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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Mar 11. 2024

53. 일기떨기

내 말이, 내 마음이 그들에게 올곧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뿐.




 나의 첫 해외 도서전 대만. 에이전트를 통해 대만 국제 도서전 강연 제안이 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만에 여행이 아니라 일로 간다는 현실감이 없었다. 해외는 원래 자주 가는 편이고, 대만도 여행을 다녀왔던 나라였던지라 새로운 나라에 간다는 설렘도 크지 않던 몇 달. 문득 2월에 대만에 간다는 사실도 잊고 다른 일정들을 잡다가 캘린더를 펼칠 때마다 쓰여 있는 ‘대만 도서전’에 흠칫흠칫 놀란다. 일로 참여하는 해외 도서전이라니. 이게 뭐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새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새로워서 감각이 마비되었던 것 같다. 대만에 체류하는 동안 내가 소화해야 할 각종 인터뷰와 촬영, 그리고 마지막 날을 장식하는 도서전 강연. 머물 숙소와 비행기 표까지 세세하게 적힌 파일이 넘어왔을 때에야 아주 조금, 내가 해외 독자들을 만나는 거구나, 하고 느꼈다. 

 대만에 도착한 첫날에는 <천 개의 파랑>을 출간한 시보 출판사 편집자님과 번역가님의 안내를 받아 정말 끝내주게 시원한 마사지를 받고, 호텔에서 쉬었다. 그리고 때를 맞춰 대만에 놀러 온 <이끼숲>편집자님과 같이 일했던 동료를 저녁에 만났다. 사람 많은 야시장을 눈으로 즐기고, 스타벅스에 도란도란 앉아 나눈 이야기가 지독히 한국의 일 이야기여서 그곳에 있을 때도 내가 해외 도서전을 위해 이곳에 왔다는 감각이 없었다. 머무는 동안 늘 똑같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씻고, 조식을 먹고 일찍 카페에 가 앉았다. 나는 워낙 아침을 좋아하고, 각 도시의 아침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때만큼은 여행자의 기분으로 걸었던 것 같다. 오후에 있을 일정 전에 내가 끝내야 할 원고를 끝내고, 오후에는 한국어가 능통한 번역가님 덕분에 언어의 장벽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덜컥, ‘와, 내가 진짜 해외 독자들 앞에 있구나! 한국이 아니구나! 내 첫 해외 일정이구나!’라고 느꼈던 것이 어이없게도 도서전 강연이 시작된 지 10분이나 흐른 뒤였다. 뻥 뚫린 강연장 주변에서 들여오는 낯선 소리들, 어쩐지 낯선 독자들. 내 말이 끝나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통역이 된 뒤에야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나 역시 그들의 표정을 해독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노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긴장을 달래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내 말이, 내 마음이 그들에게 올곧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뿐.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다. 그러는 동안 내 목소리는 점점 커졌는데, 어쩐지 크게 말하면 언어를 뚫고 무언가가 닿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닿았을까? 아마 닿았을 거다. 그들에게 닿았음이 나에게도 느껴졌으니까.

 그 마음이 기뻐서 돌아오는 길에는 지인들 선물을 너무 많이 샀다. 마치 출장 갔다가 돌아 온 부모님이 그러듯이, 통닭을 사가는 마음처럼. 나 혼자 놀러 간 여행은 뭔가 늘 미안했는데 출장은 당당하고 뿌듯했달까. 8kg으로 텅텅 비어 있던 캐리어를 올 때 20kg 넘게 채웠다. 덕분에 추가 요금이 비행기 값 수준이었으나, 다음에는 더 큰 캐리어를, 아니, 국제 택배로 선물을 보내놔야겠다고 생각하며 나의 첫 번째 해외 일정이 그렇게 지나갔다.




대화 주제 


 출장의 마음

 해외 작가의 작품 혹은 해외 독자를 마주했을 때

 대만에 대해. 대만 인터뷰에서 흥미로웠던 것.

(1) 대만 퀴어 퍼레이드가 우리와 같은 해에 시작 되었는데, 한국은 아직 퀴어에 대해 닫혀 있다는 것을 어찌 생각하는지.

(2) 동북아시아 전반에 깔린 청년들의 무기력함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2. 선란

『무너진 다리』 『어떤 물질의 사랑』『천 개의 파랑』『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나인』『노랜드』를 썼습니다.

  환경파괴, 동물멸종,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SF소설을 씁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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