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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지 May 21. 2019

많은 책 말고 귀한 책과 함께

내가 그리워한 건 어쩌면 무언가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었는지도


마음을 다해 책 읽던 시절


대학 시절, 웬만한 책은 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책을 사도 둘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소장하고 싶은 책인지 아닌지를 판단했다. 좋지만 한 번 읽은 것으로 족한 책이 있었고, 여러 번 꼭꼭 씹어 내 것으로 소화시키고픈 책도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이사를 해도 계속 같이 옮겨 다니고 싶은 책들만 구매해 책장에 꽂았다. 


다시 반납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한번 빌린 책은 꼼꼼히 보았다. 남들도 같이 보는 책에 줄을 긋거나 귀퉁이를 접어둘 수는 없었으므로(문화 시민입니다) 기억해두고 싶은 구절이 있는 페이지에 일일이 포스트잇을 붙여두었다가 책을 다 읽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보며 옮겨 적었다. 그 수고로운 과정이 좋았다. 무지개처럼 인덱스가 촘촘한 책을 덮을 때면 마음이 다 풍요로울 정도였다. 


그런 독서가 전혀 힘들다거나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을 적의 일이었다. 옮겨 적은 문장들은 다시 들춰보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많았지만, 뭐라 해야 할까. 그렇게 쌓은 문장들이 탄탄한 벽을 이루어 내 일상을 지탱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을 때, 마땅히 내 실력으로 쌓을 만한 게 없을 때 내가 좋아하는 문장만은 쌓을 수 있다는 사실이 위안을 준 것도 같다. 


졸업하고 나서는 이사 간 동네의 구립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는 장서가 많았고, 매번 1회 5권인 대출 권수를 꽉꽉 채워 빌려 오곤 했다. 그 5권을 고르는 건 언제나 어렵고도 즐거운 고민이었다. 대출 기간인 2주 동안 피곤한 출퇴근길을,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밤을, 약속 없는 주말 오후를 함께해줄 책이었으니까. 



주머니에 3만원을 넣은 채 서점에 간다면


시간이 흘러 그때보다 돈이 생기고 시간은 없어지면서 도서관에 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도서관이 문을 열고 닫는 시간에 맞추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클릭 몇 번으로 인터넷서점에서 현관문까지 책을 배달시키는 일이 더 쉬웠다. 아무 책이나 산 것도 아니고, 지금 읽고 싶은 책들을 고민해서 골랐는데도 집에 도착한 책은 바로 들춰보는 경우가 적었다. 퇴근하면 당장 읽고 싶은 마음에 당일 배송을 신청해놓고도, 도착한 택배 박스를 며칠째 현관문 앞에 그냥 두기도 했다. 


그때 나는 시간이 없어 못 읽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마음이 없어 못 읽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산 책은 읽다 말고 책장에 다시 꽂아둘 수 있었으므로 한 번에 끝까지 읽는 책도 드물었고, 기록하는 일에도 점점 게을러졌다. 다음에 다 읽겠지. 언젠가 기록을 하겠지. 예전엔 아껴서 구매한 책 한 권이 정말 귀했는데, 이젠 읽지도 않으면서 쌓아두는, 때때로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집안 소품 중의 하나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시간이 많고 돈이 없던 시절의 나와, 돈이 있고 시간이 없는 시절의 나는 어떻게 다른 걸까? 잘 모르겠다. 그냥 언제부터 옮겨 적는 독서를 할 수 없게 된 것일까 곰곰이 되짚어 보면 그건 원하면 어떤 책이든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한계’가 없어진 순간.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예를 들어 주머니에 3만원만 넣은 채 서점에 가보자. 그리고 서점에서 정말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해보라. […] 상한이 정해져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게 최선일까? 나는 정말 이걸 원하나? […] 질문이 없으면 그 인생에서 영혼은 입을 다문다. 그러면 하품만 하고 있던 영혼이 대답할 만한 질문은 뭘까? 아마도 “이것이 내가 선택한 삶이냐?” 그런 질문이 아닐까?

더 많이 갖지 않아도, 어쩌면 더 많이 갖지 않아야


무언가에 ‘한계’가 있을 때 나는 더 고심해서 선택하고, 그렇게 갖게 된 것을 더 소중히 했던 것 같다. 살 수 있는 책에 한계가 있을 때, 살 수 있는 옷에 한계가 있을 때, 집 안에 둘 수 있는 물건에 한계가 있을 때. 그럼 고민하게 된다. 나는 이게 꼭 필요한가?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이걸 가지고 있으면 오래 만족하며 지낼 수 있을까? 그런 질문 앞에서는 삶을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로만 단출하게 꾸리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사하며 새로 마련한 (제법 큰) 책장이 가득 차면서, 나는 다시 질문의 세계로 자연스레 들어갔다. 이 책장 이상으로 넘치는 책을 이고 지고 살 생각은 없다. 이 책장만큼의 책이 필요한 삶이 내게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한 권의 책을 들일 때, 한 권의 책을 내보내야 한다. 그것이 새로 산 책장의 규칙이다. 간직하고 싶은 책과 꼭 그렇지는 않은 책을 구분할수록, 같이 살기로 결정한 책의 존재가 새삼스러워진다. 몇 칸짜리 책장 안에 들어가는 책들을 마침내 귀하게 여기게 된다. 


내가 그리워한 건 어쩌면 그런 감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 나만의 이유로 아끼는 몇몇 가지가, 너무 넘치지 않는 생활을 이루는 삶. 많은 책 말고 귀한 책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 말이다.


[대학내일 888호] ILLUSTRATOR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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