그때 강의 듣고..”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마음이 무거웠던 건 내가 훌륭한 기자가 아닌 데다가 글자 너머 이 친구가 위축됐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대화를 이어가 보니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당장 급한 건 수능이었기 때문에 당면한 과제부터 해결해보자고 했다.


지난해 수능이 끝났다. 이 친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 글에서 ‘꿈’은 진로나 직업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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