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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래 Dec 05. 2020

결혼 승낙 받던 날

사랑의 출처는 따로있다.

연애의 종지부를 찍고 결혼을 승낙받기 위해 처가집으로 향할 때 내 머릿속엔 온통 '종교' 로 가득차 있었다. 처가는 독실한 크리스찬 집안이다. 아내는 뱃속에서부터 종교가 정해진 이른바 '모태신앙' 이었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포천에서 제법 큰편에 속하는 교회의 장로, 권사였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로 인해 크리스찬 집안이 얼마나 같은 종교의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길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종교는 삶의 이유이자 존재의 의미이지만, 나에겐 무사히 통과해야할 관문이었고, 어떻게든 빠져나올 궁리를 하게하는 불가피한 미션이었다. 


결혼 승낙을 받으러가던 2013년 2월, 설을 맞은 포천은 온통 얼음 나라였다. 체감온도 영하20도를 넘나드는 추위에 개들도 집안에 웅크리고 앉아 나와 짖지도 않았다. 거의 주말마다 아내를 태워다 주러 다녀오던 포천이지만 그날은 길이 유독 춥고 낯설었다. 결혼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에 새삼 긴장감이 돌았다. 


처가(당시는 여자친구 집)에 도착하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거실 전기장판 위에 이불을 덮고 앉았다. 거실 벽면 한가운데 걸려 있는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황토로 마감한 벽면에 짙은 갈색의 십자가는 마치 집을 지을때부터 흙으로 함께 빚어 깎아 벽에 조각을 낸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불을 덮으니 자연스레 양반다리가 되었다. 어머님께서 따뜻한 인삼 생강차를 내어 주셨다. 잠시 머뭇거렸다. 여느때와 달리 드릴 말씀이 있어 왔노라고 조심스레 말씀을 꺼냈다. 장인어른께서 '그렇잖아도 얘길 들었다. 뭐가 그렇게 급해서 서두르냐' 며 말을 받으셨다. 전기장판이 따뜻했는데, 입은 얼은듯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머뭇거리며 말을 떼었다. 


"정화와 만남을 가져온지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께서 이렇게 고운 딸 애써 길러주셔서 너무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만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간 결혼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도 항상 쫓기듯 돈을 더 모아서 결혼해야지 하다보니 시간이 이만큼 흘렀습니다. 그런데 올초에 어머니께서 정화에게 보내신 문자를 보고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준비도 중요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것 부터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허락해주신다면 올해 안으로 정화와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계시다 이내 말씀하셨다. 


"며칠전에 정화로부터 구체적으로 결혼 계획을 갖겠다는 얘길 들었다. 너희 둘이 좋다면야 결혼하는거야 뭐 문제될게 있겠냐마는 우리도 준비가 필요하여 실은 내년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 그런데 한가지 걱정되는게 있다." 


'걱정' 이라는 말씀에 올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분명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것이다. 교회를 가야하는 것이 조건이라고 하시면 어쩌지. 성격상 거짓으로 간다고하고 안갈 순 없는데... 교회를 가는게 어려울것 같다고 대답하면 승낙해주지 않으시려나. 정말 매주 교회를 가야하는 건가. 짧은 시간에 머릿속이 빙빙 돌았다. 


"정화는 3년동안 기도를 해서 어렵게 얻은 외동 딸이다. 특히 나는 처음에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정화 엄마만 신앙생활을 했는데, 내가 처음에 교회를 가는것에 대해 무척 반대를 했다. 그때 아이 엄마가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제와 돌아보니 내 딸이 똑같이 마음고생을 할까봐 나는 그게 걱정이다." 


사랑하는 딸을 시집보내시는 마당에 어쩌면 이렇게 소박하실 수 있을까 감탄이 일었다. 교회를 가라는 말씀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그 겸허하신 마음에 저절로 일어나 넙죽 절이라도 드릴뻔했다. 다행스러운 마음이 10이라면, 감동은 100이었다. 평생 금이야 옥이야 길러온 외동딸인데.. 빈털터리 놈에게 시집보내면서 '오직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배려해주어라'고 하실 수 있을까. 아버님의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어느정도의 깊이일까. 평소 아버님의 적은 말수를 잘 알기에, 한마디한마디에 깊은 뜻이 스몄다. '내 딸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내 딸을 사랑해 주어라', '내 딸을 예뻐해 주어라', '내 딸을 웃게 해주어라', 그리고 '신앙을 가져라' .... 천마디의 말보다 큰 의미가 담겨 돌아왔다. '교회에 가야만 한다'는 명령이나 조건보다 더 무겁게 내 몸을 잡아 끌었다. 저절로 고개가 조아려졌다. 아내는 옆에서 지그시 아래쪽을 보고 있었다. 


