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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Jul 17. 2023

43. 일기떨기



6월 중순부터 7월로 넘어오는 한달간 일기를 세 번 정도 썼다. 30일 중 3일만 썼다는 게 아니라, 한 열흘 씩 일기를 밀려 썼다는 소리다. 밤새 글을 쓰고 외주 마감을 하고 작사 과제를 하다 보면 눈 깜짝할 새에 새벽이 깊어져서 일기 쓰는 것도 잊고 쓰러져 자버린다.

문득 일기가 너무 많이 밀렸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잡고 벽돌 일기장을 펼치면 아득해진다. 예전에는 아무리 밀려도 3일을 넘긴 적이 없는데, 지난 10일 치의 나는 정말로 존재했었나 의심이 들만큼 아무런 기억이 없다. 휴대폰 사진첩이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거슬러 올라가 기억의 조각을 맞출 수도 있지만 부러 그러지 않고. 그냥 아무 말로 빈칸을 채운다. 

그렇게 쓴 세 번의, 30일 치의 일기는 대체로 새로 시작한 에세이 마감에 대한 응원들이다. 2021년 가을 아무튼 아이돌 출간을 끝으로 1년 반 동안 소설만 썼다. 얼결에 장편소설 두 편이 생겼고 그것으로 무언가를 도모하는 시기였다. 도전 같은 날들이 지나가고, 다시 에세이를 써야 한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밀린일기에는 이렇게 썼다. “요가, 에세이. 지금 다시 시작한 것들이 내게 몹시 익숙한 것들이라는 게 좋다. 멀어졌다가도 반드시 내게 돌아오고야 말 일들.”

그 일기를 쓰고 바로 윗칸에 있는 어제의 오늘 일기를 보는데 이렇게 써있었다.


[오늘은 에고서치를 하다가 <아무튼, 아이돌>에 대한 새 후기을 보았다. ”아이돌의 빛남 이상으로 개별의 아이돌을 좋아하던 시기의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일기를 오래 쓰셨다는데 진솔함과 자기직시가 묻어나는 구절들이 많다. 보아 파트가 진짜 좋네.“라고.]


보아 언니에 대한 사랑과 그 힘으로 나의 오늘을 재해석한 그 파트는 나도 아끼는 꼭지였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 틀림없이 지금의 달짝지근한 만족이 깨지고 부서지고 가루가 되어버리는 순간이 올 테지만, 깨진 마음을 이어붙이고 부서져 가루가 된 마음을 뭉쳐서 새롭게 빚기를 반복해야만 ‘진짜 노래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아픈 깨달음을 고백한 이야기. 이걸 삼십 대의 나에게 빗대니 신기하게도 정확히 그런 일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매번 오늘의 글쓰기가 가장 어렵고, 가장 마음에 드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지금 나는 ‘진짜 글을 쓰는 상태’라고 봐도 되겠지?

내 일기를 읽을 수 있어 기쁜 날들은 조금도 멀어지지 않고, 늘 내 곁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스스로 미는 별명이 있다.

해내는 해은.

기어이 해내는 혜은이 되자.

일기를 덮고 새 글을 쓰기 시작한다.




대화 주제     

■ 여러분이 상상한 미래와 지금의 여러분은 어떻게 닮아 있고, 다른가요?

■ 요즘 하고 있는 고민이 있나요? 고민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어렵다면, 고민이 있다. 라고만 말해줘도 좋아요.

■ 일기에 별명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뜬금없지만 학창시절 여러분의 별명은 뭐였나요? 각자의 별명 히스토리를 풀어봅시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1. 혜은

『아무튼, 아이돌』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을 썼습니다.

  망원동 '작업책방 씀'에서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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