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 사람
"딸 신세를 질수는 없어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말에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이다.
"미국에서 잘 살다가 아빠가 이리 된걸 알고 정신병원에 있다가 나온지 얼마 안되었는데...'' 그의 앞엔 우뇌에 8cm짜리 혹이 있는 MRI사진과 방광이 온통 하얗게 변한 CT사진이 더블 모니터에서 무심히 빛나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한 시간전 방광 내시경은 걺붉고 부스러진 조직들에 가로막혀 그 안을 구경조차 못했지만 그는 그 '수술'때문에 오줌이 콸콸 나온다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방광에 있던 것이 머리로 간건 아닌것 같아요. 넘어져서 피가 좀 고인 것 같은데요 ...''
판독 결과를 여러번 읽어주어도 그는 똑같은 대답만 반복한다.
"수술은 안 받을래요."
긴 설명에 피오줌을 지린 하의만 만지작 거리다, 돌아서며 그가 말했다.
"전화좀 받아주실래요.."
밀려 있던 외래환자를 열명쯤 보았을때 급하게 한손으로 전화기를 던지듯 들어오며 그가 말했다.
"편하게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수영'이었던가, 지난번 입원 했을때 병상 옆에서 스치듯 본 적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짧은 대화끝에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미안합니다.."
반백의 짧은 머리칼을 휙 돌리며 나가면서 그가 말했다. 눈물은 한 방울만 흘렸다.
"으음~~,훠~~"
유치원 다니는 아들이 불꺼진 방, 옆에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자신이 고통속에 죽는것보다도 자식에게 부담주는 것을 더 두려워 했던 그도 아버지였다.
내일은 남도에 계시는 부친의 생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