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초조한 나를 보여주는 듯 한 타이머. 아이들마다 자신만의 타이머가 있다. 그걸 존중해 주는 것이 부모에게는 가장 큰 숙제인 듯.
평상시엔 귀요미, 이쁜이, 다정이들인 우리 집 딸들은 곧 5학년 2학기를 맞이한다. 두 아이가 쌍둥이기에 함께 같은 학년을 올라가며 함께 문해력과 문제 해결력으로 고생 중이다.
오늘도 몇 가지 숙제를 봐주다 끝내 아이들과 충돌이 일어난다. 특히, 둘째 아이는 문제를 풀다 잘 이해가 안 되면 화를 내곤 한다.
나의 레퍼토리는 항상 같다.
'이럴 거면 공부하지 마.'
'나도 회사 다녀와서 힘들어. 이해 못 하는 건 네 잘못인데 왜 나한테 화내'
'공부 안 해도 먹고 살길 많아. 나 괴롭힐 거면 공부하지 마'
어떻게 모르는 문제 묻는 딸들에게 이런 말을 하냐며 날 이기적이고 못된 엄마라고 해도 변명할 생각은 없다. 아이들을 늦게 출산한 바람에 늙은 엄마이고 게다가 비학군지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좀 촌티 나는 엄마다. 내가 아이들 2학년 때 놀이터에서 놀리고, 레벨테스트를 보러 다니지 않는 모습을 보자 나보다 5살 많은 아이들 친구 엄마가 진심어린 걱정을 해줬었다.
"쌍둥이 엄마, 우리 때랑 달라. 그렇게 넋놓고 있으면 나중에 정말 후회해. 사춘기 오기 전에 선행시켜 두는 게 좋아"
하면서 말이다. 큰 아이를 SKY 입성시킨 선배이자 동료 엄마인 그녀의 말대로 나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생일도 늦고 다른 아이들보다 발달이 빠른 편도 아닌 우리 아이들은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반 학생수가 적어, 그 반을 폐강하고자 한다며 다른 아이는 레벨 높은 반으로 보낼 수 있겠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 반을 못 따라갈 것이니, 레벨 낮은 반으로 가라는 거다. 그냥 나에게 온 통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원물을 1년 즈음 먹은 우리 아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왜 레벨 낮은 반으로 가야 하냐며 항의를 하는 것이다. 학원의 배려로 우리 아이들의 반은 폐강되지 않았으나, 그 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한 달 정도를 독하게 영어 예습 복습을 시켰다. 그러나 뭔가 흡수되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또 어느 날, 학교에서도 전화가 왔다. 두 아이 모두 수학을 너무 어려워한다며 학교에서 진행하는 추가적인 수업을 참여하라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때때로 교구도 보내주시며 큰 관심을 보여주셨다. 사실, 난 억울했다. 학교 가기 전 교구들로 예습도 시켜보고 세상에서 가장 쉬운 문제집도 사다 풀렸지만 아이들의 머리에 흡수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정말 전설 속의 늦터득을 기다려야 하나....
지금은 5학년. 그때 못 풀던 2학년 문제는 물론, 끄떡없이 잘 푼다. 마의 5학년답게, 5학년 수학, 사회 등 급 고급스러운 어휘와 길어진 문장에 아이들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한다.
아이들 학습 걱정에 당황하고, 화나고, 좌절할 때가 많지만 그럴 때 난 우리 아이들의 탄생 신화를 생각한다. 내 평생 가장 가슴 벅찼던 순간, 목숨을 건 위험한 순간 모두 아이들의 탄생과 함께 경험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몹쓸 말을 하고 기대에 못 미친다며 빚쟁이처럼 재촉하는 이유는, 이제 걱정 없이 잘 자라준다는 이유로 이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 이야기들을 담고 태어났는지 잠시 잊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나 한 사람 없어진다고 어찌 되지 않지만, 자식으로의 내가 사라진다면 우리 엄마는 분명 단 하루도 마음 편히 못 지낼 것이다. 그건 나의 탄생 신화를 엄마가 기억하기 때문 일터. 나의 소중한 아이들. 이 아이들의 탄생신화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풀어가며 엄마가 되어 구도의 길을 걸으며 성장하는 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