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기떨기 Jul 04. 2024

61. 일기떨기: 선란의 밀린일기

“작가님 지금은 어느 나라예요?”




 24년 상반기는 일본과 대만, 말레이시아, 독일, 그리스, 튀르키예. 캐나다에 있었다. 아주 잠깐씩 한국에 있었고. 사주에 역마살이 가득가득 끼어 있다던데, 친구가 “역마살이 아니고 역마 그 자체다”라고 했다. 맞다, 그 친구가 지원이다. 비슷한 시기에 늘 해외에 있는 동료는 초엽작가님이다. 우리는 거의 매일 메신저로 소통을 하면서도 가끔씩 서로의 거처를 잊고 “작가님 지금은 어느 나라예요?”하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서로 그런 말을 건네는 것을 웃겨하는데, 정말 웃긴 건 그때마다 한국일 때가 없다는 거다. 초엽작가님과 나는 각자 다른 나라에 있다가 가끔 뭉친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오롯이 소설에만 전념하고 싶을 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손을 잡고 따뜻한 나라로 떠난다. 뭐,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그간 많이 했으니 일기에 더 자세히 쓸 필요는 없겠다.

 지난 상반기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떠다닌다”겠다. 물리적으로 지구 한 바퀴를 돌았으니, 실제로 몸이 떠다니기도 했고 동시에 마음도 그랬다. 마음이 늘 떠 있어서 도무지 일에 집중하지 못했고, 일을 제대로 못 하니 화가 났다가도 일에 좌지우지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나를 달래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그래서 하반기가 시작되는 7월, 가라앉았냐 하면 아니다. 그저 아주 천천히 떨어지고 있을 뿐이다. 훅 떨어진 건 아니어서 감사하다 느끼며. 

 상반기에 최고로 많이 들은 노래를 몇 곡 뽑자면 에스파의 수퍼노바와 끝자락에 나왔지만 내내 들은 영지의 스몰걸이겠다. 상반기 최고의 영화도 뽑고 싶은데 절반을 해외에 나가 있었으니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비행기에서도 영화를 잘 보는 편이 아니고, 해외에 있는 동안에는 밖을 나돌아 다니느라 진득하게 영화를 못 봤다. 그래도 상반기 최고의 극을 뽑자면 당연 <천 개의 파랑> 연극과 뮤지컬이겠고, 최고의 순간도 연극과 뮤지컬을 본 순간이겠다. 

 또 상반기 최고의 음식은 그리스에서 먹은 그릭요거트와 독일 빵들. 그거만 평생 먹고살 수 있는데. 아, 상반기 최고의 짜릿한 순간은 이태원에서 술 마신 민정피디님의 대리기사를 해줬을 때였다. 그날 지구 위 블랙박스 소소한 회식이 있었고, 생각보다 술을 많이 마신 피디님을 대신해 피디님의 아우디를 끌고 일산까지 왔다. 타인의 차를, 그것도 세단을 모는 건 처음이어서 난 무서워 죽겠는데 취한 피디님은 천하태평했고, 그날 처음 만난 대니구님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겠네요...”하고 나를 보냈다. 하지만 베스트 드라이버의 자질이 있는 나는 마지막 주차까지 완벽하게 했더랬다. 음, 최고로 슬픈 순간은 너무 많았다. 매 순간이 어쩜 그렇게 최고로 슬펐을까.

 그래도 2024년 상반기는 근 10년 동안 가장 다사다난했던 상반기였다고 선정해도 좋겠다. 떠다닌 만큼 보았고, 본 만큼 자랐고, 자란 만큼 커졌을 테니까. 『아무튼 디지몬』을 출간하고 이 책이 내 페이지의 한 페이지를 넘긴 느낌이라던 이다혜 기자님의 말처럼, 올해 상반기가 딱 그랬다. 언젠가 이 시간의 기억과 감정을, 마음을, 상처를, 그리움과 사랑을 조금씩 나눠 글을 써야지.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2. 선란

『무너진 다리』 『어떤 물질의 사랑』『천 개의 파랑』『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나인』『노랜드』『아무튼 디지몬』을 썼습니다.

  환경파괴, 동물멸종,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SF소설을 씁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매거진의 이전글 60. 일기떨기: 지원의 밀린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