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며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면, 힘들어도 위로보다는 결과로 보여주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3년 전 내가 사기를 당하고 나서 내 삶이 구렁텅이로 빠진다고 느꼈을 때 나를 끄집어 올려준 건 주변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당시에 나는 큰 자괴감과 무기력함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주변사람들의 잘 알지 못하는 위로와 비난이었다.
한순간 잘 나가던 사람에서 사회의 바닥으로 떨어진 기분이라는 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가족들도 나에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다. 술도 마셔보고 방황도 해봤지만 그 어떤 것도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움직여야 했고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내가 부업으로 잃은 만큼의 돈을 벌고 다시 일어났을 때 누구도 과거의 실수를 가지고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는 "그 계기가 너를 더 성장하게 한 거 같다"
라는 말을 전했다.
주변 사람들은 결과로 보여주고 나서야, 더 이상 내 과거의 내 실수를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뒷얘기 하지 않았다. 위로는 잠시였지만 결과는 내가 앞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렇다고 "나도 잘했으니까. 여러분들도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고 결과로 보여주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고통 고난의 크기는 다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내가 겪은 고통이 본인이 목표하고 있는 도전이나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변화하고 성장하겠다고 할지라도 이게 완성되는 시기는 특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이 글은 제목에 있는 거처럼 "위로가 필요하겠지만~"에 좀 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결과로 보여준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홀로 뭔가를 준비하는 것은 심적으로 정말 외로운 시기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들을 눈앞에서 잃어버렸을 때, 그리고 내가 가진 힘으로는 상황 해결법이 도무지 안 보일 때, 또한 우리는 무기력함을 마주하게 된다.
나도 힘든 순간 무기력함이 자주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앞으로의 미래도 기대되지 않았다. 사람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밑도 끝도 없이 하게 된다. 그래서 이걸 끊어내지 못하면 무기력함은 꽤 오래간다.
그래서 이 무기력함을 끊어내기 위해 홀로 산책도 하며 혼자만의 시간도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다.
회사일이 끝나고는 새롭게 할 일을 만들었고, 마음이 답답한 건 글쓰기를 통해 풀었다. 통장에 돈 있으면 술자리에 쓰니 월급통장도 이리저리 분리해 놨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믿게 하기 위해 여러 말들을 했다.
"나는 할 수 있다"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취할 수 있는 쾌락은 잠시 멀리 두고 내 눈앞에 주어진 일에 '시간'을 쏟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이 필요했다.
회사에서 있었던 경험을 돌이켜 보자. 2년 전 내 인사부서에 팀장님으로 있었던 분은 한마디로 프로페셔널했던 분이다. 3년간 업무를 했지만 그분의 눈높이에 맞추기에는 내 역량이나 노력이 부족해 보였다. 보고를 가면 보고타이밍, 문장, 보고서 형식, 기획의도 전반적으로 다시 손봐야 하는 일이 많았다.
하루는 너무 힘들었어서 주변사람들에게도 내 고충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다들 그 팀장님이 너무 까다롭다고 말하며 너는 지금도 잘하고 있다며 위로해 줬다. 그때는 사람들 말에 위안을 받으며 같이 동조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짖꿎게 할지언정 팀장님이 말한 방향이 결과적으로 맞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피드백을 수용하고 좀 더 야근하면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시도해 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당연히 그렇게 마음을 먹은 그 이후로는 술자리는 멀리하게 되었고 주변동료들의 얘기를 듣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점차 팀장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날들이 늘어났고, 조직에서도 성과로 인정을 받았다.
시작부터 인정까지 약 2년 정도가 걸린 일이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그런 면에서 성장에 따른 기회비용은 항상 "외로움"이다.
다른 친구의 얘기를 해본다. 최근에 대학교 동창을 만났다. 30대 초반을 넘어가는 남자 둘이서 술을 먹다 보니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서로 인생 얘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그 친구는 2년 전에 파혼을 했다는 것이었고, 그 친구로부터 들은 새로운 소식은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에 그 친구가 파혼했다는 소식을 카톡으로 접했다. 직접 겪은 일이 아니다 보니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는 알 수 없었다. 공감한다 하더라도 추측을 하며 위로해 줄 뿐이지 결코 그 친구입장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고통은 아니었다. 그렇게 일이 있었다는 것만 알았고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갔다.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결혼 준비도 진척이 많이 되어 있었고, 파혼을 하고 나서도 마음을 정리하고 일어나는데 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는 안 했지만 파혼 이후에도 6개월 정도 가량 퍼지기도 하고 무언가에 몰두하면서 시간을 많이 가졌다고 했다.
그 친구 입장에서 좋은 경험은 아니었겠지만 결국 그는 스스로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때보다 더 건강한 연애를 하고 있었다. 나도 대화 속에서 이전에 알고 있는 그 친구의 모습보다 그가 더 성장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삶은 생각보다 냉혹하고 가끔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든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계획대로 안되고 가끔 노력을 허무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꼭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불쑥불쑥 찾아와 내 삶의 시비를 건다. 그러니 우리는 그러한 순간이 왔을 때 외로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때 주변의 위로나 격려를 우선순위로 삼는다면, 그 상황이 다시 반복되었을 때 결코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위로가 필요할지라도 결과로 보여주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내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때 그때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된다. 그전에 사람들에게 내가 이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건지, 얼마나 힘든지 얘기할 필요가 없다. 인스타그램 등 sns등을 보면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것에 몰두에 내면은 그렇지 않은데, 주변사람들의 의식해 잘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한다.
말이나 사진, sns 속에서만 잘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 계획을 묵묵하게 실행하고 고요함 속에서 성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여러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사람들이 결과를 보고 알아차리게 하면 된다.
그러니 지금 아무리 위로가 필요하더라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후에는 결과로 보여주자. 지금 당장은 누가 주변에 위로해 줄 사람이 없을지라도 결과로 보여주면 알아서 그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 본다.
지금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모두 결국에는 잘 극복할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