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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홉이든 HOPEDEN Mar 11. 2023

농장체험 세계일주

희망을 심다, 지역을 살다

출판사를 찾고 있습니다. 홉 재배기술과 한국농업,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저희와 결이 맞는 출판사를 만나 이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탈고를 한 상태이며, 일부 글을 브런치에 올릴 예정입니다. 출판을 원하시는 출판관계자분이 계신다면 연락주세요. 고맙습니다. - 홉이든 농부 김정원 드림 jowrney@jowrney.com


3년 간의 세계여행이 끝나다

5월 말 모심기를 기점으로 시작된 농번기. 한낮의 찌는 해를 피하기 위해 비닐하우스 일은 이른 새벽부터 시작한다. 오전 작업을 마치고 나면, 부모님께서 직접 키운 쌀과 텃밭에서 기른 온갖 채소로 맛깔나게 차려진 점심 밥상을 받는다.  머슴밥처럼 꾹꾹 눌러 담은 밥공기를 뚝딱 비우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거실에 드러누우면 스르륵 눈이 절로 감긴다. 보약 같은 낮잠 시간.  


아름다운 대자연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다. 자전거 가득 실려진 짐은 마치 세계일주를 할 요량인 듯하다. 고개를 돌리니 스테이시도 함께 달리고 있다. 힘껏 페달을 밟고 있는 그녀의 얼굴엔 땀방울이 맺힌다. 오늘은 아무래도 와일드 캠핑을 해야 할 것 같다. 지도를 살펴보아도 근처엔 마을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멈춰 선 곳이 집이고, 내가 가는 곳이 길인 것을.  


땅거미가 질 무렵 우리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텐트를 쳤다. 주변정리를 하고 텐트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극지방의 밤하늘을 드리우는 오색찬란한 커튼. 오로라는 지평선 끝과 끝으로 이어져 한참을 춤을 춘다. 넋이 빠져 보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한밤에 솔솔 불던 바람이 텐트를 흔들더니 이내 폭풍으로 바뀌어 결국 텐트 폴대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부러진 폴대는 ‘부욱’하는 소리를 내며 플라이를 찢어 놓았다. 난 거친 바람과 함께 이대로 끝인 건가. 갑자기 누군가 내 몸을 흔든다. 


“여보! 여보! 일어나요. 오후 4시예요. 밭에 일하러 가야죠.” 


그토록 꿈에 그리던 여행은 이제 정말 끝이 났다. 정신을 차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후 일과를 위해 비닐하우스로 향한다. 화창한 봄날 논길을 걸으며 잠시 지난 일을 떠올렸다.


3년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영국 히드로 공항을 찾았다. 여행 중 수 없이 많은 비행기를 올랐지만, 마지막 비행기는 대한항공을 선택한 이유도 여행 중 부릴 수 없었던 사소한 사치와 함께 향수라고 생각했다. 


3년간 35개국 13군데의 세계 각국의 농장을 경험했다. 이동수단은 자전거,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 평균 60km. 그 탓에 자전거는 짐짝으로 취급될 때도 많았지만, 자전거를 고집한 이유는 각 나라의 지역을 이동할 때 시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더 많은 나라를 돌아볼 수 없었지만, 단순히 농업은 산업의 하나가 아니라 그 지역의 사람과 문화가 함께 하기 때문에 돈으로 살 수 없는 좋은 경험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호주 텃밭농부, 코알라 살림을 살리는 사람들, 뉴질랜드 양털산업, 칠레 유기농 블루베리과 헤이즐럿, 아르헨티나 한국인 루피노 화훼, 볼리비아 퀴노아, 페루의 커피, 에콰도르 바나나, 콜롬비아 카카오, 니카라과 바바나, 멕시코 마게이 농장과 아보카도 농장, 미국의 거대한 플랜테이션, 독일의 홉, 루마니아 유채, 그리스 올리브, 불가리아 장미, 터키의 딸기와 해바라기 등. 시간이 더 허락한다면 더 많은 세계의 농업을 경험하고 싶었다. 


한국행 조용한 기내에 친근한 한국어 안내가 울려 퍼진다.  '도착 시간 전에 간단한 음료와 식사를 다시 제공해 드릴 예정입니다', 한국의 국적기를 이용하면 기내식으로 밥이 나온다. 망설일 이유도 없이 소고기 덮밥과 맥주를 주문했다. 잠시 한국의 하얀 쌀밥에 향수에 빠질 틈도 없이 잠시 놀랐다. 기내식으로 나온 맥주가 G사의 수제맥주가 아닌가. 미국 각 지역 곳곳에 크래프트 비어가 유행하고 즐겼던 기억과 독일 테트낭 홉 농장을 떠올리며 스테이시에게 한 마디 건넸다.


'우리 홉 농사 지어볼까?'




