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Dec 15. 2019

마크로비오틱이 있어 우리의 연말모임은 조금더 특별했다

12월 둘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식당영업을 하며 매주 머핀을 구웠는데 식당영업을 마치고 나니, 2주만에 머핀을 굽는데도 오랜만인 것 처럼 느껴진다. 매주 머핀을 구웠지만, 정작 나를 위해, 또는 내 지인들을 위해 굽는 일은 드물었다. 식당영업을 마치고 나서야 정말 오랜만에 개인적인 이유로 머핀을 구웠다. 최근 새 베이킹 클래스를 준비하며 즐겨 만드는 현미 마들렌도 여럿 챙겨 쿠키박스에 담았다. 단것을 즐겨 먹지는 않으니 물론 내가 먹을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만든 머핀과 마들렌은 그동안 식당영업을 해온 ‘프로젝트하다’ 옆, ‘상수숯불갈비’ 사장님께 전달드렸다. (밀가루와 유제품, 달걀, 설탕 등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많은 머핀, 마들렌이다 보니 설명이 조금 어려웠다) 다소 무뚝뚝하시지만, 문득 가게앞 칠판간판을 고쳐 주시거나, 가게 앞 식물에 틈틈히 물을 주시는 등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프로젝트하다’를 사용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가게에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상수숯불갈비 사장님 만큼이나 무뚝뚝한 성격을 가진 나이지만, 작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돌아서니 연말이 다가온 것이 더욱 실감이 난다.

 냉장고 속 발효종이 생각나, 오랜만에 사워도우를 구워본다. 이번에는 우리밀의 한 종류인 조경밀을 백밀과 통밀을 블렌드해 사용했다. 그동안 기온도 많이 낮아지고, 작업환경이 집에서 작업실로 바뀌었으니 다시 감 잡기가 어렵다. 이럴 바에야 저온발효를 시켜두기로. 말이 좋아 ‘저온발효’이지 사실상 반죽을 하다가 냉장고에 모셔두고 다음 날 열어볼 뿐이다. 다음 날 냉장고 속 반죽을 꺼내보니, 몽실몽실 잘 부풀어 있다.

 물, 밀, 소금. 그리고 온도와 시간만으로 만들어 내는 음식, 빵. 하지만 요즘에는 공장빵과 달달한 빵에 밀려 이런 자연스러운 빵을 찾기가 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에 쫓기며 가까운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에 익숙해지며, 시간이 만들어 낸 음식과는 멀어지며 살고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 몇분을 아껴 체인점 빵, 가공식품을 먹으며 무엇을 했는지. 내 몸과 마음의 건강과 바꿀 정도의 중요한 일이었는지.

 모처럼 사워도우를 구웠으니, 다음날 아침식사로는 오랜만에 샌드위치를 만들어 본다. 감미료 하나 없이 새콤달콤하게 만든 당근라페와, 즉석 로오일 드레싱으로 버무린 적채 코울슬로, 마요네즈 없이 만드는 병아리콩 샐러드를 끼워 만든 삼색 샌드위치. 겨울철에 기름 가득한 마요네즈를 발라 토마토, 양상추 끼운 샌드위치를 먹으면 몸이 한순간에 음성으로 치우쳐 몸이 으달달 떨릴테니, 샌드위치를 먹더라도 추운계절에 맞게 만든다. 추운 계절에 맞게 만든다는 것은 양의 조리를 더해준다는 것인데, 당근라페, 적채 코울슬로, 병아리콩 샐러드 모두 약간의 가열을 하거나 소금에 가볍게 절이는 등의 조리를 더했기에 샐러드류인데도 한번 만들어 두면 3~4일은 먹을 수 있다. 당근라페는 너무 아삭하지도 너무 뭉근하지도 않게 익히는 것이 포인트!

 농부님이 보내주신 돼지감자가 아직 넉넉히 남았으니 따끈한 돼지감자 포타주도 만들어 곁들인다. 작업실에서 창 밖 인왕산 경치를 바라보며 샌드위치와 포타주로 맞이하는 아침은 유명 브런치카페에서 먹는 아침식사가 부럽지 않다. 

