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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연장전이다. 이렇게 힘만 빼다가 마지막엔 지게 될까 봐 채널을 얼른 돌린다.
지기만 해 봐라. 최민석이 쓴 <꽈배기의 맛> 속 외야의 중학생처럼 주먹을 쥐고 “2군에서나 썩어버려라!”고 외칠 테니까.
몸을 사용한 어떤 운동에도 관심이 없는 내가 TV 화면으로 찾아보는 유일한 스포츠가 야구다. 그나마도 지고 있으면 바람난 애인처럼 꼴도 보기 싫어진다. 심지어 내가 응원하는 팀에게는 십여 년의 기나긴 암흑기가 있었으니. 그 사이 프로야구 중계는 한 편도 보지 않았다. 뼛속까지 야구인도 아닌 주제에 방구석 야구팬도 팬심이라고 참 오래 속 터졌더랬다.
그러다 불씨가 되살아난 몇 해 전. 꽈배기 속 여중생이 소리 질렀던 불혹의 야구 선수가 매 경기마다 어마어마한 해결사로 날릴 때였다. 팀 성적도 진짜 오랜만에 너무너무너무 좋았던 때라 경기 볼 맛이 났다. 그래, 저 선수 은퇴할 날이 멀지 않았는데. 그전에 멋진 피규어를 만들어 선물해야겠다!(의식의 흐름은 이렇게 뜬금이 없다.)
다모폐인 시절. 장두령을 구체관절인형으로 만들어 선물하려 했던 야심처럼 피규어 제작 계획이 번갯불에 콩 궈먹듯 세워졌다. 그렇게 계획은 급히 세우고 만들기는 지지부진하는 동안, 그 대상이었던 인물이 예상보다 빨리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은퇴 선물은 영영 완성하지도 건네주지도 못했다.
무늬만 야구팬도 어언 십수 년. 한참 그라운드를 날던 선수들이 해설가로, 예능으로, 혹은 알지 못하는 뒤안길로 조금씩 사라진다. 미친 듯이 채찍질해 달려온 지난날들이 더 이상 쌓이지 않고 어느 순간 연기처럼 흩어져버린다. 그 허탈함과 마주해야 하는 건 야구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