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한 지 6년 차, 드디어 내차를 하나 장만했다.
운전면허를 딴지는 오래됐지만, 돈 아낀다는 이유로 차 장만을 미뤄왔다. 집이랑 회사거리도 지하철로 30분 정도라 지금도 불편함은 없다만, 출퇴근 필요성을 떠나 이제는 차하나 정도는 장만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없으니 보이지 않는 것들, 불편한 것들이 삶에 하나하나씩 들어왔기 때문이다.
차를 끌고 다닌 지 3개월 정도 지나며 배운 것들이 좀 있다. 회사 관용차나 카셰어로 타고 다니던 것과는 또 다른 것들이 눈에 보였다. 스치면 인생 난이도 높아질 거 같은 외제차, 몇 원이라도 싼 곳을 찾게 되었던 높은 기름값, 구세주 한문철 아저씨 말고, 조금은 내 인생에 대입해 보면 좋을 내용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도로를 달리면서 느낀 것이다. 차를 자주 타다 보니 연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제 내 돈으로 주유도 하다 보니 기름값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물가 올라서 나는 점심도 도시락 먹는데 너는 뭐 어떻게 안 되니?) 그래서 기름값을 조금이나마 아껴보려고 엑셀을 밟는 것도 변화가 생겼다.
내 차 아닐 때는 앞차 따라 나도 밟아 달렸고, 앞차가 멈추면 브레이크 밟았다 땠다 하며 요란하게 갔다. 그렇게 가면 아마 남들 눈에 조금 더 운전을 잘하는 길이라 생각했던 거 같다. 연비를 생각한다면 운전은 그딴 식으로 하면 안 됐다. 이제는 엑셀도 RPM 높아지지 않게 지긋히, 주변 신호도 고려해 가며 적게 밟으려고 한다.
기름을 내가 가진 에너지에 비유해 본다면, 엑셀은 내가 가진 에너지를 잘 분배하는 것이다.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해서 급하게 밟아버리면 에너지는 더 빨리 소진되고, 자주 쉬어가며 채워줘야 한다. 모두가 비슷하게 에너지를 가지고 달리는 경주라면, 급하게 속도를 내는 사람이 빨리 지쳐버리게 된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 속도를 내는 일도 급하게 밟는 것이 아니라 지긋히 밟는 것이 중요한 거 같다. 같은 에너지라도 내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갈 수 있는 거리가 다르다. 순간적인 속도뿐만 아니라 내가 주어진 에너지와 비용을 생각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결국에는 길고 오래 달릴 수 있는 길인 거 같다
두 번째는 차사고를 겪으며 느낀 일이다.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주차 하다가 보조석 도어를 긁었다. 회사사람들이랑 점심회식을 외부로 가는 길이었다. 도착한 식사장소 주차장은 좁았고 지하까지 내려가도 마땅히 차를 세울 곳은 없었다. 그래서 계속 돌아다니다 더 이상 늦었지만 안될 거 같고 경차자리에 주차를 시도했다.
사실 평소 혼자였으면 절대 들어가지 않을 자리였다. 다만, 주변 동료들도 빨리 식사를 하러 가야 했고, 주변사람들도 한번 대보라는 얘기를 해봤고, 나도 주차 때문에 더 늦어지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시도해 봤다. 사실상 들어가긴 했었는데, 나오는 길목에서 옆차와의 간극이 좁아 벽을 긁으며 나오게 되었다.
결국 짧은 시간을 단축하려는 결정 때문에 적지 않은 수리비용을 지불했고, 수리기간 동안 차를 이용하지 못했다. 차가 사고 나는 상황들을 보더라도 항상 무리해서 하는 결정에서 많은 사고들이 뒤 따른다. 조금은 돌아가도 되고 천천히 가도 되는데 급하게 가려다가 차와 추돌하고 다치게 되는 상황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도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 무리해서 결정할 필요 없어라는 생각이 참 중요한 거 같다. 의사결정을 할 때 당장보이는 이득 때문에 반대급부로 발생하는 위험을 쉽게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무언가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 마음이 조급하게 조여올 때는 돌아가는 습관도 필요하다.
세 번째는 다른 차를 보며 배운 것이다. 차를 사기 전에는 남자들이 왜 이리 차 얘기를 많이 하나 했는데, 막상 사보니 주변에 차들이 눈에 잘 들어오긴 한다. '이 차는 얼마나 할까', '디자인 예쁘다', '와 페라리다~ 테슬라다', '나도 타보고 싶다' 하면서 나도 모르게 도로 위에 차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그런데 차를 보면서도 저 차를 타는 사람이 누군지, 어디에서 일하는지, 연봉이 얼마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단지 저 차가 가지는 사회적 위치, 주변사람들의 시선, 관심이 부러울 뿐이었다. 대신 반대로 저차를 가지면서도 칼치기를 다니는 운전자를 보면, 부러움은 커녕 욕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에서 부러움이라는 건 그 사람이 가진 소유물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에 따라 결정되는 거 같다. 지나가는 사람이 명품가방, 외제차, 고급물품 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쳐다보는 이유는 그 사람 자체가 부러워서 가 아니라, 그 소유물이 가진 가치를 더 부러워해서 쳐다보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말로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받고 싶다면,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우선인 거 같다. 도로 위에서는 양보하고, 급하게 끼어들었으면 사과하는 행동에서, 사람의 인격을 보고, 가진 것들에 대한 가치를 본다. 그러니 소유물에 집착하기 전에 소유물의 가치를 높였소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인 거 같다.
마지막은 의지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차를 사게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혼자 드라이브 가는 낭만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행, 그리고 부동산을 보러 다니는 부지런함.. 그런데 막상 차가 생기니 또 다른 이유로 차를 안 가져가게 된다. 핑곗거리는 많았다. 차 가가면 도로 보느라 피곤하고, 나가면 차가 많아서 복잡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전에는 차가 생기면 갈 수 있다고 말했던 것들이었는데, 오히려 차가 생기니 차로 나가면 안 되는 이유들이 생겼다. 그런 걸 보며 결국에는 모든 것이 내 의지의 문제였구나 싶었다. 차가 없었어도 갔을 곳은 갔을 것이고, 차가 있더라도 의지가 없으면 안 했을 것이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내 의지대로만 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환경적인 요인, 사회경제적 변화 등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그럼에도 여러 의사결정들을 다시 되짚어보면 내 의지로써 정해진 것들이 많았다. 의지가 있는 일들은 어떤 방식으로 던 행해졌다.
결국 생각보다 알게 모르게 주변 환경에 핑계를 많이 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무언가 망설여진다면 결국 의지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핸들을 가진 내가 차를 안 움직이면 누가 움직여주겠는가. 어딜 가던, 가만히 있던, 무언가를 하던 그것은 나의 너의 의지에 달려있다.
이렇게 해서 차를 운전해 가며 느낀 것들을 정리해 봤다.
차를 목적지만 향해서 가는 이동수단만으로 느끼기에는 운전하며 배우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운전은 어찌 보면 삶의 축소판일 수 있다.
어떨 때는 엑셀이 필요하고, 어떨 때는 주차가 필요하고, 어땔 때는 주변 차들을 의식하기도 한다.
그러다 잘 안되면 핑계로 합리화하기도 하고.
운전을 하며 느끼는 본인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스스로 되짚어보면 좋을 거 같다.
마지막으로 삶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건강이니, 모두 안전 운전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