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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안 Jul 31. 2021

나는 오른쪽으로 구른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체육시간에  앞구르기를 배우게 되었다.

선생님의 간단한 시범이 끝나고 한 명씩 구르기를 했다.

아주 쉬워 보였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배운 대로 자세 잡고 가볍게 빙그르르 굴렀다.

그런데 일어나 보니 몸의 반이 오른쪽으로 나가서  맨땅에 떨어져 있었다.

친구들과 달라서 창피했다.

분명히  똑바로  중심 잡고  시작했는데  한 바퀴  돌고 보면  어느새  오른쪽으로  굴러

몸이 계속 맨땅에 떨어지는 것이다.

보고 있던  선생님과 친구들은 내 맘도 모르고  계속 킥킥대며 웃었다.

몇 번을 거듭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자 결국  맘이 상했다.


다음 주에 시험을 보겠다는 선생님 말씀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를 어쩐다지.

도대체 왜 오른쪽으로 굴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매트 위를 물 찬 제비처럼 날쌔게 도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연습은 않고 한쪽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얼마 후에 선생님께  슬쩍  다가가  이렇게 여쭈었다.


선생님,

한 바퀴  구르는 것이  중요한가요?

아니면  매트에서  안 떨어지는 것이

중요한가요?


선생님은  한 바퀴  구르기 할 수 있으면 상관없지만  매트에서 안 떨어지는 것도

점수에  들어간다고 했다.  


일주일 후,  그날이 왔다.

친구들의  번호가 호명되면서  한 명씩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재빠르게  매트를 움켜 잡고  약간 오른쪽으로  옮겨  놓았다.

친구들이 술렁였다.

자세를 곧추 잡고는  냅다 빙그르르 굴렀다.

일어나 보니 역시나 몸은 오른쪽으로 가 있었다.

하지만, 매트를 옮긴 덕에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한 바퀴를 돌고 일어났을 때,

선생님도  친구들도  웃지 않았다.

다들 순간 멈칫했다고 할까.

그러다 누군가 와~ 하며 박수치자  다들 따라서 박수를 쳤다.

선생님도 호탕하게 웃어 버리셨다.

무사히 구르기 테스트에서 A를 받았다.


그날의 경험은 어린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안 되는 것에  매달려 불필요한 감정과 에너지를 소진하지 말고

나만의 방식과 자세를 찾아가는 것을 택하도록 말이다.


책방을 하면서도 이 교훈은 당연히 적용되었다.

나는 젊은 책방지기들처럼  온라인에서 원활히 소통하거나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를 줄 모른다.

오래 책방을 하신 선배님들의  노련하고  밀도 있는  노하우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정확히 방향성을 맞추는 것은 자신 있다.

그렇게  지난 1년을 달려왔다.

남들과 똑같은 방향에  매트가 놓여있지 않아도 상관없다.

얼마든지 나만의  관점과 온도로  구를 수 있다는 것을 확인받은 시간이었기에.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제는  나이 들수록 더 분명히  알아간다.

오른쪽으로 굴러도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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