신앙 외에도 내 입장에선 상당히 부담스러운 말씀을 한가지 더 드려야했다. 다름아닌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일이었다. 아내와는 진즉에 상의가 되었지만 딸 가진 부모의 입장에선 여간 걱정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한번 머뭇거리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에 대해 양해 아닌 양해 말씀을 드렸는데, 이번엔 어머님께서 대답해 주셨다. 교회 합창단에서 소프라노를 맡은 어머님의 목소리는 바이올린처럼 선명하였고, 가만가만한 말투에 차분한 호소력이 느껴졌다. 


"우리 정화가 혼자 자라서 버릇이 없다. 욱하는 성격이 있어 뿔뚝뿔뚝 성질도 잘 낸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하는데, 버릇없이 굴까 걱정이 앞선다. 그럴 때 마다 광우가 옆에서 잘좀 알려주고 해라. 그리고 정화 너는 엄마말을 명심해라. 남편이 돈을 벌어다주면 흥청망청 쓰지말고 꼭 얼마만큼을 모아서 저축해야 한다. 100만원을 가져다주면 50만원을 저축하고, 200만원을 벌어다주면 100만원을 저축해라. 그리고 열심히 기도해라. 그러면 저절로 행복이 온다."  


귀를 의심할만한 어머님의 말씀에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렸다. 이런 분들의 슬하에서 내 아내가 자라왔구나. 돋아나는 풀 한포기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 더 큰 욕심에 신세를 탓하지 않는 아내의 깊은 심성은 다름아닌 내 앞에 계신 두분이 물려주시고 길러주신것이었다. 이쯤되니 감사하는 마음보다 송구스런 마음이 앞섰다. 도무지 세속적이지 않은 이 평온한 가정에서 아내가 귀히 자라왔음이 새삼스럽고 그러한 여인을 이제 내가 앗아가는것 같아 더 면구스러웠다.   


주변에서 결혼생활이 즐겁냐, 결혼하니 정말 좋냐, 힘든부분은 없냐, 결혼을 후회하지는 않냐 많이들 묻는다. 결혼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맘을 갖고 사는지 궁금해서 묻고, 미혼인 사람은 결혼을 하면 어떨까 궁금해서 묻는다. 오늘만 해도 회사에서 선배가 '결혼을 단 한 순간이라도 후회한적 있냐' 물었다. '당연히 없다' 고 대답했다. 나의 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너 참 대단하다' 말한다. 그런데 정작 대단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내와 나의 장모님, 장인어른이다. 정말 그렇다. 단 한순간도 내가 결혼을 후회한적 없도록 만들어준다. 내가 어떻게든 평생을 이 한여자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밖에 없게 한다. 내몸이 무서지더라도 내 한 여자 행복하게 해줘야겠다 생각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것은 단연코 내가 결정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면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본다. 이 소중한 여자를 내가 얼른 더 행복하게 해줘야 되는데... 미안한 마음이 첫째로 든다. 신앙도 있고 더 풍족한 집안으로 시집가서 충분히 훨씬 더 행복하게 살수 있는 사람인데 나를 선택해 주었구나.. 하는 고마운 마음이 둘째로 든다. 그리고 결혼 승낙을 받던날 눈가에 주름이 쓸쓸하였던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얼굴과 말씀이 생각나 감사한 마음이 셋째로 든다. 미안함과 감사하는 마음이 사랑의 다른 마음일까. 아니면 미안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이 곱해져서 사랑하는 마음이 되는것일까. 깊은 곳에서 저며오는 이 마음은 삶을 살면서 어떠한 힘든일도 견뎌내게 한다. 


결혼을 승낙받던날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말씀은 그릇에 담긴 물처럼 항상 다른 모양으로 출렁이며 맘속에 파장이 된다. 나로하여금 평생을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살게 하고 아내를 더 소중히 바라보게 한다.

그날 두 어른께서는 이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이미 아셨던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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