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스 Mar 03. 2024

3년 만에 택시에서 인터뷰이를 다시 만날 확률은?

승객은 기자2

서초동에서 취재원과 저녁을 먹는 동안 대설주의보가 발령됐다는 재난 문자가 몇 차례 울렸다. 새벽을 훌쩍 넘긴 시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궂은 날씨까지 더해지니 갈 길을 서둘러야 했다. 직장인의 친구-카카오T로 택시를 호출하자 곧장 배정된 기사로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헌데 여느 때와 달리 안심 번호가 아니다? 저장된 번호였다.


최OO 기사님이신가요?
영등포 가는 승객한테 전화 거셨죠? 
제가 인터뷰 했었는데 기억나세요?

그렇다! 3년 전 내가 취재했던 택시기사였다. 수습 시절, 우리 회사 선배인지도 모르고 시민 인터뷰를 하려고 마이크를 건넸던 그때보다도 더 화들짝 놀랐다고 하면 내 심정을 설명할 수 있으려나. 참으로 놀라운 우연이자 인연이라 생각했다. 불특정 다수를 인터뷰하는 게 기자의 업무라지만, 불특정 다수를 태우는 게 택시기사의 일상이라지만, 과거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새벽 2시쯤 서울 한복판에서 승객과 기사로 또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엄청난 감동(?)이 솟구쳤다.


2차까지 이어진 술자리로 졸릴 법도 한데, 눈앞의 격벽(투명판, 칸막이)을 보니 잠이 깼다. 승객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사비까지 들여 격벽을 설치한 택시기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3년 전 기억이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이 분은 일명 '승객이 두려운 택시기사'를 주제로 한 기획취재 주인공이었다. 택시 내부는 똑같았다. 승객과의 거리가 확보된 격벽이 운전석 주위를 안전하게 감싸고 있었다. 3년이 흘렀지만, 그의 불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란 뜻이다. 



지금이야 대중의 관심에서 살짝 비껴간 듯 하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택시기사 폭행'은 사회부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헤매던 솔깃해하는(보다는 '기사 가치가 큰', '보도 가능성 높은' 이라는 표현이 바람직할 것이지만) 아이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법무부 차관을 단숨에 날려버린 사건이 바로 택시기사 폭행이었다.


지난 2020년 이용구 당시 법무부 차관은 지명 한 달 전,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했다.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택시기사에게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았다. 112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는 사실이 차관 임명 후 한 매체의 보도로 알려졌고, 이 전 차관은 취임 반 년 만에 불명예로 물러났다. 


운행 중 택시기사 폭행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대상으로 합의 여부와 상관 없이 입건돼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관할 경찰서였던 서초경찰서는 반의사불벌죄인 단순 폭행죄로 처리해 내사 종결했다. 피해자인 택시기사가 가해자 처벌을 원치 않고, 목적지에 도착해 술을 취한 승객을 깨우다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운행 중이 아니었다는 이유였다. 당시 수사 책임자는 헌법재판소가 계속적 운행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정차한 경우엔 특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적이 있었다며 해당 판례를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차 사고로 이어져 도로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있으니 더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법의 취지를 감안하면, 단순히 판례에 대한 설명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많았다. 멈춰선 택시의 기어는 주차모드였는지, 미터기는 끈 상태에서 폭행이 벌어진 건지, 주행 중에는 다른 폭행이 없었던 건지, 택시기사를 회유하려는 정황은 없었는지 여러 물음표를 메우기 위해 당시 강남라인 경찰기자들이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대형 로펌의 판사 출신 변호사였던 이 전 차관이 여러 요직에 물망이 올라온 상태였기 때문에, 경찰이 소극적으로 수사한 건 아니냐는 의심도 더해지며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종지부는 지난해 11월 30일이 되어서야 찍혔다. 대법원은 이 전 차관이 택시기사에게 돈을 건네며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하고, 잠든 승객을 깨우는 과정에서 맞았다고 진술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징역 6월·집행유예 2년 유죄를 확정했다. 이 판결로 올해 초 이 전 차관의 변호사 등록도 취소됐다. 변호사법에 따라 집행유예 종료 후 2년까지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용구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택시기사든 버스기사든 대리기사든, 운전자 폭행은 중하다는 국민의 법감정은 정립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자 폭행은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술에 취해 "왜 길을 돌아가냐"며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벌금형이 선고된 변호사 관련 기사가 그 예다. 아주 강기시감이 들었다. 


아직도 취객은 무서워요. 일단은 (격벽) 계속 두려고요. 


다시 만난 택시기사가 3년 동안 격벽을 뜯어내지 못한 이유도 마찬가지일 테다.

작가의 이전글 택시기사는 작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