상실과 전환

우리가 여행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저니의 어머니와의 이별이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 남편 복 없고 가난한 삶에 두 자녀를 겨우 건사하며 몸을 혹사시켰다. 자식이 다 크고, 시집장가를 다 보내고 선 이제 본인의 삶에 집중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배우지 못한 한을 주부대학에서 공부하며 친구를 만들고, 그저 부러워하던 자전거를 배워 올림픽공원에서 원 없이 타게 되었다. 디지털카메라를 쥐고 세상에 이쁜 꽃, 귀여운 강아지, 소중한 자녀들을 찍어주며 한껏 웃으셨다. 젊은 시절 펜팔했던 추억을 살려 블로그도 열심히 끄적거렸다. 세상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고 더 이상의 불행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자주 쓰러지고 의식을 잃는 일이 생겨 병원을 가니,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어렵게 조혈모세포 공여자를 찾고 골수이식을 받을 땐 다시 희망이 보이는 가 싶었지만, 수술을 잘 받고 퇴원하던 그날. 퇴원 기념으로 함께 한 저녁식사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응급실에 실려간지 한 달 만에 의식은 찾았지만, 더 이상 그녀는 우리가 알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우리를 알아보지도 말을 하지도 못했다. 다시 일어설 수도 없었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다. 60살도 되지 않은 젊은 한 여성은 하룻밤에 갓난아이가 되었다.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아니어도 괜찮다. 부디 수술 이후 면역체계가 돌아오고 집에서 돌볼 수 있기만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점점 몸은 악화되어 갔고 결국 패혈증과 합병증이 퍼지면서 그녀는 영영 만날 수 없는 터널을 지났다. 


인생무상人生無常, 참 덧없는 인생이었다. 우린 무엇을 위해 살았던 것일까. 우리 부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1년의 추모기간을 가지며 결심했다. 노년에 은퇴하면 귀농하기로 했던 일을 실천하기로. 그전에 세계를 돌아보며 사람과 농업을 느껴보며 길을 찾아보자 했다. 그리고 아직 건강하게 남겨진 부모님과 후회 없이 함께 추억을 쌓기로 마음먹었다. 스테이시는 무역회사에서 안정적인 회사생활과 고액연봉을 받을 무렵이었고, 저니는 IT업을 하면서 수익을 내던 시점이었다. 이대로라면 흔히 서울 대도시에서 안정적인 삶을 꿈꿀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래 어머니도 살아계셨다면 충분한 자금과 노후를 준비하며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귀촌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은 우리의 삶의 방향에 대한 결정을 조금 더 빨리 내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가 단순히 농업만이 아닌 삶의 방향과 자세에 대한 고민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삶의 방향

귀농을 목표로 세계 각국의 농장을 둘러보기로 한 결정은 쉽지 않았다. 30대 후반, 서울에서 터전을 잡고 어느 정도 안정된 삶과 경제적으로 보장된 노후를 그릴 수 있는 시기였다.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귀농은 둘째 치고, 일단 여행을 간다고? 가족, 친구, 지인 모두 어이가 없어했다. 


여행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하루하루 어디서 잘지, 무엇을 먹을지, 이 두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내일은 그날 가서 고민하고 오늘에만 집중하자. 대신, 언젠가 내일을 살 날을 후회 없이 맞을 수 있도록 충실한 오늘을 살자고 다짐했다. 또한 일상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거슬림이 없도록 하되, 우리가 경험한 것,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겠다 싶었다.  


가난한 나라가 더 많이 웃고 그렇게 해맑은 이유는 뭘까? 지금껏 우린 무얼 위해 살아온 걸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비교하며 정작 나 자신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그런 의문과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은 오롯이 스스로에게 준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과 온갖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타임라인에서 분발해 준 많은 분들 덕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을 심는다

3년은 꽤 긴 시간이다. 군필자라면 군대 기간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긴 만큼 때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힐 때, 회의가 몰려올 때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여행을 위한 하나의 장치가 필요했다. 위기가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는 하나의 문장을 만들었다. 지금은 인생철학이 되어 버린 그 문장.


 ‘오늘을 달리고, 내일을 심는다’


여행 전후로 많은 장기 여행자를 만나고 또 그 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꿀맛 같은 여행에도 슬럼프가 있다는 것. 스스로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 어떨 땐 무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의 경우 여행 1년 즈음이었다. 살던 곳으로부터 소식이 들려올 때다. 아파트를 사고 아이를 낳고. 모두들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밖에서 바라볼 때면 우리는 과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먼 길 떠나야 할 수 있는 진귀하고 소중한 경험들이 순간 따분해지고 어마어마한 대자연도 시큰둥 해 질 때가 있었다. 때마침 들려온 직장동료로부터 온 달콤한 제안에 귀국 비행기를 알아보기도 했었다.  


그때 우린 그 문장을 떠올렸다. 오늘을 달리지 않는데 어찌 내일을 심을 수 있겠나. 우린 달리지 않고 있던 것이다.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힘껏 페달을 밟아 닿은 곳은 칠레의 블루베리 농장. 호스트 파트리시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나는 그 문장을 떠올렸다. 오늘을 달리지 않는데 내일을 심을 수 있겠는가.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힘껏 페달을 밟아 닿은 곳은 칠레의 블루베리 농장. 농장 주인 파트리시오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예전에 벌목꾼이었어. 배우지 못한 우리 4형제가 할 줄 아는 일이라곤 나무 베는 것뿐이었지. 물론 대대로 이어온 그 가업이 싫었던 건 아니야. 수입도 꽤 괜찮았거든. 그런데 우리 자식에게까지 벌목을 시킬 순 없지 않겠어? 잘라내기만 하는 일 말고 이제 나무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잖아!” 


그가 블루베리 농장을 하게 된 연유를 그렇게 말했다. 칠레 농부의 이 말은 우리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어떤 내일을 열 것인지는 오늘 무엇을 하느냐에 달렸다. 오늘을 달리던 일을 마치고 이제 새로운 문장을 만들었다. 


‘오늘을 심고, 내일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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