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가 다 되어서, 28개월 아이는 그림책을 들고와 내 옆에 누우며 읽어달라 청했다.
밤이 늦은 탓에 재워야 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일 출근을 하려면 나도 자야된다는 이기심으로 ‘내일 해가 뜨면 읽자’ 며 아이를 달래 3번이나 돌려 보냈다.
아이는 평소 방을 나설 때 손을 뻗어 겨우 닿는 손잡이를 잡고 뒷걸음질로 쩔쩔매며 곱게 닫고 나가는데, 그날따라 문을 닫고 가라는 말에도, 오히려 활짝 열어놓고 ‘안닫아요!~~~~~’ 라고 있는 힘껏 여러번 소리치고 갔다.
다음날 아내는 그것이 삐친것이라 했다. 아이는 계속 속이 상했는지 손으로 벽을 신경질적으로 툭툭 치며 잠이 들었다. 28개월 짜리가 삐쳤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것을 알아차린 아빠의 우둔함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일하는 내내 미안한 마음이 하루를 덮었다.
예전 어느 기사에서 아이가 생에 처음으로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자, 아빠는 간밤에 차를 몰아 동해바다로 향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에게 몇 분을 아끼고자 돌려보낸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당장 해줄 수 있는것과 정말 해줄 수 없는 것이 있다. 다만, 그것이 누구의 관점이어야 하는가.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해줄 수 없다고 판단한 일들이 정말 아이의 관점에서도 그렇게 해석이 될 것인가. 하다못해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않을까.
좋은 부모는 진정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존재가 아닐까.
ps.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물으면, 지금까지는 아빠를 택했는데. 오늘부터 엄마를 택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