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우거지감자탕
성웅 선배로부터 카톡으로 블로그 링크 하나가 도착했다.
⌜수서역 인근 임장 :: 네이버 블로그⌟
이윽고 바로 도착한 카톡,
- 형이 저번에 청약 넣어보라는 데 넣어봤어?
- 아뇨 너무 비싸던데... 오늘 출근하셨어요?
- 급 한잔 할까
몇 개월만의 연락이었음에도 후배는 선배와의 10년을 훌쩍 넘긴 술상의 경험 상 당돌하게 선배의 안부 따위는 묻지 않은 채 그 날 그의 출근 여부만이 궁금했다. 연락이 된 내친 김에 각자의 터수를 확인하면 됐지.
- 네 제가 여의도로 7시까지 갈게요
성웅 선배의 회사는 여의도에 있었다. 굴지의 금융사들 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초고층 상업 건물과 대형백화점, 고급 호텔까지 들어선 명실상부 서울의 중심지. 탁 트인 한강과 남산타워가 보이는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서울 토박이가 아닌 나의 지독히도 깊고 진한 감성을 훔친 ‘너섬’.
한창 취업을 준비하던 스물다섯의 나는 당시 뚜렷한 이유 없이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 취직하고 싶었다. 경영학 전공이었기에 금융 쪽 분야를 조금 더 공부해서 자격증도 따고 했다면 가능했을 법도 한데, 그렇다고 그 당시 금융사를 꼭 들어가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굳이 여의도에 있는 회사를 눈독 들였던 이유는 지극히도 순진무구했다 – 봄이면 윤중로에 벚꽃이 피니 선홍빛으로 가득한 그 길을 따라 퇴근할 수 있어서, 점심식사 후 운동 겸 울창한 나무로 푸르른 여의도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어서, 가끔씩 밤이 되면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캔맥주 하나 들며 황금빛으로 장식한 한강 위 크루즈와 그 뒤로 빨간 빛을 진중하게 깜빡이는 남산타워를 볼 수 있어서.
그 작은 섬에도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건물 안에서 밤에도 불을 밝히는 많은 회사원들의 현실을 이해하기까지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이 섬에서 혼자만의 안식과 낭만을 누리고 있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일찍이 업무를 마감한 직장인들이 아직 흐트러지지 않은 와이셔츠 차림으로 노상에서, 또는 오래된 상가 건물 지하 어딘가 구석진 식당에서 서로 왁자지껄 떠들며, 화려한 요리보다는 진한 육수가 식도를 사르르 덮는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잔이나 바삭하게 튀겨낸 치킨 한 마리에 살얼음꽃 잔뜩 피어낸 생맥주 한 잔이면 충분한, 여의도는 그런 소탈한 멋이 있는 섬. 가을이면 고층 빌딩 사이 작은 골목 노상마다 열린 포차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지도앱을 켜고 여의도역 주변 식당을 검색하다가 후기가 나쁘지 않은 감자탕집을 발견했다.
- 형 여기 갈까요
- 오 감자탕 좋은데?
- ㅇㅋ 여기서 7시에 뵈요
그 날의 조명, 온도, 습도에 맞춰 알맞은 식당을 고르고 선배에게 자신있게 권하는 만큼 두 사람이 부딪힌 소주잔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빠르게 약속 장소를 정하고 남은 업무를 빠르게 정리하고 6시 정각에 사무실을 나섰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식당에 도착하게 되어 선배가 도착하기 전 우거지감자탕을 먼저 주문한 후 한 소끔 끓여내었다. 보글보글 감자탕이 끓을 무렵 알맞게 도착한 선배는 자리에 앉고 마스크를 벗었다.
- 잘 살았냐.
- 뭐 늘 똑같죠. 이모 여기 참이슬하고 카스 하나요.
- 코로나는 잘 피해다니고 있어?
- 아직은요. 주기적으로 알코올로 소독해서 괜찮아요.
시작부터 애드립을 늘어놓는 후배를 향해 선배는 한 번 썩은 미소 한 번을 날리며 손소독제를 한 움큼 짜내 손에 고루 펴 발랐다. 이윽고 찬 서리로 한껏 감싸인 맥주잔에 소주를 좔좔 붓은 다음, 맥주를 잔 끝까지 찰랑거릴 정도로 가득 채웠다. 잔에 술을 알맞게 붓는데 공을 들일 시간에 차라리 술을 가득 붓고 잔을 빠르게 비워내며 못다한 토크나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일까.
- 와, 요즘 집값 미쳤어 정말.
- 그러게요, 저는 엄두도 못 내겠어요.
- 형도 그 때 샀기에 다행이지 지금은 장담 못할겨.
