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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평화 Sep 07. 2016

사람이 사람을 사람하다. 열엿새

저녁을 사람하다.

     "형님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가스레인지의 불을 서서히 줄이면서 뜸 들이다가, 이제 막 냄비 뚜껑을 열고 날계란 하나를 깨서 넣고 노른자와 흰자가 뭉치지 않게 오른손 젓가락으로 휘휘 젓는 중에, 모차르트의 미뉴에트를 70% 음량으로 설정해놓은 스마트폰에서 평범한 전화벨이 울렸다. 오른손으로는 여전히 라면을 저으면서 왼손 검지로 잠금해제와 한 뼘 통화를 눌렀더니 근처에 사는 직장 후배가 대뜸 저녁 먹으러 가잔다.

  음식물 압축기에서 올라오는 따끈 짭조름한 냄새가 집안을 매콤하게 물들일 즈음에, 집에 들어온 직후 빨래통에 던진 오늘 신은 양말과 어제부터 입은 티셔츠, 주초부터 입던 바지를 입고 문을 나섰다.


  아파트 입구를 나섰을 때 이제 막 해가 지려하는지 구름은 라면 국물이라도 쏟은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래도 바람에 실려온 게 라면 냄새나 이 거리에 세 군데나 있는 치킨집의 기름 냄새가 아니라, 막 드라이를 마치고 세탁소 옷걸이에 빽빽이 걸려있는 정장에서 나오는 세제 냄새 비슷한 것이라는데 안도하며 빠르게 걸었다.


 

     "거기는 지금 가면 30분 이상 기다릴지도 몰라요"

 후배의 흰색 독일차 조수석에서 안전벨트를 매려고 할 때 후배가 말했다. 얼마 전 전국방송에 소개된 춘천의 맛집이라고 한다.

     "주말에 만났나 보네.."

깨끗하게 정돈된 차내와 은근한 방향제 냄새로 짐작해서 물었다.

    "......"

   "그 집은 식당인데 재료가 떨어지면 천하없어도 그냥 문 닫아버린데요.."

   "원래 크게 돈 벌 생각은 없는 덴가 보네... 그런데가 맛있겠지.."

2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스피커에서는 지난겨울의 인기가요가 나오고 있었다.


     "이거는 고춧가루를 좋은 거 사용하나 봅니다."

  마흔 살이 되면서 코스트코의 재료와 인터넷 레시피로 주말마다 요리하는 것에 정신을 쏟던 후배가 말했다. 눈을 감고 한 숟갈 음미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비싼 한우집의 제비추리가 마트에서 산 닭갈비보다 머리로는 맛있다는 것을 알아도 혀로는 구분하지 못하는 미맹이지만 후배의 표현은 늘 나의 미각에 설득력이 있었다.

    "아직 연락이 없네요."

 불러오는 배를 가늠하면서 둘이서 밥을 한 그릇 시킬지 두 그릇 시킬지 고민하는 중 조용히 토하듯 말한다.

 지난겨울부터 만났지만 아직 손도 못 잡은 그녀가 주말에 차로 데이트한 이후 이틀 동안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뱃속에 꽉 차서 달라붙어 있던 후배의 불안과 연민이 음식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입 밖으로 밀려 나왔다. 벌써 비운 그릇에도 자리를 차지한 아저씨 둘에게 보내는 주인의 눈치를 애써 무시하기 힘들어 일어났을 때에도 대기줄은 아직 길어 보였다. 좋은 음식도 배 고픈 것을 한 시간 이상 참는데 좋은 사람은 40년을 기다려도 된다는 상투적인 조언을 하며 차에 올랐다.

     날은 벌써 어두워졌지만 아까의 구름은 다 흩어지고 보이는 은은한 달에서 뜨끈뜨끈한 밥 아지랑이가 나풀거리는 것 같다. 차창을 확 열고 대한민국과 침대축구 나라의 경기를 스마트폰으로 들으면서 둘이서 한참을 흥분하다 보니 벌써 집에 도착했다.



    '띠링..'

   카톡이 왔다. 10년 주말부부인 아내가 보냈다.  

   '서방..♡♡

     아들 학원비 10만 원.. XX은행 381-XX---- '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즐겁고 그런 것은 다 그들과 같이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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