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Chile, Santi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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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를 떠나 산 페드로 아타카마(San Pedro Atakama)를 향하는 버스 안.
당최 잠이 오지 않는다. 뜬 눈으로 한숨만 푹푹 쉬길 25시간째.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출발 직전 당한 도난사고 때문이었다.
도난 사고 진술서
사고 일시 : 2015년 4월 7일 오전 9시 30분
사고 장소 : 칠레 산티아고 시외버스터미널(Terminal Santiago, La Alameda 3850)
분실 내용 : 컴퓨터 가방(회색의 백팩)과 내용물 일체. 노트북, 망원렌즈, 태블릿 PC, 외장하드디스크, 멀티탭,
인터넷 전화기, 전자제품 액세서리, 구급약 등
사고 경위 : 하기 상세 참조
버스 승강장에서 산 페드로 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저니가 잠시 간식거리를 사로 자리를 비운 사이 스테이시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아가씨, 지하철 타려면 저쪽으로 가면 됩니까?”
“아니요, 이쪽이에요 터미널 아래에 지하철역이 있어요”
“아닌 것 같은데…저쪽이라고 하던데 저기 저~쪽 아닌가요?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하고선 가버렸다. 멀어져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든 저니.
'스테이시가 왜 저 남자와 얘기하고 있었지? 아뿔싸! '
“스테이시! 컴퓨터 가방 어딨어?”
"컴퓨터 가방? 여기…어?!”
없다. 거짓말처럼 “뿅”하고 사라졌다.
조심 조심 또 조심. 그렇게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두었건만 소 귀에 경 읽기였구나.
곧바로 터미널 안으로 달려가 여기저기 뒤져 보았지만 가방도 그 남자도 보이지 않는다.
“많고 많은 현지인 놔두고, 왜 우리한테 길을 묻겠냐고! 아이고 스테이시야...”
수도 없이 들었던 중남미에서의 도난사고. 보기 좋게 당했다.
추정컨데, 범인은 최소 3인으로 된 전문 털이범이다. 한 명이 시선을 따돌리는 동안 옆에 있던 가짜 승객이 조용히 물건을 빼내 제 3의 인물에게 전달한 것. 이 모든 것이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가짜 승객으로 의심되는 인물에게 하소연해보았지만, 입을 꾹 다문채 고개만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모르는 일이오'라는 거다.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느낌이 강하게 풍겼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경계심이 많았던 저니는 위험하다는 남미 여행을 앞두고 정신무장을 다시 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와도 스페인어 못한다며 거리를 두는 것은 물론, 호신용 칼까지 챙겨 다녔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반면 지금까지 살면서 사기당한 적도 물건을 잃어버린 적도 거의 없는 스테이시.
지갑을 잃어버려도 되돌아왔다. 주운 사람이 교회 목사 사모님이었던 것. 그녀의 세상은 선의와 정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믿고 살아온 그녀는 불을 꼭 만져봐야 뜨거운 줄 안다. 다른 세상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대가로 비싼 수업료를 치른 셈이다.
평소 지키던 룰이 깨지면 어김없이 일이 터진다. 늘 저니가 짐을 지켜왔는데 왜 역할을 바꿨던 걸까? 그간 빨간 패니어백에 넣어둔 컴퓨터 가방을 그날 아침엔 왜 꺼낸 거지? 어제 탔어야 할 버스는 자전거 탓에 실랑이만 벌이다가 결국 타지도 못하고. 아마도 범인들은 전날부터 우리를 노려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쓰인 것처럼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자전거는 화물로 따로 보내고, 일정은 틀어지고, 일이 꼬이더라니…
도난사고까지… 누구를 탓하랴. 결국 자신의 부주의에서 생긴 일인 것을. 허망한 눈빛으로 그저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범인들 횡재했겠어"
잃어버린 물건 하나 하나 전부 아까워 죽겠다. 아이패드는 포기하더라도 노트북은 있어야 되는데…호주에서 어렵사리 마련한 것이었건만. 노트북이 손에 들어왔을 때의 행복해했던 저니의 모습이 떠오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외장하드. 그간의 사진과 작업 원본들, 돈으로 살 수도 없고 영영 회복할 수 없는 것들이다. 스테이시의 선의와 정의가 재현되어 다시 우리 물건이 손에 들어오면 좋으련만. 허황된 희망이란 이런 거겠지.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받는다
자책과 분노, 허망함으로 눈을 감을 수가 없다. 그렇게 뜬 눈으로 버스 안에서 만 하루를 보내고 목적지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에 도착했다. 관광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마음이라도 달래고자 ‘달의 계곡’을 찾기로 했다. 탁 틔인 곳에 가면 기분전환이라도 되지 않을까.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고 가까운 한 여행사에서 투어 신청하였다. 신청을 마치고 대기 중이던 우릴 향해 예쁜 아가씨가 명랑하게 말을 건넨다.
"어머! 한국분이세요? 같은 시간대네요"
캐나다에서 하던 일이 마치고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던 주희 씨였다. 젊고 쾌활한 성격의 그녀. 함께 하는 동안 마음이 치유되는 듯했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받는다. 공허한 마음이 있었기에 다시 채울 수 있는 것인지도.
해질 무렵. 달의 계곡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서서 석양을 바라보았다. 붉은 노을과 함께 계곡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사진으로 남겨진 기억은 사라졌지만 가슴에 새겨진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멋진 풍경을 감상한 하루. 도난으로 받은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그래! 이대로 멈출 순 없어. 내일이면 달의 계곡에도 붉은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PS. 주희 씨!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반가웠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한국에서 만나요!’
한국에서의 멋진 삶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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