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조금 전만 해도 날카롭게 쏘아붙이던 그녀의 눈매는 휑하게 변하고, 입은 다물지도 벌어지지도 않은 채 온몸은 정지해 있었다. 자주 하는 검사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신참 간호사에게 담당 간호사를 불러서 같이 준비하라고 했더니, 선임 간호사가 내게로 와서 검사 기구를 던지듯 하며 다른 검사 스케줄을 올리지 않았다고 타박하듯 말하자, 분노의 불구덩이를 토하듯 고함을 질렀다.
"실수했다면 다음에 잘하겠다고 하면 되지 왜 적반하장 격의 핑계를 대는 거요......"
몸도 떨리고 목소리도 떨려 초보 분노자의 티가 났다. 정말 오랜만에 오롯이 감정만으로 나를 채웠지만, 늘 이런 순간을 상상했을 때 기대했던 격정과 카타르시스, 그리고 반작용의 죄책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한 밤중 갑자기 잠을 깼다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다시 잠드는 짧은 시간대의 느낌과 유사했다. 몸이 떨릴수록 마음은 호수처럼 찬찬히 가라 앉았다.
그 상황에서 나의 일반적인 행동 패턴은 살짝 웃으며,
"아, 그래요......"
라고 한 뒤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질책하지 않는 것은 그 다음에 올 수 있는 어색함을 예방할 수 있고, 마음을 쓰는 귀찮음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이기적인 내 DNA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지, '나'라고 불리는 사람이 선량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번의 화냄도 계속 이런 실수와 무성의를 방치하면 육신이 더 피곤해질 것을 우려한 유전자의 조치일 뿐이었다. 편한 감각을 추구하는 욕심이 분노에 불을 붙이고 기름도 끼얹었지만, 그 분노를 상대하는 사람에게 '행동변화' 보다는 새로운 증오를 심어줄 뿐이라는 사실도 그 장소를 벗어나서야 알게 되었다.
언젠가 그 증오는 또 다른 사람에게 돌고 돌아 결국엔 내 오감들을 불쾌하게 만들 것이다.
크로모좀은 똑똑한 척 하지만 정말 어리석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바깥 세상인데, 좋은 것, 나쁜 것,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 즐거운 것, 괴로운 것,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들의 껍질 속에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 걸까?
차라리 미세하게 갈라진 껍질 틈으로 아주 가끔 비치는 바깥의 미광을 아예 몰랐었다면, 이 어둠의 알 속이 고민 없는 둥지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둥지와 바깥을 음 전자처럼 편재하지도 않고, 고정되고 무거운 양성자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