 취미로 즐기는 사워도우를 구운 날이면 빵을 먹지만, 역시 밥을 먹지 않으면 식사를 한듯한 만족감이 들지 않는 사람이기에, 점심에는 밥을 차린다. 체온이 낮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뿌리채소된장 덮밥, 연근단고 누룩소금 스프, 연근톳조림으로 차린 한 상. 양이 강한 주재료와 조미료를 동시에 쓴 뿌리채소된장 덮밥과 연근톳조림을 올렸으니 국은 된장국보다는 양의 성질을 덜어낸 누룩소금을 사용해 균형을 잡는다.

 제주도의 농부님께 부탁드린 유기농 유자가 한박스 배달왔다. 4.5키로...막상 받아보니 행복하면서도 언제 다 손질할까 무섭다...그래도 도마, 칼, 손에도 배어나는 귀한 유자향이 반갑다. 요리에서 틈틈히 감초역할을 해줄 초겨울의 향을 소금과 함께 병에 담아 유자소금을 만들어 본다. 한동안 매일 병을 흔들어 주며 숙성되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이 유자소금으로 간을 한 유부초밥은 얼마나 향긋하고 맛있을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시작한 독서모임을 함께한지도 2년이 지났고, 세번째 연말 송년회를 나의 작업실에서 가졌다. 모임을 가진 뒤, 식사 장소를 알아볼 때마다 고기를 먹지 않는 나를 위해 고생해서 음식점을 알아봐주곤 하는 고마운 멤버들. 올해 송년회는 나의 작업실에서 가지기로 하고, 내가 몇가지 음식을 준비했다.

 독서모임의 송년회를 위해 준비한 음식

 논오일 유자 드레싱으로 버무린 딸기 쑥갓 퀴노아 샐러드

 피스타치오를 올린 큐민향 당근 라페

 유자껍질을 올린 딜향 무말랭이와 배추 주먹밥

 무 포타주

 단호박퓨레와 컬리플라워 스테이크

 허브향 템페와 채소 오븐구이 

 채식을 하지 않는 멤버들이기에 내 취향만 고집하는게 미안하기도 해 피자라도 시켜줄까 했지만, 다행히 맛있다 치켜세워주신 덕에 바깥음식 없이 모두 함께 마크로비오틱 파티음식을 즐겼다. 물론 동물성 재료는 없는 비건이다.  

 제철을 맞은 무는 천연 소화제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소화를 돕는 채소인데, 특히나 지방의 소화에 좋아, 각종 모임에서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게 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조금씩 챙겨 먹으면 도움이 된다. 전날에도 새벽까지 술자리를 가졌던 멤버는 무포타주를 해장국 마냥 들이켰다.

 와인에 어울리는 메뉴들로 구성해 보았는데, 밥없이 안주만 깨작이며 술을 마시면 도무지 배도 차지 않고 숙취로 고생하는 사람인지라 밥 메뉴도 끼웠다. 딜과 유자를 곁들여 향을 더하니 밥인데도 와인에 어울린다. 

 친구들과 즐기기 위해 만들었기에 너무 엄격하게 마크로비오틱을 따를 생각은 없었는데, 막상 만들어 놓고 보니 참으로 조화로운, 마크로비오틱 다운 술상을 차렸다. 강한 음의 성질을 가지며 산성 식품인 술에, 튀김 등 강한 양의 성질을 가지며 산성인 식품의 궁합은 좋지 못하다. 동물성 식품을 튀겼다면 더더욱. 맥주에 치킨, 피자의 조합은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중용에 가까운 조리를 하면서도 알칼리성 식품으로 메뉴를 구성하는 것이 술을 마실 때도, 마신 뒤에도, 다음 날에도 편한 술상이라 할 수있다. 

 이처럼 현미밥에 된장국이 있는 집밥만이 마크로비오틱 인것은 아니다. 와인안주, 파티 음식도 얼마든지 마크로비오틱 조리법을 따라 만들 수 있으며 술자리 또한 조금 더 지혜롭게 즐길 수 있다. 이 날 우리의 식탁에는 치킨, 벌건 양념으로 버무려 놓은 음식 또는 기름진 치즈 토핑을 한사발 올려놓은 음식 등 여느 번화가에서나 볼 수있는 개성 없는 음식은 없었다. 마크로비오틱으로 연말을 나니 몸도 편하고, 우리의 식탁이 조금은 더 특별해지지는 않았을까. 소중한 연말 모임이 나의 친구들에게도 더 오래토록 기억될 수 있지도 않을까, 기대해 본다.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