- 저는 뭐 망한 것 같아요, 허허. (건배)
낮에 카톡으로 나눈 대화를 이어가려고 탁상에 올려놓은 화두는 어김없이 천정부지로 솟는 집값과 이제는 차별화된 전략을 가져가야 한다던 주식, 나아가 위험해 보이지만 누군가의 한 방이 더 이상의 노동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일확천금을 안겨다 주었다는 코인 이야기였다.
삼수 끝에 대학에 입학한 만큼 남들과 같은 박자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성웅 선배에게 있어서 사치였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이 그 누구보다 확고했다. 대학의 과를 고르고, 동아리 및 대외 활동을 하는 데에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었고 그 길의 끝에는 그가 꿈꾸던 사업이 있었다. 군대 전역을 한 직후에 이미 아래아 한글 파일에 각 잡힌 목차를 시작으로 꽤 구체적인 사업의 컨셉노트를 완성한 그였다.
선배도 나도 지방에서 상경하여 이 곳에서 직장을 구하고 사는 입장에서 그는 어수룩하고 다른 친구들과는 어딘가 사뭇 달라 보이는 대학생 시절의 나를 먼저 편하게 대해주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을 편치 않아 하는 내 성질을 알아채고 따로 술 한 잔씩 사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던 그였다. 가끔 아득한 그의 사업계획에 채색을 더하는 재미도 있었다 – 그 사업이 훗날 실제로 진행된다면 나는 이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고 그 때까지 어떤 경험이 많이 있었으면 한다는 – 마치 어른들의 레고 블럭 놀이처럼. 이윽고 그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자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현실적으로 변모했다 – 육아, 출산, 소득, 집 등등.
그 동안 나의 신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전환된 주제의 대화가 낯설지만은 않았던 건 머지 않은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얼마 전에 평촌으로 다녀왔던 부동산 임장을 시작으로 신혼특공과 1기 신도시, 경매공부를 거치며 이야기의 농도가 짙어지는 동안 등뼈살은 농익어갔다. 망설임도 없이 털어넣은 소주가 고기의 겉을 감싸는 것이 마치 이렇게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지식을 꼭꼭 씹어 소화해 나가면 푹 고와낸 감자탕과 같은 감칠맛 나는 삶이 눈 앞에 기다리고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따금 느껴지는 떫은 감자탕 속 깻잎의 향처럼 씁쓸한 순간도 간간히 찾아오는 데에 대한 각오도 해야겠지.
천정부지로 치솟던 집값을 시작으로 사회 이곳저곳의 부조리와 갈등에 깊은 우려를 표하던 선배. 그럼에도 그가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선한 마음, 그리고 노련한 용기였던 것만 같다 – 가족의 행복도, 오랜 친구들의 안위와 그들의 꿈도, 사회 선후배들에 대한 아낌없는 응원도, 늘 배움을 선사하는 새로운 경험도, 그리고 감자탕의 끝에 볶음밥도. 볶음밥을 마무리로 하여 최후의 소주 한 병을 비워내는 것이 이 술상을 아름답게 매듭짓는 것이라는 상호간의 암묵적 동의.
- 사장님 여기 볶음밥… 형님 한 개.. 두 개..?
- (고민 중)
- 하나 주세요. 어차피 형 2차 갈건데…
- 그려 먹다가 소주 너무 많으면 남겨
바스락거리는 철판 위 볶음밥을 보며 잠시 멍을 때리다가 제법 뎁혀진 볶음밥을 한 숟갈 퍼냈다. 이 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무수히 많지만 어떤 면에서 소주의 최고의 안주는 돌고 돌아 밥이 아닐까. 소주의 당과 쌀밥의 당이 명징하게 직조해낸, 이것이야말로 여당과 야당의 아름다운 협치. 수분이 이탈해 짭쪼름해진 감자탕의 양념과 고소한 김은 풍미를 한껏 끌어올렸다. 밥 앞에서 말문을 잃은 선배와 나는 그렇게 철판 위 안착한 누룽지까지 싹싹 비워내며 부담스럽다던 마지막 소주 한 병까지 깔끔하게 비워냈다. 숟가락을 놓기 전 베어 물었던 깍두기의 알싸함은 그야말로 화룡점정.
‘엄카’, ‘법카’만큼 귀중한 ‘형카’가 1차를 빛내주고 식당을 나섰다. 감자탕 고기에 우거지, 감자, 볶음밥까지 더해지니 배가 터질 듯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 조금 걸으며 소화시킬 겸 여의도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술기운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찬 바람으로 충분히 식혀내며.
- 날이 이제 진짜 춥네요
- 겨울에는 어쩔려고 그러냐
- 마음도 춥고
- 지랄… ㅋㅋ
지랄스러운 날씨와 청승의 끝에 2차는 먹태와 맥주로.
(이후 계속)
이 이야기의 전문을 신간 <병헤는밤>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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