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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안 Jun 17. 2021

김밥 천 줄

김밥을 좋아한다.

한 달에 서너 번은 직접 만들거나 사서라도 꼭 먹는다.

요즘은 덜 해 졌지만 젊은 시절엔 중독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20대 아가씨가 가방에 화장품 대신 김밥을 넣고 다니며 먹었으니,

남들이 보면 참으로 이상했을 것이다.



여행 갈 때도 그 지역  김밥집을 우선으로 검색해 본다.

대부분  요리 위주의  유명  음식점을 찾기 마련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인들은  나의  이런  선택을 마땅찮아한다.                          

김밥이라는 게 그다지 고급스럽다거나 특정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들의 생각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김밥 먹기를 포기할 수 없다.

2년 전에 제주도로 일주일간 여행을 가게 는데 가장 먼저 김밥집 리스트를 만들었다.

도착 날부터  하루  두 집씩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다행히 남편과만 떠났기에 별다른 반대는 없었다.  나의 유난한 김밥 사랑을 이해해 주는 건 남편밖에 없다.

솔직히 남편의 묵인이 완전한 이해인지 포기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래도 어느 여행지를 가든 김밥을 찾는 아내에게 딱히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니

내심 고마울 뿐이다.



김밥을 향한 내 사랑의 시작은 한참을 거슬러 오른다.

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김밥을 싸서 소풍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두 살 위  언니의 소풍날, 엄마가 싸주는 김밥을 곁에  쭈그려 앉아  얻어먹은 것이  내 유년  마지막 기억이다.

그 후로 나에게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우리 집에서 김밥은  자취를 감추었다.

타지에서 장사를 하게 된  엄마의 부재가 원인이었다.

도시락도 언니들이 챙겨주는 처지여서 김밥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다.

솔직히 점심 도시락 정도는 참아줄 수 있었지만 문제는 소풍날이었다.

소풍의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김밥이 아니겠는가.

소풍날 김밥을 먹는 건  아주  당연한 하나의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점심 메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두툼한 분홍 소시지에 노란 단무지와 계란, 야들한 초록 시금치랑  화사한 꽃 빛깔의 당근이 들어간 김밥을 먹는다는 것. 그것은 소풍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어린 나에게는  그랬다.

김밥을 먹기 위해 소풍을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김밥이 든 은박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 소풍길에 오르는 경험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일 수 있었건만. 나에겐  그렇지 못했다.

그날만큼은  친구들처럼 김밥을 먹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램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이루지 못한 소망이 되었다.



기억이 내게 결핍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김밥 애착증이 생긴 건 사실이다.

사 먹기 싫어지면 집에 잔뜩 채워놓은 김밥 재료로 뚝딱 만들어 먹는다.

이상한 건 김밥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고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용기 같은 게 솟았다

마치 응원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계속,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김밥이 좋다.



소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른되면 김밥 천 줄 먹을 거야.

꼭 그럴 거야.


나이가 들었으니  그동안  천 줄 이상 먹지 않았나 싶은데  오늘도 나는 김밥을 싼다.

아, 소풍이라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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