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촛불아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재형 딴짓마스터 Mar 21. 2017

캥거루족이 말하는 독립이란 것

경제적 독립과 정서적 독립

오늘은 ‘육아낭’에서 졸업하는 날이에요


태어난 지 1년. 친구들은 벌써 몇 달 전에 독립했대요. 저는 엄청 늦은 거죠. 졸업식에 온 친구들 중 친한 애는 딱 한 명밖에 없네요. 방금 방송을 들었는데 졸업식 참여 안 한 가족들이 많대요. 듣고 보니 빈자리가 많아요. 옆 동네 사는 왈라는 독립하긴 했는데 매일 찾아와서 먹을 것 좀 달라고 성화래요.


그래도 전 오늘 졸업해서 당당한 성인이 될래요.


캥거루는 호주에만 사는 줄 알았더니


‘학교를 졸업해 자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청년’을 ‘캥거루족’이라고 한다. 어떤 어른들은 캥거루족을 보고 “철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게 IMF 관리 아래 처음 등장한 캥거루족은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안 하고 얹혀사는 사람’을 지칭했다. 독립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이들에 가까웠다. 지금보다 훨씬 비판적인 뉘앙스였다.


요즘 말하는 캥거루족은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독립하지 못하는 사람’을 포함한다. 일자리가 부족하니 양질의 일자리는 더 적다. 집값과 생활물가는 너무 높다. 참 기형적이다. 적게 벌고 많이 써야 하니 저축하기도 빠듯하다. 이들을 ‘신(新) 캥거루족’이라 구분하기도 한다.


작은 캥거루의 미래는?


서른 전에 독립해야지


34살, 5년 차 직장인 A. 미혼. 독립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대기업 직원만큼 벌지는 못하지만 내 생활할 만큼 하고 모을 만큼 모으며 살고 있다. 부모님과 동거 중. 용돈을 받지는 않지만 생활비도 못 드린다.


어릴 적 A는 29살에 결혼하고 싶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버지가 29살에 결혼했으니까. 자기도 그쯤에는 결혼하겠거니 싶었겠지. 


몇 년 후 A는 초등학생이 됐고 친구를 사귀었다. 친구들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20대 중후반이면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대학생이 되자 아버지가 보시던 뉴스에서는 날마다 ‘취업이 힘들다’고 성화였다. 복학생이 되고 취업 준비생이 돼도 같은 앵커, 같은 뉴스, 같은 실업률. 프롬프터가 무한 스크롤인가 보다.


취업 준비 1년 만에 원하던 업계에 취업하게 됐다. 운이 좋았다. 남들은 한 시즌에 수십 번 떨어지는 걸 2~3년 넘게 한다는데. 뉴스도 A의 지도교수도 눈을 낮추면 취업된다기에 이름 들어본 중소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아, 이제 착실히 돈 모아서 결혼하면 되겠구나.


자네는 독립 안 해?


회사 간부와 점심 식사를 가진 날이다. 취직했으면 당연히 독립해서 살아야 효도하는 것 아니냐고. “아... 네... 뭐... (당연한 게 쉽게 안 되네요)”


서른넷. 5년 차 직장인. 미혼. 그도 캥거루족이다.


이 아이들의 시대에는 캥거루족이 사라지길 바라보며.


경제적 독립과 정서적 독립


월급 받으면 빚 갚고 월세 내면 끝. 카드 값이나 통신비는 줄인다고 쳐도 저 둘은 어떻게 할 수 없다. 바늘구멍 뚫고 취업은 했지만 초봉이 낮다. 연봉 인상률도 낮은데 결혼이나 노후를 준비하려면 돈을 모아야 한다. 월세라도 없어야 돈을 모을 것 같다. 그렇게 자발적 캥거루가 양산된다.


아이는 부모와 있을 때 안정을 느낀다. 부모와 떨어지지 못한 캥거루족도 마찬가지다. 일부 캥거루족은 부모와 떨어져 살 이유를 못 느낀다. 때로 (결혼하고 나서도) 중요한 의사 결정을 부모에게 맡기기도 한다. 그게 편하니까. 내가 결정하기 무서우니까.


국가 정책과 가정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해결 가능한 문제다.


A도 한탄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니 한편으로는 부모님 덕에 큰 고생 안 하고 사는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20년째 힘없는 캥거루들을 찍어내고 있다.

진짜 캥거루는 근육이라도 있지.

매거진의 이전글 등잔 밑은 아직도 어둡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